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민주화운동·해외입양·집단수용시설 등 피해자들
국회 앞에서 처음으로 공동 기자회견 개최
“7가지 요구 담은 과거사법 조속히 개정하라”
행안위 소속 김성회 의원 “11월 내에 법 통과 목표”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 제외돼 논란

16일 오후 12시 국회의사당 앞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차린 농성장에서 열린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중단 없는 과거 청산!”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16일 오후 12시 국회의사당 앞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차린 농성장에서 열린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중단 없는 과거 청산!”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민주화운동 희생자, 해외입양 피해자, 형제복지원·영화숙·재생원 등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인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 덴마크한국인진실규명그룹, 집단수용시설국가폭력피해생존인대책위 등이 16일 오후 12시 국회의사당 앞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차린 농성장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 출범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아래 과거사법)의 조속한 개정을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과거사법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인 행정안전위원회(아래 행안위) 소속 의원들이 참석해 “11월 내에 과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확정된 123대 국정과제에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 피해자들 “7가지 요구 담은 과거사법 조속히 개정하라”

3기 진화위는 과거사법 개정이 이루어져야만 출범할 수 있다. 현행법은 2기 조사기간 종료일(2025년 5월 26일) 이후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3기 진화위 설치에 관한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과거사법 개정을 촉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피해자들은 2기 진화위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3기 진화위가 보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7가지의 개정 사항을 요구했다.

△3기 진화위가 조속히 출범할 수 있도록 과거사법 즉각 개정 △압수·수색 영장 청구 및 고발·수사 의뢰 권한 보장 △사건 특성에 맞는 조사 소위 구성 및 운영 △직권 전수조사 확대 △피해자가 진실규명 과정에 참여하는 등 법적 권리 보장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배·보상 기본계획 수립 △반역사 인식 인사가 임명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 마련 등이다.

최종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지회장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억울하게 희생됐지만 죽음의 과정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의 가족 모임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 년, 진상규명 조사를 시작한 지 25년이 지나가고 있다”며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압수·수색 영장 청구 및 고발·수사 의뢰 권한 등 조사 권한을 강화한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기자회견 참가자가 “조사권한을 강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기본법 개정하라!”라고 적힌 커다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한 기자회견 참가자가 “조사권한을 강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기본법 개정하라!”라고 적힌 커다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피터 민 홍 레겔 뮐러 씨는 덴마크 해외입양인으로,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입양인들의 모임인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의 공동대표이다. 이 그룹은 해외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2022년 2기 진화위에 조사를 신청했다. 당시 해외입양인들 376명이 조사를 신청했으나, 이 중 56명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고 311명은 진화위 조사 기간 만료로 조사가 중단됐다.

피터 뮐러 대표는 “과거사법 개정은 단순한 정치적 사안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행해야 할 도덕적·역사적 책무이다. 피해자들은 3년이 넘도록 답을 기다려왔다. 법안을 통과시켜 수많은 세월 동안 간절히 기다려온 피해자들에게 진실규명의 기회를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한종선 집단수용시설국가폭력피해생존인대책위 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딴지를 걸더라도 피해자들을 믿고 당당히 협상에 임해 우리의 요구를 반드시 관철시켜 달라”고 의원들에 당부했다.

한 기자회견 참가자가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요구가 담긴 리본을 줄에 묶고 있다. 사진 김소영
한 기자회견 참가자가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요구가 적힌 리본을 줄에 묶고 있다. 사진 김소영

- 행안위 소속 김성회 의원 “올해 11월 내에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시킬 것”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행안위 소속 위원인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에 나섰다. 김 의원은 “2기 진화위 종료 후 최소 100일 안에는 3기를 출범시키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라며 “올해 11월 내에 국민의힘과 협상해서 여야 합의로 과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법적·제도적으로 많은 분들의 한을 풀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앞서 행안위 소속 위원인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기자회견에 앞서 행안위 소속 위원인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또 다른 행안위 위원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3기 진화위가 공백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과거사 정의를 회복하는 정상화의 출발점”이라며 “피해자와 시민사회가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책임 있게 역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과거사법 개정안은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와 행안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등을 차례로 통과해야 시행될 수 있다.

- 이재명 정부 123대 국정과제에서 제외된 국가폭력 피해자의 요구

같은 날 이재명 정부는 첫 국무회의에서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했다. 그러나 10번 과제인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과거사 문제 해결’에서 ‘여수·순천 사건 진상규명’,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 사건’ 외에 2기 진화위에서 조사했던 사건과 그에 대한 후속 대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국정기획위원회(아래 국정위)는 지난 7월 3일 3기 진화위 출범을 신속과제로 선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17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지난 8월 국정위 국민참여기구에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인의 요구를 전달했을 때, 보건복지부·국가인권위원회·진화위가 피해생존인이 진실규명 과정이나 소송 중 겪는 어려움을 반영할 수 있는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며 “법안이 아직 개정되지 않았다고 해도 국정과제에 진화위 내용이 한 글자도 없어서 황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2기 진화위는 현재 대다수 위원의 임기가 종료돼, 박선영 위원장과 허상수 비상임위원 1명만 남은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진화위의 활동과 박선영 위원장의 임기 종료는 11월 26일로, 17일 기준 70일이 남았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오는 10월 21일 오후 2시 국회 앞에 다시 한번 모여 ‘국가폭력 피해자 대회’ 개최 예정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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