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비상계엄 정당화·내란수괴 윤석열 옹호 안건 의결
반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직권조사·의견표명 안건은 부결
시민들 “내란수괴 옹호하는 인권위… 참담한 심정”
인권위 직원·장애인들 “인권위원들에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10일, 전원위원회(아래 전원위)에서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시민들은 즉각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11일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동조 안건’을 의결한 인권위를 강하게 규탄했다. 이들은 “존재가치를 상실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인권침해와 관련해 인권위에 집단 진정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
- 인권위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
‘계엄 선포로 야기된 국가의 위기 극복 대책 권고의 건’이라는 이름의 내란동조 안건은 지난달 13일 인권위 전원위에 처음으로 상정됐다. 그러나 시민들과 인권위 직원들의 거센 반발로 회의가 무산됐다. (관련 기사: 시민·직원들이 인권위 ‘윤석열 방어권 보장’ 안건 상정 막았다)
해당 안건은 “계엄이 선포되고 지속된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이 큰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례가 없고 기물 파손의 정도도 경미한 수준이며, 체포되거나 구금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계엄 선포에 관하여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내란죄를 적용하여 체포 또는 구속 영장을 발부하는 일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등 사실상 내란 사태를 정당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김용원·김종민·이한별·한석훈 위원이 제출하여 10일에 상정된 안건은 이보다 더 후퇴했다.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통치행위’에 속한다 할 것이고, 이것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은 없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내란동조 안건에 안창호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김용원·강정혜·이충상·이한별·한석훈 위원이 찬성했고 김용직·남규선·소라미·원민경 위원은 반대했다. 그렇게 찬성 6인, 반대 4인으로 안건은 결국 통과됐다.
안건이 통과되기 전 일부 내용이 수정돼 △헌법재판소장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심리 시 적법절차 원칙을 준수할 것 △박성제 법무부장관 등에게 탄핵소추의 남용 여부를 적극 검토하여 남용 인정 시 각하할 것 △윤석열에 대한 본안 심리 시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절차를 준수할 것 △서울중앙지방법원장 등에게 구속 피의자에 대해 형사법의 대원칙인 불구속 재판을 유념할 것을 권고하는 것으로 의결됐다.
반면 이날 전원위에 상정된 ‘대통령의 헌정질서 파괴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인권위 직권조사 및 의견표명의 건’은 표결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부결됐다.
- 시민들 “내란수괴 옹호하는 인권위… 참담한 심정”
11일 오전 10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한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민변) 소수자인권위원장은 “인권위 전원위는 ‘비상계엄에 대해 직권조사를 하라’는 남규선 상임위원이 발의한 안건에 대해서는 즉각 기각했다. 비상계엄에 대해서 인권침해를 조사하라는 요구를 완전히 묵살한 것”이라며 “인권위가 수정 의결한 안건은 철저하게 내란수괴를 옹호하는 안건이자 이를 지지하는 극우 세력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정말 참담하다”고 이야기했다.
박 위원장은 “짧은 일주일 동안 민변의 변호사들이 40쪽이 넘는 진정서를 썼고 일주일 만에 457명의 시민들이 피해 사례를 진술하면서 진정에 동참했다. 이 노고가 내란에 동조한 인권위 손에 의해 한순간에 폐기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진정을 보류한다”며 “인권위에 책임을 끝까지 묻고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단 진정에 참여한 국회 인근 주민인 한승주 씨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처음에는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나 비상계엄이 현실을 장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국회 출입이 통제되고, 머리 위로 헬기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을 때 5.18의 참상이 겹쳐 보여 한동안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한 씨는 “그날부터 지금까지 자유와 신체·안전에 대한 권리, 그리고 심리적 안정권 등을 분명히 침해받고 있다. 왜 인권위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수많은 국민의 인권은 아랑곳하지 않는가”라며 “다시는 이런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권위가 바로 서길 바란다”고 전했다.
- 인권위 직원·장애인들 “6명의 인권위원들에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
문정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인권위 지부장은 “인권위의 설립 목적을 부정하는 내란동조 안건 의결은 인권위 24년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치욕으로 남게 됐다. 많은 직원들이 어제 전원위가 끝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괴감이 들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전했다”며 “인권위 내부에서도 인권을 파괴한 안창호·김용원·강정혜·이충상·이한별·한석훈 6명의 인권위원들에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들도 기자회견에 참석해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이 자리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에 의해 부당하게 해고당한 최중증장애인들이 함께 있다. 인권위는 최중증장애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외쳤음에도 이를 외면하며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인권위는 또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에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지키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오히려 시설에서 나오려는 장애인들을 가로막는 데 일조했다”며 “인권위가 내란옹호위원회가 되어 인권을 팔아먹은 비참한 현실을 참을 수 없다. 인권위원들의 사퇴를 위한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