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자립지원 예산 15% 삭감
일자리, 오후 프로그램 등 축소 위기
지원주택 예산마저 0원
발달장애인들 “우리는 시설 가기 싫다”
대구시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 권리가 침해될 위기에 놓였다. 대구시가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 예산을 15% 삭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구 발달장애인들은 8일 오전 11시, 대구시 중구 대구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재우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 대구 발달장애인들 “자립지원사업 축소, 반대한다”
대구시가 대구시의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대구시는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 예산을 올해 3억 9200만 원에서 내년도 3억 3200만 원으로 15% 삭감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는 “시비 70%와 구비 30%로 지원되는 예산 매칭구조에 따라, 발달장애인 지원기관에서는 연간 1천만 원 이상의 예산이 삭감될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규탄했다.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은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대구시가 실시 중인 발달장애인 맞춤형 지원사업이다. 사업은 직업전환, 문화여가, 자기옹호, 자조모임, 자립생활교육 등 발달장애인의 자기 결정권과 개인별 의사·욕구를 기반으로 시행되고 있다.
사업 첫해인 2015년, 사업 지원기관은 4개소뿐이었다. 이후 사업의 필요성을 인정받아 지원기관은 현재까지 8개소로 확대됐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해당 사업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에 참여 중인 전영민 씨는 기자회견에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거 재미있다.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고 좋다”고 말했다.
양철우 씨 또한 “이 사업을 통해 자립 연습을 많이 해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예산이 줄어들어서 사업이 축소될 수도 있다고 하니 너무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배정희 씨도 “내년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다니 계속 투쟁해야겠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의 담당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조주열 씨는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기로 접어든 발달장애인이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는 다양한 활동을 하게 한다. 직장의 경우 보호작업장 등이 아닌 지역사회의 다양한 일자리에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발달장애인이 직장과 사회생활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자립이 뭔지 잘 이해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권익옹호가 활성화되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당 사업이 축소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사업 평가 좋지 않다’며 돌연 예산 삭감
대구시 또한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2020년, 대구시가 수행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 기본계획’ 연구에 따르면 대구시는 사업구조와 운영을 체계화해 사업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사업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투쟁으로 만들어졌다.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처장은 “2010년에 대구시청 앞에서 23일간 농성해서 만든 사업이다. 발달장애인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갈 곳이 없었다. 복지관도 맨날 대기해야 하고, 주간보호센터에 가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라 지역사회에서 도대체 갈 곳이 없었다”며 “이러다가 다 죽겠다는 절박한 요구로 치열하게 싸웠다. 그 결과 2011년에 시범사업이 시행됐다”고 설명했다.
조 사무처장은 “단순히 낮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발달장애인이 자립지원사업을 통해 오전에는 일자리를 경험해서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고, 그 돈으로 오후에는 본인이 하고 싶은 여러 활동을 하며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하는 사업이다. 현재 시행 중인 주간활동서비스는 대구시의 자립지원사업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필요성을 인정받는 사업인데 대구시는 돌연 예산을 삭감했다. 노금호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는 “대구시 지방보조금관리위원회에서는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 평가가 좋지 않아 예산을 삭감하는 거라고 한다. 왜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결정하나”라고 비판했다.
대구장차연은 “이렇게 예산이 삭감된 채 통과된다면 2024년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 자체의 운영부담으로 인해 지원인력 수급과 프로그램 구성이 어려워져, 그 어려움이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에게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우려했다.
유순영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성인부문위원회 위원장은 “우리 아들은 중증발달장애인이지만 자립지원사업을 통해 지역에서 일자리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부모는 나이 들고 자녀는 장성해진다. 예산이 축소되면서 부모의 부담이 늘어나게 될 텐데 너무 가혹하다. 비장애 형제에게도 돌봄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물러날 곳 없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삶을 왜 이렇게 축소하나”라며 규탄했다.
- 지원주택 예산마저 0원… 대구 발달장애인들 “시설에 가기 싫습니다”
자립지원사업이 줄어든 것도 모자라, 지원주택 사업은 전액 폐기됐다. 대구시는 대구 장애계가 수년간 요구해 온 ‘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거유지서비스 및 지원주택 제도화 시범사업(아래 시범사업) 예산’을 0원으로 책정해 대구시의회에 제출했다. 대구 장애계의 요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구장차연은 “대구시 발달장애인과 가족은 극단적 상황에 처해 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인권침해와 학대 문제가 거듭 발생한다. 성인기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주거지원 체계는 없다. 이 때문에 많은 발달장애인과 가족이 시설에서 나와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힘들다”며 “이 같은 상황을 해소하고자 시범사업(50가구 지원)을 수년 간 촉구해 왔으나 해당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는 대구시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에선 동료지원가 사업을 없애더니 대구시의 자립지원사업은 축소되고 지원주택 예산은 아예 0원이 됐습니다. 당사자와 부모님이 겪을 고통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돈도 벌 수 없게 될 거고, 문화도 즐길 수 없고, 취미생활도 할 수 없을 것이며 결국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피플퍼스트 활동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를 케어해야 하며, 만약에 부모님조차 우리를 감당할 수 없으면 시설로 보내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구시의원 여러분, 우리는 시설에 가기 싫고 부모님의 짐도 되기 싫습니다. 제발 내년 발달장애인 자립지원사업 예산을 삭감하지 말아주시고 지원주택 예산을 반영해 주세요. 우리에게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의 권리와 꿈을 빼앗지 말아주세요. 끝까지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
대구장차연은 기자회견 후 김재우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장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향후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권리보장을 위한 1인 시위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