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판결 ‘학부모가 몰래 수업 녹음, 증거로 쓸 수 없다’
특수교사 측 변호사, 대법원 판례 들며 무죄 주장
특수교사 ㄱ씨 “유사한 어려움에 처한 교사들에게 희망을” 무죄 호소
주호민 측 “증거능력 다퉈 볼 여지 있어… 특수교사 태도 유감”
검찰, 징역 10월 구형… 1심 선고는 2월 1일

유명 웹툰 작가 주호민 씨의 자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 ㄱ씨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주요 증거물인 ‘수업 녹음파일’의 위법성이 쟁점이 됐다. 이는 최근 ‘학부모가 몰래 녹음기를 이용해 수업시간에 교사 발언을 녹음한 파일은 아동학대의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15일 오전 10시 40분, 수원지방법원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의 심리로 특수교사 ㄱ씨에 대한 6차 공판이 열렸다. ㄱ씨는 2022년 9월, 특수학급으로 분리조치된 자폐성장애아동(당시 9세)에게 “진짜 밉상이네”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 등의 발언을 하여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녹음기의 녹음 기능에 빨간색 불이 켜져 있다. 사진 강혜민
녹음기의 녹음 기능에 빨간색 불이 켜져 있다. 사진 강혜민

- 최근 대법원 ‘수업 몰래 녹음, 증거능력 없다’… 검찰은 징역 10월 구형

이날 판사는 “최근 대법원에서 녹음파일 증거 능력에 관한 판결이 났다. 이번 사건에서 주로 문제가 된 것 또한 녹음파일에 대한 증거 능력이었다.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쌍방 추가로 의견 진술이 필요하면 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밝혔다.

지난 11일 대법원(주심 대법관 오경미, 2020도1538)은 초등학교 교사가 초등학교 3학년생인 피해아동에게 수업시간 중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말을 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안에서, 학부모가 아동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교실 내 발언을 녹음한 녹음파일에 대한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여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제2항, 제4조에 따라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수업시간 중 한 발언은 일반 공중이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것이 아닌 ‘교실 내 학생들’에게 한 것이며, 초등학교 교실은 ‘출입이 통제된 공간’이고 수업시간 또한 불특정 다수가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또한 부모는 해당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가 아니기에, 몰래 녹음한 교사의 수업시간 중 발언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녹음파일 등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하여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1‧2심에서는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해왔다. 교사가 수업 시간 중 교실에서 한 발언은 통신비밀보호법상의 ‘공개되지 않은 대화’에 해당하지 않으며, 피해아동의 부모와 피해아동은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피해아동의 보호를 위해 녹음 외 수단이 없는 점도 증거 수집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정됐다.

이에 대해 특수교사 ㄱ씨를 기소한 검찰은 “이번 사건은 최근 대법원 선고와 차이점이 있다. 피해자는 중증자폐성장애아동으로 부모에게 (교실 내 일어나는 상황을) 전달할 수 없어서 스스로 방어하기가 어려웠고, 부모는 녹음 외에 적절한 수단을 강구하기 어려웠다”면서 “장애아동의 교육 공공성에 비춰보면, 피고인(특수교사)의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녹음자(어머니)와 피해아동은 동일시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징역 10월, (아동학대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 취업제한 3년을 구형했다.

- 특수교사 측, 대법원 판례 들며 ‘녹음파일 증거로 쓸 수 없어’ 무죄 주장

피고인 측 변호사들은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녹음파일은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며 특수교사 ㄱ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김기윤 변호사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다. 어머니가 몰래 녹음기를 넣어서 수업 시간에 녹음한 파일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정서적 아동학대에 대해 대법원은 아동복지법상 금지되는 정서적 폭력, 가혹행위로 정신건강에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정도에 이르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소장 전후로 피해아동의 언어 및 비언어적 행동에서 변화가 드러나지 않는다. 피고인의 행위로 정서발달이나 정신적 발달에 현저하게 방해받을 만한 부정적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에 아동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최후 진술 마지막에 김 변호사는 “오늘 재판부에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전하겠다”고 했으나 판사가 “그건 하지 말아달라”고 제지했다.

피고인 측 전현민 변호사도 대법원판결을 인용하며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은 부정되어야 하며, 녹음파일로부터 파생된 녹취록, 공무원의 증언, 전문가의 증언 또한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령 녹음파일 외 나머지 증거물에 대한 증거능력이 인정되더라도 피고인의 발언 동기 및 경위, 발언 정도 및 지속성, 사회적 통념 등에 비추어 봤을 때,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 변호사는 피해아동의 인지 능력을 문제 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전 변호사는 “전문심리위원의 의견을 봤을 때, 피해자는 피고인의 언어적·비언어적 행위에 대한 의미나 표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해아동이 피고인의 행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으니 부정적 감정으로 인식해 아동학대로 이어질 여지도 적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전 변호사는 “피고인은 경력 20년의 특수교사다. 피고인에게 아동학대에 대한 유죄 선고는 직업, 생계, 사회적 명예 및 정체성이 걸린 문제다. 피고인은 특수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자폐성 장애학생이 소화기 던지는 것을 막으려다가 비골 골절로 성형외과 수술을 받기도 했다”면서 “피해아동 부모를 제외한 나머지 맞춤반 장애아동 학부모들은 피고인의 교단 복귀를 희망하고 있다. 피고인은 설리번 교사도 아니고 아동학대범도 아닌, 평범한 일반 교사로 살아가길 원한다”고 밝혔다.

- 특수교사 ㄱ씨 “유사한 어려움에 처한 교사들에게 희망을” 무죄 호소

특수교사 ㄱ씨는 아동학대로 기소된 상황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ㄱ씨는 “친근하게 지낸 장애아동을 학대한 가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장애학생을 사랑으로 가르친 교사가 아니라 아동학대 피고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교사생활 20년이 물거품이 됐다.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ㄱ씨는 “○○(피해아동 이름)와 제가 신뢰를 쌓으며 함께했던 시간을 고려하여 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이번 판결로 저와 유사한 어려움에 처한 교사들의 희망이 될 수 있게 무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수원지방법원의 현판. 사진 강혜민
수원지방법원의 현판. 사진 강혜민

- 피해자 측 “녹음파일 증거능력 다퉈 볼 여지 있어… 특수교사 태도 유감”

피해자 측 변호사들은 녹음파일 증거능력에 대해선 다퉈볼 여지가 있다면서 추후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장애학생을 오랜 시간 교육해 온 특수교사가 보인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김영주 변호사는 “이번 사건 변론은 피해아동을 비난하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재판 과정이 언론에 공개된 후엔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더 커졌다. 매우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사건은 아동학대 여부가 쟁점이지만 장애아동의 현실에 대한 민낯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고인의 언행에 대한 유무죄를 떠나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행위에 대해) ‘교육 현장에선 그럴 수 있다, 일상이다, 당연하다’고 말하진 말아 주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녹음파일 증거 능력과 관련해서는 “어떤 부모가 아이의 가방에 즐거운 마음으로 녹음기를 넣겠는가. 녹음기를 가방에 넣는 부모의 절박한 마음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과연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법률대리인 김희진 변호사 또한 “‘밉상이다, 너무 싫다, 고약하다’(공소장에 적힌 특수교사의 발언) 등 수업 자료를 이용해 아이에게 감정적인 표현을 한 것 자체는 설령 아동학대 범죄가 아니더라도 아동학대는 맞다. 그에 대해 어떠한 사과나 유감을 표명하지 않은 채 본인의 온전한 무죄만을 주장하는 자세는 아쉽다”고 밝혔다.

이어 “정서적 학대 여부는 발언뿐만 아니라 아동이 있었던 환경 전체를 파악해야 한다”면서 “긴 시간 녹음파일에서 아이가 혼자 있었던 시간, 우리가 알지는 못하지만 불안감을 느꼈을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폐성장애아동은 목소리의 억양, 감정에 더 깊은 영향을 받는다고 학계에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4차 공판에서 2시간 40분짜리 녹음 파일 공개 당시, 수업 대부분이 침묵과 주변 잡음으로 채워진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피해자 측은 수업시간에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장애학생이 방치되어 있었다는 입장이다. (관련 기사 : 주호민 자녀 아동학대 녹음파일 법정서 공개, 판사 “부모 입장에선 속상”)

김희진 변호사는 피고인 변호사가 ‘피해아동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비장애아동에게 충격이 가해질 수 있는 언어적 표현이라면 장애아동에겐 더 큰 충격이 될 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논리를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선고는 2월 1일 오전 10시 40분 수원지법 403호 법정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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