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처참한 2024년 정부 예산안
이동권, 탈시설 권리, 노동권 폐기 수준
국회로 넘어간 공… 전장연 “민주당이 책임져라”
정부는 지난달 29일,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따뜻한 동행’, ‘약자 복지’를 강조하며 “내년도 복지예산안을 올해 대비 12.2%” 늘렸다고 자화자찬 했다.
정부 예산안 중 장애인 관련 예산을 확인한 장애인들은 “우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한탄했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예산은 요구안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고 중증장애인 노동권 예산은 전액 폐기됐다. 활동지원서비스 관련 예산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인상 등에 따른 자연증가분만 반영됐다. 탈시설 예산은 제자리 걸음인데 반해 장애인거주시설에는 탈시설 예산의 112배가 편성됐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활동가 750명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T4철폐농성장으로 집결했다. 이들은 돌풍에 천둥·번개까지 동반한 장대비 속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죽어간다”고 외쳤다. “함께 살고 싶다고 외친 목소리가 죽어간다”, “장애인권리예산은 죽고 사라졌다”, “시설에 들어가 개죽음당하게 생겼다”며 윤석열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 이동할 자유 무시한 예산
전장연은 2024년 정부 예산안을 ‘이동할 자유를 무시한 예산’이라고 규정했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예산이 거의 증액되지 않아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9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특별교통수단의 24시간 운행과 인접 시·군을 넘나드는 광역이동이 가능해졌다. 이 같이 운행하려면 운전원 충원이 필수적이다. 이에 전장연은 차량 1대당 16시간 운행(8시간 근무하는 운전원 2명)을 할 수 있도록 운전원 인건비를 포함해 3,350억 원의 특별교통수단 예산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운전원 인건비를 제외하고 운영비 일부만 반영된 470억 원을 편성했다. 전장연은 “그 누구보다 ‘자유’를 강조하는 윤석열 대통령이었기에 최소한 이동의 자유만큼은 보장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동권 보장은 올해도 지연됐다”고 규탄했다.
- 수용시설 예산, 탈시설 112배… ‘수용시설 감금 예산’
전장연은 정부 예산안을 ‘수용시설 감금 예산’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탈시설 시범사업에는 59억 8,200만 원만 편성한 반면 장애인거주시설에는 112배 큰 6,695억 원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질의에서 정부의 턱없이 부족한 탈시설 예산을 비판한 바 있다. 장 의원은 “탈시설장애인은 매년 200명이다. 올해와 내년 예산으로도 200명이다. 시설거주 장애인 수는 적게 잡아도 2만 3천 명이다. 매년 200명씩 지역사회로 돌아온다고 하면 115년이 걸린다”고 질타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정부는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는 예산안을 만들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를 무시한 처사다. 우리 장애인은 인권에 역행하는 ‘폭주정책’에 저항하며, 절대로 시설에 갈 수 없다. 탈시설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규탄했다.
최진영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또한 “시설에 들어가 개죽음당하게 생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중증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에 가두지 말라. 장애인도 사람이고 국민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 중증장애인 노동권 폐기 예산
마지막으로 전장연은 정부 예산안을 ‘중증장애인 노동권 폐기 예산’이라 칭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예산 23억 원을 전액 삭감하며 동료지원가 187명이 전원 해고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실적 부진’을 이유로 들며 해당 예산을 전면 폐기했다. 전장연은 “코로나19 재난상황과 중증장애인 고용정책 및 연계자원 개발에 미진했던 정부책임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들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를 방문했지만 되돌아온 건 25명 전원 연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폭압뿐이었다”고 성토했다.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대표는 “피플퍼스트의 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을 점거농성한 것은 발달장애인 운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일이었다. 너무나 존경하고 자랑스럽다”며 “장애인 권리가 예산에서 밀려난 역행의 시대를 절대 순응할 수 없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들과 함께 권리를 만드는 투쟁을 힘차게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예산안은 국회에 제출됐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의 공이 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전장연은 “21대 국회 의석 절반을 넘게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책임져라”라고 말했다. 이들은 “다시 한 번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한다.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기관인 국회, 그중 최다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에 절실히 호소한다.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라고 전했다.
활동가 750명은 결의대회를 끝낸 후 여의도환승센터까지 행진했다. 버스를 타고 1호선 서울시청역으로 이동해 지하철 승강장에서 마무리 집회를 열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