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농안법 위반한 채로 10년째
구 시장 상인 80여 명, 여전히 투쟁 중
시장은 사기업 수협이 이윤 중심으로 운영
상인들 “서울시는 시장을 공공운영하라”
‘노량진회센타’ 개업… ‘자체’ 공공운영 첫 발

강제철거에 맞서 10년째 투쟁 중인 구(舊)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이 서울시를 향해 “공공출자법인을 설립해 노량진수산시장을 공공운영하라”라고 요구했다.

상인들은 8월 초,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역 7번 출구 앞에 ‘노량진회센타’를 개업하고 ‘공공운영’ 중이다. 윤헌주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도 공공운영하고 있는데 서울시는 뭘 하고 있나”라고 비판했다.

지난 21일,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지난 21일,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 서울시는 농안법 위반하고 시장은 사기업이 꿀꺽

서울시가 노량진수산시장을 공공운영해야 한다는 요구는 합법적인 요구다. 서울시는 현재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아래 농안법)’을 위반한 채 노량진수산시장을 불법 운영하고 있다.

농안법 2조 3항에 따르면 노량진수산시장은 ‘중앙도매시장’이다. 중앙도매시장이란 지방자치단체가 개설한 농수산물도매시장 중 도매의 중심이 되는 시장으로서, 정부가 지정한 시장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노량진수산시장은 나라가 관리하라고 법으로 지정한 시장이란 뜻이다. 정부는 노량진수산시장을 포함해 전국 11개의 시장을 중앙도매시장으로 지정했다. 유명한 가락시장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부산의 국제시장도 중앙도매시장으로 지정돼 있다.

앞서 설명했듯 중앙도매시장의 개설자는 지방자치단체다. 노량진수산시장을 개설한 주체는 서울시다. 같은 법 20조에 따르면 도매시장 개설자인 서울시는 시장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관리는 서울시가 해야 하지만 운영은 다른 곳에 위탁할 수 있다. 같은 법 22조를 보면 서울시는 도매시장법인, 시장도매인, 중도매인 등에 운영을 위탁할 수 있게 돼 있다.

즉, 농안법에 따르면 노량진수산시장의 관리와 운영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 운영은 다른 기관에 위탁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관리 및 운영의 모든 책임자는 서울시다.

그러나 현재 노량진수산시장의 관리와 운영 주체는 수협중앙회다. 2001년, 농수산물유통공사(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수협으로부터 1,500억 원을 받고 노량진수산시장을 매각했다.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의 소유권을 샀다는 뜻이다.

다음 해인 2002년, 서울시는 수협과 농안법을 위반하는 계약을 맺는다. ‘서울시는 수협 소유의 노량진수산시장 안에 있는 건물과 땅을 무상으로 사용하겠다’, ‘시장의 관리와 운영 권한을 주식회사 노량진수산(수협의 자회사)에 넘겨주겠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서울시는 농안법을 정면으로 위반했고, 공공운영이 돼야 할 노량진수산시장은 사기업인 수협에 의해 이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장의 소유자인 수협은 ‘시장을 현대화하겠다’며 반세기 역사를 지닌 시장을 강제철거했다. 구 노량진수산시장 부지에는 카지노 등이 포함된 복합리조트를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시민사회의 반응이 좋지 않자 잔디를 깔아 야구장, 축구장 등으로 사용 중이다.

지난 7일,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노량진회센타 개업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지난 7일,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은 노량진회센타 개업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 시장은 시민의 것 “공공출자법인 설립해 공공운영하라”

현재 투쟁 중인 구 노량진수산시장 상인은 80여 명이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투쟁하면서 안 해 본 게 없다. 25,000볼트가 흐르는 육교 위에서 농성 중이다. 생계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량진역 1번 출구 앞에 노점을 깔았지만 동작구가 강제철거했다.

수협으로부터 40억 원대 손해배상소송을 당해 얼마 안 되는 재산마저 압류당한 상태다. 20년 넘게 운영하던 ‘여천상회’를 강제철거당한 후 투쟁 중 매일 술을 마시던 나세균 열사는 2021년 11월, 농성장 야간 당번을 서다 응급실로 실려 간 후 생을 마감했다.

시장의 책임자인 서울시는 “사인 간의 문제”라며 10년째 책임을 회피 중이다. 이에 상인들은 서울시가 공공출자법인을 설립해 시장을 공공운영하는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상인들의 요구는 농안법에 근거한 합법적 요구다. 24조에 따르면 도매시장 개설자, 즉 서울시는 시장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하기 위해 공공출자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윤헌주 위원장은 31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공공출자법인을 통해 운영하면 서울시가 직접 운영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면 시장의 공공성을 되찾을 수 있다. 농안법에 따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데 서울시는 그간 직무 유기를 해 왔다”고 지적했다.

윤 위원장은 또 “시장이 공공운영된다면 그 혜택은 1천만 서울 시민에게 돌아간다. 시민은 값싸고 질 좋은 수산물을 구매할 수 있게 된다. 공공운영은 이윤을 내는 게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상인이 감당해야 할 월 임대료도 내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은 지난 21일, 서울시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량진수산시장 투쟁은 서울 지역의 최장기 분쟁지역이 됐다. 신(新) 시장은 현대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이윤을 좇는 공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공공출자법인 설립을 통한 공공운영 요구는 법대로 하라는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노량진수산시장은 공영시장이다. 그러나 상인에겐 협상의 권한 등이 주어지지 않았다. 상인과 수협의 비민주적 관계, 불법적이고 사적인 강제철거 폭력 등이 공적영역에서 묵인돼 왔다”며 “서울시는 단 한 번도 책임 있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시장 개설자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량진회센타 전경. 사진 이한별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노량진회센타 전경. 사진 이한별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 ‘노량진회센타’ 개업한 상인들의 목표 “수협은 시장에서 손 떼라”

상인들은 8월 초, 노량진역 7번 출구 앞에 ‘노량진회센타’를 개업했다. 투쟁 중인 상인들이 있는 돈, 없는 돈을 끌어모아 가게를 세웠다. 윤헌주 위원장은 “가게를 상인 모두의 힘으로 함께 세웠다. 노동의 대가 또한 함께 나눠 갖는다. 투쟁 기금을 모으기도 하고 생계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세웠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시장 공공운영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노량진회센타를 개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같은 조그만 단체도 이렇게 공공운영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우리도 이제 첫발을 뗐는데 서울시는 뭘 하고 있나”라고 비판했다.

상인들은 수협이 제기한 손배소에 대응하면서 서울시를 향해 공공출자법인을 통한 공공운영을 지속해서 요구하며 투쟁할 예정이다. 윤 위원장은 “끝까지 투쟁해서 수협이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손 떼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량진회센타에서 투쟁 중인 상인들. 사진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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