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학이 장애학에 건네는 화해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복싱 66kg급과 57kg급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한 이마네 칼리프(26세, 알제리)와 린위팅(28세, 대만)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러한 논란은 지난 1일, 여자 66kg급 복싱 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안젤라 카리니(25세)가 칼리프의 펀치를 맞고 46초 만에 기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두 선수가 지난해 국제복싱협회(IBA)가 주관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성별 테스트상 ‘부적격’ 판정을 받아 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 알려졌고, 해당 협회 사무총장이 인터뷰를 통해 칼리프와 린위팅이 XY 염색체를 갖고 있어 출전이 제한되었다고 발언한 내용이 SNS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발언의 정확한 사실 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유명인들 또한 이러한 논란에 가세했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케이 롤링은 SNS에 “이 미친 짓을 끝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여성 복서가 부상을 당해야 하냐, 여성 복서가 죽어야 하나”라며 공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한편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칼리프 선수는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자랐고, 여성의 여권을 가지고 있으며 여성으로 수년간 경쟁해 왔다. 이것이 여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이다”라며 선수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멈추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한 국내 언론의 반응도 뜨거웠다. 논란 초기에는 칼리프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선수로 잘못 이해한 여러 기사가 유포되었다. 이후 두 선수는 젠더 트랜지션(gender transition)을 한 적이 없으며, XY 염색체를 가졌으나 여성으로 표현되어 살아온 ‘DSD(Differences of Sexual Development, 성적 발달의 차이)1)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이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두 선수의 출전은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라거나, ‘XY 염색체를 가진 사람이 여성의 시합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 ‘테스토스테론이 높기 때문에, 그들은 도핑을 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이러한 논란은 칼리프의 8강 상대인 헝가리의 언너 루처 허모리 선수가 “칼리프가 여자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며 경기 전 자신의 SNS에 여자 복서가 뿔이 달린 괴물과 대치하고 있는 이미지를 올리며 더욱 번졌다. 또한 8월 4일에는 불가리아의 스베틀라나 카메노바 스타네바(24세)가 린위팅과의 경기에서 5대 0 판정패를 당하자 경기 후 손가락으로 ‘X’ 표시를 하며, 린위팅의 XY 성염색체 논란을 암시하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기도 했다.
현재 논란은 정말 칼리프와 린위팅 선수가 XY 염색체를 가진 DSD 여성인지, 아니면 국제복싱협회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 것인지에 매몰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두 선수가 설령 XY 염색체를 가졌다 하더라도 출전 제한이 이루어지는 게 정당화될 수 있을까. 본 글에서는 국제복싱협회의 주장대로 두 선수가 XY 염색체를 지녔다고 할지라도, 선수들을 퇴출시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는 없는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본 글의 서술 과정에서 두 선수가 XY 염색체를 지닌 것이 사실인 듯 읽힐 수 있으나, 이는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국제복싱협회 일방의 주장임을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 Y 염색체와 테스토스테론, 그리고 올림픽의 이분법
칼리프와 린위팅을 비난하는 배경에는, 남성과 여성으로 이분화되어 시행되고 있는 스포츠 경기에서 Y 염색체를 지닌 개인이 여성의 경기에 참가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Y 염색체를 지님으로써 근육량 증가 등에 영향을 미치는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많아지고, 이는 XX 염색체를 지닌 여성에 비해 ‘불공정한’ 우위에 서는 것이라는 논리다. Y 염색체는 사람들에게 ‘남성’ 혹은 테스토스테론을 통한 ‘약물 도핑’을 연상시켰고, DSD 여성의 올림픽 여성 경기 참여에 대한 강한 비난을 불러일으키는 근거가 되었다. DSD 여성은 ‘생물학적 남성’이거나 최소한 ‘자연적 도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DSD 여성이 올림픽 여성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 불공정함을 강조하는 의견은 때로 칼리프나 린위팅에 대한 혐오와 조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Y 염색체를 보유했다는 것을 기준으로 올림픽 여성 경기 참가의 적격성을 정말 판가름할 수 있을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먼저 Y 염색체 보유 여부를 기준으로 올림픽 여성 경기 출전권을 판정하는 방식의 한계를 살펴보자. DSD의 특성을 나타내게 만드는 유전형 중에는 ‘스와이어 증후군’(Swyer syndrome)이 있다. 해당 증후군에서 개인은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지만 외부 생식기는 생물학적 여성의 형태를 띠며 테스토스테론을 생성하는 고환은 없는 특성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경우 여성 선수는 호르몬적 이점이 없음에도 Y 염색체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여성 경기에서 부당하게 배제된다. 정작 테스토스테론은 XX 염색체를 지닌 여성보다 더 적음에도, Y 염색체의 보유만으로 부당한 차별을 겪게 되는 것이다.
또한 1964년 도쿄올림픽 400m 계주 금메달리스트인 에바 크워부코프스카의 사례는, 인간의 몸에서 염색체 구성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폴란드의 크워부코프스카는 1967년 개발된 원시적 형태의 유전자 검사에서 Y 염색체가 검출되어 육상 경기 출전 자격이 박탈되었으나, 은퇴한 이듬해인 1968년에 임신 후 아들을 출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스포츠계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후일 크워부코프스카는 몸의 일부에서는 XX 염색체 세포를, 몸의 다른 일부에서는 XXY 염색체를 지닌 모자이크적 특성을 가졌다는 점이 밝혀지며 논란은 해소되었다. 크워부코프스카의 사례는 우리에게 Y 염색체와 성(sex) 및 젠더(gender)의 관계를 다시금 묻게 한다. 그에게 있어 Y 염색체 유무로 여성 경기 출전 여부를 판가름하는 방식은 공정한 것이었을까? 세포 모자이크 현상으로 인해 몸 세포의 1%만 Y 염색체를 지녔다면 여성으로 출전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 비율이 5%라면, 나아가 50%라면 어떠한가? 이처럼 Y 염색체 여부는 DSD 여성의 올림픽 여성 경기 출전을 판가름할 단독 지표가 되기에는 어려운 듯 보인다.
DSD 선수가 불공정한 이점을 누린다는 이른바 ‘자연적 도핑’설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염색체의 대안으로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수치’를 기준으로 삼자고 주장할 수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생물학적 여성의 일반적 범위를 크게 초과하는 경우 출전 자격을 정지시키고, 테스토스테론 억제 약물을 투약함으로써 허가된 범위 이내로 호르몬 수치가 진입한 경우에만 DSD 여성의 경기 출전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호르몬 수치 또한 DSD 여성의 경기 출전 자격 판정에 적용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Androgen Insensitivity Syndrome, AIS)의 경우이다.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에서는 호르몬 자체는 만들어지지만, 호르몬을 세포에서 인식하는 수용체가 적거나 인식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 호르몬의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즉,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설령 높게 측정되더라도 실제적으로는 호르몬이 몸에 작용하지는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안드로겐 무감응 증후군을 지닌 DSD 여성의 경우, 단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다는 것만으로 XX 염색체를 지닌 여성에 비해 부당한 이득을 누린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이처럼 Y 염색체의 유무 및 테스토스테론 수치 모두, DSD 여성을 이분화된 성별로 매끄럽게 분류하고 출전 자격을 판정해 내기에는 충분한 기준이 되기 어렵다. 성별을 양분하는 단일한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자연은 XY와 XX로, 테스토스테론 작용의 강함/약함으로 이분화되어 매끄럽게 나눠지지 않기 때문이다. 칼리프와 린위팅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이번 논란은, 자연적 인간을 두 범주로 매끄럽게 나눌 수 있다는 근본적 가정이 누군가를 비가시화한 결과일 수 있음을 모두에게 환기시킨다.
- DSD 여성과 ‘축복받은 재능’
이제까지 DSD 여성의 올림픽 여성 경기 참여 자격을 판정함에 있어 Y 염색체 유무와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갖는 한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들만으로 ‘DSD 여성은 불공정한 이점을 갖기에 여성 경기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근본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다. 위에서 살펴본 여러 한계를 보완하여 검사 방식을 설계할 수도 있고, 미래에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면 각 DSD 여성의 선천적 이점의 종류와 정도를 보다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검사가 개발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DSD 여성이 스포츠에서 갖는 신체적 이점을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면, DSD 여성의 올림픽 여성 경기 참가를 막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 또한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먼저 DSD 여성이 선천적인 신체적 이점을 누린다면 그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이를 다룬 여러 연구들 간에 아직 합의된 결과는 없으나, 적어도 일부 연구에서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DSD 여성에게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약물을 투약했을 때 선수들의 경기력(이를테면 달리기 기록)이 평균적으로 하락한다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연구들에서도 그 하락의 정도는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에 비해서는 훨씬 적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이는 DSD 여성이 본인의 유전적 특성으로 인해 (XX 염색체를 지닌 유전자-전형적 여성과 비교하여) 스포츠 경기에서 미세하더라도 이득을 볼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에 DSD 여성의 올림픽 여성 경기 참여를 규제하는 것을 찬성하는 이들은 설령 DSD 여성이 유전적 특성으로 인해 얻는 이득이 미세한 정도일지라도, 엘리트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팽팽하게 겨루는 올림픽 경기에서는 그 차이가 결정적일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작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공정하게 규율하기 위해, DSD 여성들의 여성 경기 참여를 금지하거나, 약물을 통해 호르몬 농도를 일정 수준으로 낮추었을 때만 제한적으로 참가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DSD 여성들의 스포츠에 참여할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여러 근거를 통해 DSD 여성의 여성 경기 참여에 대한 규제가 부당하다고 반론을 펼쳤다. 첫 번째 반론은, DSD 여성이 그들의 유전적 특성으로 인해 (유전자-전형적 여성에 비해) 스포츠 경기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것에 대한 명확하고 합의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앞서 살펴본 일부 연구 결과들은 충분한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은 개별적 보고에 불과하기에, DSD 여성의 경기 참여를 근본적으로 막을만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보다 강력한 반론은, 설사 미세한 우위가 있다고 밝혀지더라도 이는 단지 ‘Y 염색체’ 혹은 ‘테스토스테론’만의 특수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양궁과 사격에서 메달을 딴 대한민국의 선수들을 생각해 보자. 어떤 선수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태생적으로 특정 종목에서 우위를 누리곤 한다. 누군가는 예외적으로 높은 집중력을 지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손을 떨지 않는 신체적 특성을 타고났기에, 양궁이나 사격 종목에서 특출한 재능을 보일 수도 있다. 이와 비슷하게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긴 팔과 큰 손발을 적극 활용하여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성취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선수들의 성취를 폄하하거나 출전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타고난 정신적·신체적 능력을 ‘축복받은 재능’이라며 찬사를 보낸다. 그렇다면 설령 DSD 여성들의 경기력에 우위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들의 선천적 특성이 타고난 집중력이나 손을 떨지 않는 능력, 긴 팔다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왜 DSD 여성의 특성은 ‘축복받은 재능’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다른 정신적·신체적 이점과는 달리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대해서만 교정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표준적 여성’과 ‘표준적 남성’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고정 관념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닌가?
- 올림픽 정신과 세메냐 룰
이러한 여러 의문에 맞서 DSD 여성의 올림픽 참여 제한을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노력으로 뒤집을 수 없는 선수 간 압도적 능력 차이는 스포츠 정신을 훼손한다고 반론을 펼친다.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압도적 기록으로 여자 800m 금메달을 거머쥔 인터섹스 여성 캐스터 세메냐의 사례를 둘러싸고 이러한 주장은 더욱 첨예하게 표출되었다. 세메냐는 ‘5알파환원효소결핍증’(5-ARD)을 지녔으며, 이로 인해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나타낸다는 것이 알려졌다. 당시 세메냐의 800m 기록은 경쟁 선수들에 비해 2초 이상 빠른 1분 55초대였다.
세메냐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두고 당시 스포츠계에서는 여러 논란이 일었다. 그 대표적인 비판의 논리는 영국의 마라토너 폴라 래드클리프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래드클리프는 “승리가 거의 확실하면 더 이상 경기가 아니다”라며 세메냐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비판했다. 신체적 우위가 피나는 노력과 정신력으로도 뒤집힐 수 없다면, 이는 스포츠의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것이다.
여러 논란 끝에 2018년 11월 세계육상경기연맹(IAAF)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인터섹스 여성들은 일정 수치 이내로 호르몬을 억제해야만 육상대회 출전을 허가하는 규정―이른바 ‘세메냐 룰’(Semenya rule)―을 제정했고, 세메냐는 이에 항의하며 소를 제기했다. 그 결과는 팽팽했다. 2019년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와 스위스 연방대법원은 세계육상경기연맹의 손을 들어주었고, 2023년 유럽인권재판소는 재판관 4:3의 근소한 차이로 세메냐의 손들 들어주었다.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호르몬 억제 약물 투약 조건부 올림픽 출전은 사실상 선수에 대한 ‘강제 투약’(compulsory medication)으로 이어짐을 지적했다는 점이다. 재판소는 ‘세메냐 룰’이 마치 선수에게 경기 출전의 선택권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선수에게는 “선택지가 없으며”(no choice), 약물 투약이 강제되는 효과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즉 선수는 경기 출전을 위해 사실상 강제적으로 호르몬 억제제를 투약하게 되며, 이는 신체의 온전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약물로 인한 여러 부작용에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명확치 않은 경기력 우위를 없애기 위해 선수의 몸에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호르몬 억제제를 투약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보았고, 최종적으로 세메냐의 손을 들어주었다.
- DSD 여성과 올림픽의 ‘공정성’
이제까지 DSD 여성의 올림픽 참여를 둘러싼 복잡한 논의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고려 사항들을 참고하여 여성부 경기 참가 규정에 대해 어떠한 합의를 도출할 것인지는 각 사회별로, 경기 종목별로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 합의의 과정에 DSD 여성 본인의 입장이 중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합의의 결과가 어떠하든 DSD 여성들에 대한 혐오와 근거 없는 비난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인도의 육상 선수 산티 순다라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살펴보며 이야기를 마무리해 보자.
2006년 인도의 육상 선수 순다라얀은 카타르 아시안게임 여자 800m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 그러나 수상의 기쁨은 길지 않았다. 당시 대회에서 시행된 검사를 통해 순다라얀이 Y 염색체 보유자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를 일제히 보도했는데, 가장 충격에 빠졌던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순다라얀 자신이었다. 순다라얀은 평생을 여성으로 정체화하며 살아왔기에, 예상치 못한 Y 염색체의 발견으로 그 자신이 가장 큰 혼란에 빠졌던 것이다. 순다라얀은 이듬해까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는데, 이를 계기로 유전자 검사 결과가 발표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심적 상태가 중심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었다. 또한 스포츠에서 공정한 경쟁의 보장이라는 명목하에 온 사회에 개인의 성적 유전 정보가 알려지게 됨으로써 선수의 내밀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상황에 대한 문제 제기 또한 이루어졌다.
순다라얀의 사례처럼, DSD 여성 선수들은 염색체 검사를 받기 전까지 본인의 유전적 특수성을 모르고 살아온 경우가 많다. 따라서 스포츠협회나 올림픽위원회는 DSD 여성의 경기 참여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채택한다고 하더라도, 검사 결과가 누구보다 선수 본인에게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갈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또한 규정에 따라 출전이 제한된다고 하더라도, 검사 결과의 활용은 경기 참가 제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국한되어야 하며, 해당 선수의 유전 정보가 불필요하게 온 사회에 알려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2023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제복싱협회의 검사 결과 폭로와 언론 대응은 선수에 대한 보호와 존중을 그 중심에 두는 것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인다.
또한 DSD 여성의 경기 참여에 대한 규정이 어떻게 정해지든, DSD 여성 본인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누군가 현 상황에 대한 반대 의견을 펼칠 때, 사회적으로 합의된 규정의 합당성에 대한 반론은 물론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누군가는 호르몬 수치 조절 등의 조건 없이 DSD 여성의 복싱 경기 출전을 허용하는 현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결정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XY 염색체를 지닌 남성이 여성의 경기에 부당하게 참가하고 있다’거나, ‘DSD 여성은 올림픽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등의 비난은 사실 관계도 맞지 않을 뿐더러 올림픽 헌장에서 말하는 ‘스포츠에 참가할 인간의 권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공정성’이라는 명목하에 DSD 여성을 올림픽에서 무조건적으로 배제하자는 주장은, 스포츠 경기에의 동등한 참여라는 또 다른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자가당착적 주장일 뿐이다.
칼리프와 린위팅을 둘러싼 여러 논란들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거대한 이분법이 올림픽에서도 공고하게 작동하며 누군가를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징후다. DSD 여성과 유전자-전형적 여성의 시합이 불공정하다고 말하기 전에, XY와 XX로 상징되는 이분화된 성 구분이 끊임없이 밀어내는 존재가 있음을, 그리고 그 당사자들이 올림픽에 안전하고 공정하게 참여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것이 인류의 화합의 장인 올림픽의 ‘공정성’에 보다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1) 성기, 염색체, 호르몬 등에서 전형적 여자 혹은 전형적 남자로 구분되는 신체와는 다른 특질을 타고난 상태를 지칭하며, 흔히 인터섹스(intersex)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 필자 소개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휴직 교사. 정신과 전문의.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야학을 만났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광기와 인정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함께 번역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합의된 규정을 세워서 더 이상 그 어떤 인권도 침해받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