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남짓 버스탑승 투쟁하고 현행범 체포
빗속에 세워두고 스타렉스 차량에 욱여넣기까지
법원 “경찰 현행법 위반… 국가배상책임 성립”
2021년 이후 전장연 투쟁에 대한 첫 국가배상 판결
법원이 “대한민국은 장애인과 그의 활동지원사에게 1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68단독 손광진 판사는 지난달 30일, 버스탑승 투쟁을 한 장애인에게 700만 원, 그의 활동지원사에게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비마이너는 판결문을 입수해 자세히 살펴봤다.
- 2023년 여름, 박경석과 박명훈이 체포된 상황
지난해 7월 14일 오후 2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서울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의 한 횡단보도에서 버스탑승 투쟁을 했다. 휠체어 이용자는 탈 수 없는 계단버스, 일명 ‘차별버스’를 막아서고 “태워 주십시오”라고 요청했다.
이후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영등포경찰서 경찰은 박 대표에게 일반교통방해, 업무방해, 미신고 집회 개최 등의 혐의가 있다며 박 대표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체포 시각은 2시 3분이었다. 버스탑승 투쟁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경찰은 인도 위에서 박 대표를 약 25분간 포위했다. 당시 비가 쏟아졌고 경찰은 우의를 입었지만 박 대표는 우산 없이 그대로 비를 맞아야 했다. 박 대표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하고 나서야 경찰은 박 대표가 인근 건물 안으로 이동하는 걸 허락했다.
현행범으로 긴급하게 체포했는데 호송은 한 시간 넘게 지체됐다. 휠체어 이용자를 호송할 경찰 차량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박 대표의 활동지원사 박명훈 씨에게 장애인콜택시(특별교통수단)를 부르라고 요구했다.
이에 활동가들은 “장콜은 호송 수단이 아니다. 호송 차량은 경찰이 마련해야지 왜 우리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나”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도착한 차량은 검은색 스타렉스였다.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 가능한 차량이 아니다. 경찰은 차량 출입구에 철제 경사로를 덧대더니 그 위로 박 대표를 호송하려 했다.
경사로 기울기는 매우 높았다. 결국 박 대표는 차량에 오르던 중 뒤로 나자빠졌다. 경찰은 휠체어를 세워 박 대표를 차 안으로 욱여넣었다. 차량 내부도 문제였다. 휠체어를 고정할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다.
박 대표뿐 아니라 활동지원사 박명훈 씨도 체포됐다. 박 대표가 버스탑승 투쟁을 할 당시 명훈 씨는 ‘장애인 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박 대표의 활동을 지원했다. 즉, 수동휠체어를 밀어서 박 대표가 원하는 장소로 가거나 식사, 배변 지원 등 활동지원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학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명훈 씨는 투쟁 당시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친 적도 없다. 활동지원사 본연의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체포됐다. 경찰이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박 대표와 명훈 씨는 30시간 동안 경찰서에 구금돼 있다가 7월 15일 오후 7시 45분경 석방됐다. 박 대표는 업무방해 혐의로, 명훈 씨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나머지 혐의는 ‘혐의 없음(불송치)’으로 결정 났다.
- 박경석과 박명훈,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제기
박 대표와 명훈 씨(원고)는 대한민국(피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박 대표의 경우 버스회사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명훈 씨는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게 아니라 활동지원사로서 박 대표의 활동을 지원한 것일 뿐이라 역설했다.
또한 박 대표와 명훈 씨 모두 도망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없기 때문에 위법한 체포라고 했다. 경찰은 이 외에도 박 대표와 명훈 씨를 빗속에 방치했고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없는 차량으로 박 대표를 호송했다. 이에 박 대표와 명훈 씨는 경찰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인권존중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경찰은 조사를 마친 후 박 대표와 명훈 씨를 즉시 석방하지 않고 다음 날까지 구금했다. 더 이상 구금의 필요성이 없는데도 장시간 구금한 것은 형사소송법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경찰이 박 대표와 명훈 씨에게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국가배상법에 따라 대한민국은 박 대표에게 2천만 1백 원을, 명훈 씨에게 1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 경찰 “‘다소 불편함’은 있었겠지만 위법 체포 아냐”
경찰은 박 대표와 명훈 씨가 일반교통방해죄 등을 저질렀고, 체포 또한 현행범 체포 기준을 충족했기 때문에 위법한 체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스타렉스 차량을 이용한 호송 과정에서도 박 대표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입었다고 볼만한 사정도 없고, ‘다소 불편함’이 있었더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건 아니라고 했다.
박 대표와 명훈 씨를 다음 날 석방한 것도 형사소송법을 위반한 게 아니므로 ‘불법 구금’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법원, 불법 체포·구금 인정… 헌법 및 형사소송법 위반
법원은 경찰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손 판사는 “체포 과정에서 발생한 행위들은 위법하고 객관적 정당성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우선 당시 체포가 위법하다고 봤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경찰이 ‘체포의 이유’라고 주장한 혐의와 실제 적용한 혐의가 안 맞는 문제가 있었다.
경찰은 박 대표와 명훈 씨가 ‘일반교통방해죄’를 저질러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수사 후 일반교통방해죄는 ‘혐의없음’으로 결정됐고 박 대표(업무방해)와 명훈 씨(도로교통법 위반)는 다른 혐의로 송치됐다.
법원은 “이 재판에서 일반교통방해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순 없”지만 일반교통방해죄에 대해 “기소, 형사재판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박 대표와 명훈 씨가 일반교통방해죄를 저질러서 체포했다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 법원은 “반드시 체포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박 대표는 “언론을 통해 이름 등이 알려진 사람으로 신원이 이미 명확히 파악”된 사람이다. 명훈 씨는 “교육 이수증을 받고 활동하는 활동지원사로 신원 파악에 어려움이 없”다. 게다가 버스탑승 투쟁이 “녹화되고 있었”고 “공개된 도로에 다수의 사람이 현장을 목격하고 있었”다.
즉, 박 대표와 명훈 씨에게는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없었기 때문에 체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체포와 같이 사람 신체에 제한을 가하는 강제처분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필요 최소한의 범위로 행사가 제한돼야 한다”며 경찰이 불법적으로 체포했다는 걸 강조했다.
법원은 “현행범 체포 자체가 위법”하니 경찰서 구금도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30시간 구금된 것도 문제지만 “구금 시간의 길이와 관계없이” 경찰이 박 대표와 명훈 씨를 구금한 것은 “신체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또한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데도 조사 후 즉시 석방하지 않은 것은 “현행범 체포의 위법성 여부와 별개로 형사소송법 조항을 위반”한 거라 판단했다.
- 버스회사 업무방해 X, 집회 시 위협 X, 경찰인권 탄압은 O
버스회사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박 대표와 명훈 씨가 “도로에 있던 시간은 체포 과정을 포함해 1분도 채 되지 않았”다며 “명백히 교통을 방해해 통행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했다거나, 위력을 행사해 버스운행 업무를 방해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미신고 집회를 개최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당시 버스탑승 투쟁을 “미신고 집회로 본다 하더라도 해당 집회가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명백하게 초래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해산명령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고 봤다.
법원은 경찰이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고도 했다. 앞서 설명했듯 박 대표와 명훈 씨는 빗속에서 25분가량 방치됐다. 법원은 “신병확보가 이미 이뤄졌고” 박 대표와 명훈 씨가 “특별히 도주를 시도”하지도 않았는데 25분이나 빗속에서 “대기시켜야 했을 불가피한 이유”가 없다고 봤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허용되는 범위 내의 공권력 행사라 보기 어렵고, 수사절차에서 피의자와 관련자의 인권을 존중하도록 명시한 형사소송법”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 스타렉스 차량, 교통약자법·장애인등편의법·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법원은 경찰이 호송 차량이라고 가져온 스타렉스 차량에 대해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고 했다. 해당 차량에는 “휠체어 리프트 등 승강설비, 고정설비, 손잡이 등이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서 말하는 특별교통수단”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기울기가 심했던 철제 경사로 역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제시하는 접근로의 기울기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봤다. 더불어 이 모든 호송 과정에서 경찰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정한 “공공기관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경찰이 스타렉스 차량을 이용한 호송 과정에서 ‘박 대표가 신체적·정신적 손상을 입었다고 볼만한 사정도 없다’고 한 주장에도 반박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2조를 보면 “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의 사유가 되는 장애라 함은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 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돼 있다.
경찰은 여기서 “신체적·정신적 손상”이라는 문구만 따와 박 대표에게 그런 손상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 해석을 잘못한 것이다. 법원은 “(2조 내용은) 차별행위로 인한 결과를 판단하는 요건이 아니라 차별행위의 사유가 되는 ‘장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요건”이라고 짚어줬다.
이 모든 판단에 따라, 피고인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에 의해 경찰의 직무상 불법행위 때문에 박 대표와 명훈 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박 대표에게는 위자료 700만 원, 명훈 씨에게는 3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 호송 차량으로 장콜 부르라 한 것에는 국가배상책임 없어
언론에서 ‘일부 승소’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박 대표와 명훈 씨는 총 3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지만 법원은 총 1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법원은 박 대표와 명훈 씨 주장 중 딱 한 가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이 활동지원사인 명훈 씨에게 박 대표를 호송할 장애인콜택시를 부르라고 한 것이다.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에는 “경찰차량을 사용할 수 없거나 기타 특별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일반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리고 경찰이 안전한 호송을 하기 위해 장애인콜택시를 부르라 했고, 강압적으로 지시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법원은 이 사안에 대해서만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2021년 이후 전장연 투쟁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을 명한 첫 판결
원고들은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와 기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난달 30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이 사건은 단일 사건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 들어서 계속 일어나는 경찰의 탄압, 폭력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 탄압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는 측면에선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또한 “검은색 스타렉스 차량은 장애인 호송 차량이 아니었다. 장애인을 고려한 차량을 불러달라고 했는데 경찰은 해당 차량이 장애인 호송 차량이라고 뻔뻔하게 거짓말했다. 결국 탑승 중에 뒤로 넘어졌고 차 안에도 휠체어가 있을 만한 공간과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었다”며 “법원에서 이 거짓말을 (현행법 위반이라고) 인정했다는 게 의미 있다”고 했다.
명훈 씨는 “활동지원사로서 장애인의 이동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박 대표의) 옆에 있단 이유만으로 어처구니없이 체포됐다. 지금도 박 대표가 가는 집회현장에 같이 가서 활동지원을 하는데 앞으로는 경찰도 주의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쁘다”고 했다.
더불어 “경찰이 활동지원서비스에 대한 이해를 갖추면 좋겠다. 활동지원시버스는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제약이 많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삶을 지원하는 일이다. 장애인이 권리 보장을 원한다면 활동지원사는 이를 지원한다. 경찰이 그 점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송대리인인 최현정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법원이 집회·시위 관련해서 보수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장이 인정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2021년 이후로 전장연 활동가에 대한 위법한 현행범 체포가 심했는데 (이번 판결은)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명한 첫 번째 판결로서 의미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