전장연 삼각지역서 1박2일 ‘지하철 행동’ 예고
경찰‧공사, 열차 출입문 막으며 선전전‧탑승 저지
박경석 대표 “서울시 ‘관치 폭력’ 즉각 중단하라”
“시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3년에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를 나눠주십시오. 장애인은 ‘시민권 열차’에 탑승을 원합니다.”
2일 오전 8시가 되자 한복을 차려입은 장애인들이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서 세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누구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고, 누구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큰절을 했다. 장애 유형도 세배하는 방법도 다 다르지만, 하고 싶은 말은 같았다. 이들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장애인 기본권 보장을 위한 ‘장애인권리예산 확보’를 요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새해 첫 ‘지하철 행동’에 나섰다. 휠체어 탄 장애인 10여 명을 비롯한 40여 명의 전장연 활동가는 이날 오전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재개하려 했으나, 강경 대응을 예고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제지에 막혀 무산됐다. 장애인들은 출입문 앞에서 지하철 탑승을 요구하는 1박2일 농성에 돌입했다.
- 지하철 시위 법원 조정안 거부한 ‘오세훈식 법치’
지하철 행동은 장애인의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탈시설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동료 시민에게 알리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와 선전전을 통칭하는 말이다. 전장연은 2021년 12월부터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촉구하는 지하철 탑승 시위와 선전전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는 장애인·비장애인 활동가 177명의 삭발 투쟁이 이뤄지기도 했다.
이들이 요구해 온 장애인권리예산은 올해 정부 예산안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증액분은 전장연 요구안의 0.8%(106억 원)에 그쳤다. 이는 전장연이 국회에 요구한 증액분(1조 3,044억 원) 가운데 상임위원회에서 절반 가까이 삭감된 금액(6,653억 원)을 기획재정부가 다시 한번 대폭 줄인 결과다. 전장연은 곧바로 논평을 내고 “헌법에 분명히 명시된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국회와 기재부에 의해 전면 부정당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당과 서울시는 전장연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무려 106억 원이 반영됐는데도 전장연이 무리한 액수를 요구하며 무고한 시민들의 출근길을 막겠다는 건 그야말로 트집잡기”라고 주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같은 달 26일 페이스북에 “현장에서의 단호한 대처 외에도 민·형사상 대응을 포함해 필요한 모든 법적 조치를 다하겠다”며 ‘무관용 대응’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한편 오 시장은 사법부가 내린 강제조정안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공사가 지난달 19일 전장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공사에는 ‘2024년까지 19개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전장연에는 ‘출근길 시위로 열차가 5분 지연될 때마다 공사에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1일 MBN 인터뷰에서 “1분만 늦어도 큰일 나는 지하철을 5분이나 늦춘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조정안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현실 정치가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외면하는 사이, 이날 전장연 시위에 반대하는 장애인 단체가 등장해 충돌을 부추겼다. ‘지하철 운행 정상화를 위한 장애인연대’ 회원 10여 명은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전장연 활동가들의 엘리베이터 탑승을 막아섰다. 이에 대해 전장연은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는 장애인 권리를 책임지긴커녕 장애인과 비장애인, 장애인과 장애인을 갈라치며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지하철 행동 전면 통제… 전장연 “권리 투쟁 지속”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을 대폭 삭감한 정부·여당과 ‘무관용 원칙’을 내놓은 서울시를 비판하며 지난달 25일부터 오늘(2일)과 다음날(3일) 1박2일 지하철 행동을 예고했다. 이들은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수용하며 이틀간 5분 내로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기로 했으나, 오전 9시 10분경 수십 명의 공사 직원과 경찰에 둘러싸여 종일 열차 탑승을 제지당했다.
공사 직원과 경찰은 이날 전장연이 결의대회에 사용할 트러스(철골 구조물) 설치를 막고, 삼각지역 숙대입구 방면 출입문을 모두 봉쇄했다. 경찰이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의 휠체어를 뒤에서 강제로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한 활동가가 인파에 눌리고 깔려 119에 후송되는 일도 있었다.
삼각지역 역장은 직접 현장에 나와 30초~1분 간격으로 경고 방송을 내보내며 전장연의 퇴거를 요구했다. 활동가들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할 때마다 역장은 “역사에서 소란을 피우는 행위, 연설 행위, 철도종사자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는 행위 등은 철도안전법상 금지된다. 전장연은 즉시 시위를 중단하고 역사 밖으로 퇴거하길 바란다. 불응 시 열차 탑승이 거부될 수 있다”고 알렸다.
활동가들은 “전장연은 권리를 향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평화적인 지하철 행동을 보장하시길 바랍니다”는 구호를 반복하며 출입문 앞에서 2시간 넘게 대치를 지속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서울시는 무정차와 무관용 원칙을 거론하며 전장연을 무찔러야 할 전쟁의 대상으로 삼았다”며 “오 시장은 ‘관치 폭력’을 즉각 중단하고 전장연이 5분 이내로 평화로운 선전전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열어달라”고 했다.
전장연은 앞으로 ‘권리를 위한 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오후 진행된 253일차 출근길 선전전과 신년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문화제, 사진전, 토론회 등 다양한 형태의 지하철 행동을 전개하며 출근길 시민들에게 연대를 호소할 계획이다. 또 전장연은 각 부처 장관에게 면담 요청서를 발송해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했다. 회신 요구일은 오는 3월 23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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