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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8월 전장연의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에 활동지원사로서 참여했다. 약 2주간 오슬로·베를린·파리를 순회하며 특사단원인 이은혜 김포장애인야학 활동가에게 필요한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했고, 종종 영어 통역도 맡았다.

사실 나는 특사단을 통해 난생처음으로 활동지원사 일을 하게 됐다.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보조강사로 일하던 인연으로 제안을 받고 부랴부랴 활동지원 교육과 실습을 이수하고 바로 실전에 투입된 것이었다. 그랬던 만큼 특사단 활동 기간 내내 많이 서툴러서 은혜 씨와 다른 분들에게 죄송하기도 했고, 많은 걸 배우고 느꼈다.

이전에 해외에 나가면 낯선 풍경과 명소를 감상하기에만 바빴다. 그러나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이용인을 지원하며 이전에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지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다닐 때면 바닥의 턱과 경사며 신호등 초록불 시간 등이 휠체어 이용자에게 적합한지, 한국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가 자연스럽게 신경 쓰였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승강장의 간격과 단차, 경사로 비치 여부 등 안전한 이동을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이 많았다.

특사단 활동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들은 이동권이 전반적으로 잘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실상은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예를 들어 파리의 경우 저상버스가 잘 갖춰져 있지만 휠체어가 접근가능한 지하철 라인은 딱 하나뿐이고, 엘리베이터가 찾기 힘든 곳에 있어 역에서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대중교통 외에도 숙소의 휠체어 이용자용 객실에 막상 들어가 보니 공간이 우리에게는 맞지 않아서 방을 바꾸고, 센강 유람선에서도 휠체어 이용자는 시야가 제한되는 공간에만 머물러야 하는 등 다양한 지점에서 크고 작은 불편들이 있었다. 이처럼 휠체어 이용자의 활동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는 곳에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그 방식이 이용인에게 편리한지를 나도 함께 확인하며 이동권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게 됐다.

- 호이스트와 휠체어에게는 너무나 높은 공항의 장벽

유럽도 많은 지점에서 이동권이 잘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걸 가장 절실히 느낀 건 바로 공항과 비행기에서였다. 은혜 씨와 나, 그리고 다른 일행들은 새로운 나라로 이동할 때마다 진이 쫙 빠지곤 했다. 안 그래도 챙겨야 할 게 많은 출국장의 관문이 우리에게는 유독 더 높았기 때문이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칠 때면 호이스트가 번번이 문제시되었다. 호이스트는 몸을 들어 이동시키는 데 사용되는 보조기구이다. 은혜 씨의 경우 휠체어를 타고 내릴 때 이 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유럽에도 개인 호이스트를 가져가게 되었다.

그런데 호이스트를 수하물로 부치려 하면 항공사 측은 번번이 난감하다는 태도를 취하고, 호이스트 안에 어떤 배터리가 들어있는지 거듭 물었다. 특히 베를린 공항에서 출국할 때는 공항 직원들의 요구대로 우리끼리 호이스트를 비닐로 둘둘 말아 포장까지 했는데도 직원들은 수속 처리를 거부했다.

호이스트에 있는 배터리는 작고 안전하며 그동안 문제없이 비행기에 실어서 왔다고 계속 설명해도, 무엇 때문에 수속을 거부하는지 명확히 설명해 주지 않고 항공사 직원을 데려오라고 일관하는 바람에 시간이 무척 지체되어 버렸다. 또 전동휠체어의 무게, 배터리 종류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에 거쳐 해명해야 했기 때문에 공항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는 한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호이스트와 전동휠체어를 수하물로 승인받은 다음에는 비행기 탑승이라는 관문이 남아있었다. 승객 소유의 휠체어는 수하물 칸에 실려 이송되기 때문에, 휠체어 사용자들은 기내용 휠체어로 비행기에 탑승해야 한다. 이때 신체지원이 필요한데, 은혜 씨의 경우에는 휠체어를 옮겨 타기 위해 4명 정도의 지원인력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오슬로에서 베를린으로 넘어갈 때 이와 관련해 사건이 일어났다.

- 활동지원사와 이용인을 강제로 분리시킨 베를린 공항

오슬로에서 베를린행 비행기를 탑승할 때 공항 측 직원들이 은혜 씨의 이동을 지원했다. 그런데 직원들이 적절한 지원 방식을 알지 못했던 탓에 이 과정에서 은혜 씨가 신체적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은혜 씨의 의사를 확인한 후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방법을 잘 아는 우리 일행이 직접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러나 노르웨이 항공사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공항 측은 이를 거부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리프트가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 5명과 우리 측 비장애인 지원인력 2명만 비행기에 남을 수 있다고 했다. 필요한 이동지원은 공항 측 담당 인력이 주도할 것이니 다른 일행들은 먼저 비행기에서 내리라고도 했다.

이에 우리는 “공항 담당자들이 지원을 적절히 못 했던 적이 이미 있기에 우리가 직접 지원하려는 것이며, 여기에는 최소 4명이 필요하다”고 재차 설명했다. 이동지원을 마친 뒤 2명을 제외한 나머지 비장애인 일행은 리프트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비행기에서 내리겠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직원 중 한 명은 대뜸 경찰을 불렀고, 우리 이야기에 “알겠다”라고 소통했던 직원은 어떤 일인지 다시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결국 비행기로 출동한 경찰 역시 항공사와 공항 측의 지시를 따르라며 활동지원사를 비롯한 비장애인 일행을 장애인 당사자들과 분리시키려 했다.

처음에는 우리 쪽 지원인력 4명이 남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가, 우리가 통역을 통해 이 사실을 공유하는 사이 자신은 기회를 줬는데 시간을 지체시킨다며 모두 내리라고 말을 바꾸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로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당시 영어 통역을 맡았던 나는 우리가 직접 이동을 지원하려는 이유와, 일행 모두가 무리해서 리프트에 타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설명했다.

그러나 경찰은 나중에 가서는 내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고, 우리 때문에 비행 일정이 무척 지연되고 있다며 소통을 아예 거부해 버렸다. “영화 같은 걸 찍고 있는 모양인데, 비행기를 이용하는 일행이 장애인 당사자들과 당신네뿐인 것도 아니다. 유난 떨지 말라”는 식으로 모욕적인 발언까지 했다.

공항 측 전문 지원인력이 있으니 이들에게 이동지원을 맡기라는 것이 항공사, 공항, 경찰의 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전문가들이라 해도 이용인과 초면이고, 언어조차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안전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 경찰은 내가 지원방법을 통역해 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직접적인 신체지원을 맡은 상태에서 제3자가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이용인을 잘 아는 활동지원사가 즉각적으로 지원하는 것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안전성에 있어서나, 지원을 받는 측의 심적 부담에 있어서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경찰 등은 고려하지 않는 듯했다. “만약 지원하다 문제가 생기면 여기 담당자들이 책임지겠다는 것이냐”고도 물었지만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태도에 은혜 씨를 비롯한 5명의 장애인 당사자 활동가분들은 “정 그렇다면 여기 사람들이 온전히 지원하게 둬라. 아무것도 도와주지 말고 전부 알아서 책임지게 해라”라고 의사를 표했다. 그리하여 나를 제외한 모든 비장애인 일행이 먼저 내리고 다섯 분 모두가 공항 측 담당 인력의 지원을 받았는데, 역시나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

신체지원은 가급적 동성이 하는 게 원칙이며, 이분들은 이성 지원사와의 접촉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지만 모든 이용인들을 남녀 두 사람이 일괄적으로 지원하였다. 개개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적확하게 제공하지 못하였음은 물론이다. 나는 안전이 염려되어 은혜 씨가 “알아서 하게 해!”라고 강경하게 입장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계속 개입하며 지원 방식을 통역했다.

그럼에도 은혜 씨를 포함한 활동가 두 분은 기내용 휠체어로 이동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전문 지원인력이라는 사람들은 고개를 내저었고, 비행기 밖으로 내쫓겼던 일행들이 다시 불려 오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쪽 사람들이 직접 이동을 지원하고 나서야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었다.

리프트에서 만난 다른 경찰은 우리의 여권을 걷어가 확인하며 내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항공사와 공항 측 지침을 따르니 잘 해결되지 않았느냐. 왜 문제를 일으킨 것이냐?” 물었다. 당시에는 너무 지쳐서 “그쪽과 (지원 방식에 대해) 합의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오해가 있던 모양이다….”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우리는 문제를 일으키려 들지 않았으며 공항 측의 지원 덕에 상황이 잘 마무리된 것도 아니라고, 오히려 우리가 직접 지원을 해서 겨우 일이 끝난 것이라고 말이다.

이 사건 뒤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분노를 나눴지만, 속으로는 자책도 했다. 내가 중간에서 통역을 제대로 못 해서 일이 더 커졌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이 사건은 나만의 잘못도, 우리 일행 때문에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양측 모두에게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해야 했고, 서로의 시스템이나 입장을 잘 몰랐기에 상황이 더 심각해졌던 측면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항공사와 공항 측은 이유조차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고 경찰을 부르는 등 처음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고압적인 태도로 지시를 따르라고만 하고 한국 영사관과의 통화도 거부했던 경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나를 비롯한 우리 일행도 당황하고 흥분할 수밖에 없었고, 의사소통도 더 원활치 않았던 것이다.

-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당사자’라는 낯선 승객

호이스트와 전동휠체어를 갖고 출국할 때마다 맞이한 어려움과 베를린 공항에서의 사건을 겪으며, 국내·외를 불문하고 항공사와 공항이 장애인 승객을 받는 것에 익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은 활동지원사 승객에게도 익숙하지 않았다.

활동지원사는 이용인의 곁에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이용인과 강제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이동을 비롯한 신체지원은 아무나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활동지원사가 우선적으로 맡아야 하고 그럴 수 없을 경우 최소한 곁에서 보조할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베를린 공항과 경찰 등은 이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유럽을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시시때때로 나와 다른 활동지원사분들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왜 이용인과 함께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설명해야 했다. 그리고 베를린 공항에서는 끝내 그 설명이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게 특사단은 이처럼 낯선 존재, 때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로서 타국을 누비고 너무나도 어설픈 언어로 나와 우리에 대해 설명해야 했던 경험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위치가 어떤지, 왜 전장연은 특사단을 파견해 가며 이를 알리고 비판하는 것인지를 간접적인 방식으로 체감했다. 그리고 이용인과 함께 생활하는 활동지원사로서, 이용인이자 활동가인 은혜 씨의 투쟁이 나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 ‘활동지원사’의 존재성

2주간 활동지원사로 일하며 나는 특사단 내에서도 나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종종 고민했다. 예를 들자면 해외에서 활동 중이었던 특성상 은혜 씨를 비롯한 일행들과 현지인들 사이에서 통역을 맡고는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따금씩 고민이 따라왔다.

활동지원사 교육에서 반복적으로 배웠던 점 중 하나가 ‘이용인의 의사소통을 대신하려 들거나 함부로 개입하지 말 것’이었는데, 바쁜 상황에서 통역을 하다 보면 내가 은혜 씨의 의사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통역에 있어 필요한 활동지원사의 자세는 무엇일까?’라는, 특사단이 아니었다면 접하지 못했을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특사단은 베를린 브란덴베르크 문, 파리 지하철역 등 유럽 곳곳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진행했다. 사람들이 휠체어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바닥에 드러누울 때마다 나는 ‘같이 누워야 해, 말아야 해?’ 고민했다. 나는 어디까지나 활동가가 아니라 활동가의 지원사였고, 특사단의 투쟁에 대한 맥락과 의제를 온전히 익히지도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 끝에는 대개 엉거주춤하게 드러눕고는 했다. 나는 특사단의 투쟁에서 주체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들 속에서 나의 존재성 역시 특사단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활동지원사의 존재와 역할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결국 장애인 당사자의 존재가 공항과 비행기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얼마나, 어떻게 긍정되느냐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