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고장·영장 없는 불법 행정대집행
75곳 중 46곳 철거하고 “거리 깨끗해졌다”
절차위반에 대해선 “위험해서 특례 적용”
노점상들, 17일째 농성 중
광진구가 지난 8일 새벽 3시, 서울시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 타로거리의 노점 75곳 중 46곳을 강제철거했다. 이후 “비좁은 거리, 넓고 깨끗해졌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보행폭이 2m에 불과한 점 등을 들어 노점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비마이너 취재 결과, 광진구 주장 대부분이 사실과 달랐다. 보행폭을 실제로 측정해 보니 약 4m였다. 또한 노점상들은 거리미화를 위한 가게 박스를 사비 1,500만 원을 들여 스스로 제작하고 매달 점용료를 지불하는 등 광진구 행정에 협조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 한밤중 기습 강제철거, 아무도 몰랐다
건대 타로거리는 20·30세대에게 사랑받는 ‘핫 플레이스’다. 포털사이트에 ‘건대 타로’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후기가 쏟아진다. 타로, 사주, 관상, 손금, 작명 등 다양한 가게가 있다. 많은 사람이 이색 데이트나 친구와의 즐길 거리로 타로거리를 찾았다. 입소문이 난 몇 가게 앞에는 손님 대기공간을 위한 작은 간이의자가 있기도 했다.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타로거리 역사는 최소 15년 이상인 걸로 추정된다. 75곳 중 타로가게는 53곳이다. 나머지 22곳은 떡볶이, 짜이(밀크티), 만두 등 먹거리 가게가 많았다.
동네 명소가 강제철거된 건 8일 새벽 3시였다. 노점상들 기억으론 당시 철거용역 250명, 광진구 공무원 100명 정도가 행정대집행에 동원됐다고 한다. 현장에 새벽 4시경 도착한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의장은 “도착하니 건대사거리 일대에 바리케이드(울타리)가 쳐져 있었어요. 철거도 거의 완료된 상황이었고요. 가게박스를 지게차로 떠서 대형 트럭에 싣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노점상들은 트럭 밑으로 들어가 눕거나 앞을 가로막는 연좌농성을 하면서 강제철거에 저항했다. 6년간 타로가게를 운영한 이미경 씨(49세)는 지게차가 가까워져 오는 걸 보면서 가게 안에 들어가 가게를 지켰다. 이 씨는 “‘사람 있는 데(가게)는 떠 가지(철거하지) 마’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가게 안에 빨리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비밀번호를 치는데 (새벽이라) 깜깜하니까 보이지도 않고 손이 벌벌 떨리는 거예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저항 끝에 가게 29곳을 지킬 수 있었다. 전하여 씨(72세)가 15년간 운영한 가게 ‘할로윈 운명테크’도 철거되지 않았다. 그러나 장사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광진구가 행정대집행을 하면서 전기를 끊었기 때문이다. 전 씨는 “강경하게 투쟁하니까 뒤쪽부터는 철거를 못 하더라고. 기습적으로 새벽에 이게 뭔 일이야. 무자비로 말이야”라고 한탄했다.
철거된 가게의 노점상은 막막한 심정이다. 시동생이 하던 가게를 물려받아 1년간 짜이가게를 운영한 ㄱ 씨(69세)의 경우 인도에서 직접 공수해 온 재료까지 전부 빼앗겼다. 가게가 철거됐다는 건 단골손님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서 알았다. 김 씨는 “손님들 문자 보고 바로 출발했는데 가는 길에 다리가 후들후들 했어요. 처음엔 손님들이 잘못 안 줄 알았어요. 오니까 전부 가져 갔어. 인도에서 사 온 재료랑 소품은 다 어떻게 되는 건지. ‘언제 돌려준다’ 말도 없고”라고 말했다.
15년간 사주가게를 운영한 윤지영 씨(70세)는 남편의 요양원 비용이 걱정이다. 윤 씨는 “이렇게 인간적으로 무시당한 건 살면서 처음이에요. 가게 자체를 뜯어서 가져가는 거. 새벽 4시 반에 왔는데 아수라장이 된 걸 보고 아연실색했어요. ‘언제 철거한다’고 귀띔이라도 해야지. 우리 애 아빠는 요양원에 있는데. 그거 돈(요양원 비용) 줘야 하는데. 나이 70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라고 토로했다.
- 보도자료엔 “절차 거쳤다”, 실제로는 “특례 적용했다”
노점상 증언 중 중요한 공통점은 모두 행정대집행 일시를 몰랐다는 것이다. 이는 행정대집행법 위반이다. 해당 법 3조에 따라, 행정청인 광진구는 아래의 절차를 거쳐야 했다.
1. 먼저 대집행 내용이 담긴 문서를 노점상에게 제시해야 한다. 흔히 ‘노란 딱지’라 부르는 계고장을 붙이기도 하고 ‘행정대집행 계고서’라는 문서로 계고하기도 한다. 계고장 혹은 계고서에는 노점을 철거해야 하는 이유, 자진 철거 기한, 이의신청 절차 등이 적혀 있다.
2. 노점상이 노점을 자진철거하지 않으면 행정청은 대집행영장을 통지하는데, 영장에는 집행시기와 집행책임자 이름을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
위 절차와 더불어, 행정안전부가 2015년에 마련한 같은 법 시행령에 따라 심야·새벽 시간 집행은 금지돼 있다.
그러나 노점상들은 계고장과 영장 모두 받은 적 없다고 답했다. 8일 새벽 집행 당시 김경호 광진구청장도 현장에 있었지만 김 구청장 또한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점상 ㄴ 씨는 “건대입구역 2~4번 출구 앞 건널목에서 구청장을 맞닥뜨렸는데, 구청장이란 사람이 영장도 없더라고. 영장이 뭔지 인지 자체를 못 해”라고 말했다.
광진구는 “단계적인 정비 절차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8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지난해 불법 거리가게에 대해 도로 원상회복명령을 했다. 올해 6월에는 주민, 경찰과 합동으로 민관 합동 캠페인을 실시했으며 7월에는 불법 거리가게 자진 정비를 촉구하는 계고장 부착과 과태료 부과 등의 행정조치를 강화해 왔다”고 밝혔다.
그런데 광진구 가로정비팀 팀장은 9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도로법 74조에 따른 특례를 적용해 행정대집행을 실시한 것”이라 말했다. 사실상 절차를 위반했단 걸 시인한 셈이다. 팀장이 언급한 도로법 74조를 살펴보면 △반복적, 상습적으로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도로를 점용하는 경우 △도로의 통행 및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신속하게 조치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계고장이나 영장 통지 절차 없이 기습 강제철거를 할 수 있다.
- 노점상들, 오히려 서울시·광진구 행정에 협조
광진구 설명과 달리, 건대 타로거리 노점은 도로법 74조에 따른 특례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우선 노점상들은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고 도로를 점용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서울시와 광진구 행정에 사비를 들여가며 협조해 왔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디자인 서울’ 정책을 추진하며 도시미관 사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노점도 리어카나 마차에서 박스형태로 바뀌게 됐다. 최인기 수석부의장은 “서울시 노점 중 도시미관 사업에 따라 정비된 곳은 건대 노점이 최초”라고 말했다. 노점상은 최소 1천만 원에서 많게는 1,500만 원까지 사비를 들여 박스를 제작하는 등 규격화 사업에 협조했다.
노점상들은 15년 전, 서울시, 광진구, 인근 경찰서장과 함께 규격화 사업을 논의했다고 기억했다. 노점상 ㄷ 씨는 “박스사업 할 때 다 모여서 간담회하고 정했으니까. 우리는 허가제로 이해하고 매달 점용료를 냈지”라고 말했다.
점용료는 한순간에 과태료로 바뀌었다. 매달 광진구에 내는 돈이 과태료였단 건 이번 강제철거를 겪고 알았다. ㄷ 씨는 “우리가 법을 아나. 액수가 같으니까 매달 냈는데, 이번에 철거하면서 들으니까 그게 과태료였대요.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 와서 불법이라면서 가게를 뜯어가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라고 했다.
광진구는 점용료가 아니라 과태료라고 거듭 주장했다. 광진구 가로정비팀 팀장은 “한 20년 전에 그런 일(규격화 사업 협의)이 있었던 것 같은데 중요한 건 여기(건대 타로거리)는 과태료를 내고 있었단 거다. 인정했으면(도로점용을 허가했으면) 박스도 저희 예산으로 만들어드리고 그분들(노점상)은 점용료를 내고, 그래야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건대 타로거리 노점은 도로의 통행이나 안전을 해치지도 않았다. 서울시는 2019년, 노점허가제를 시행했다. 그때 만들어진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을 보면 노점은 보행로 너비가 최소 2.5m 이상 유지되는 보도에 설치할 수 있다. 광진구는 보도자료에서 “불법 거리가게들이 보도를 불법 점유하면서 보행폭이 2m에 불과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철거되지 않은 가게 29곳의 보행로 너비를 걸음 수로 측정한 결과, 상가가 들어선 건물에서부터 노점까지 6~7 걸음으로, 너비는 평균 4m 정도였다.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이지만 맨눈으로도 여러 사람이 무리 없이 통행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 ‘귀에 걸면 귀걸이’ 같은 법 적용… 변호사 “위법하다”
광진구가 모든 절차를 어기고 기습적인 강제철거를 강행한 이유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행정대집행법 3조 3항 “비상시 또는 위험이 절박한 경우”다. 야간집행을 금지하는 같은 법 시행령에서도 “비상시 또는 위험이 절박한 경우”를 예외사유로 두고 있다.
광진구 가로정비팀 팀장은 “(먹거리 노점의 경우) 음식을 조리하면 불이 날 수도 있다. 가스를 쓰는 업소도 있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가 일어날 징후라도 있었냐는 질문에는 “대한민국의 큰 사건은 대부분 예방을 안 해서 일어난 것”이라며 “불이 나고 (노점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기 전에 긴급하게 대비해야 했다”고 말했다. 야간집행에 대해서는 “밤에는 불이 안 난다는 보장이 있나. 상황에 맞게 신속하게 철거해야 했다”라고 덧붙였다.
류하경 법률사무소 물결 변호사는 24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광진구 주장은)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류 변호사는 “노점 철거 관련해 사전협의 절차가 없었고 노점에 공공복리를 위협하는 긴급성도 전혀 없었다. 8일 새벽 3시에는 다들 장사 안 하고 문은 닫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음식조리 자체를 긴급한 화재원인으로 본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따지면 음식을 조리하는 모든 식당을 폐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노점상들은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인근에 농성장을 설치하고 8일부터 오늘(24일)까지 17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