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대학교에서 인권단체, 법조계 모여 토론회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른 제3자 녹음도 학대 증거인정 가능할까
학대피해자 실질적 보호 위해 ‘예외 적용’ 필요
장애아동부모와 같은 제3자가 교실 등에서 벌어지는 자녀의 학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몰래 한 녹음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토론이 벌어졌다.
장애인권단체, 법률 단체 등은 지난 25일 서울대학교에서 ‘제3자 녹음 금지의 법적 쟁점과 학대 피해자 실질적 보호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2023년 한 장애아동부모는 특수교사의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자녀의 책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정서적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되었다.
1심에서는 해당 녹음이 증거로 채택되어 가해 교사가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나, 지난 5월 법원 2심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고 가해 교사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다.
2심에서 증거 효력이 뒤집히자 3심 재판부 역시 이 녹음을 토대로 한 당사자 진술이나 면담 내용은 증거로 채택하지 않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에 장애계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시설 장애인이나 치매 노인, 유아 등 스스로 녹음이 어려운 학대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제3자의 녹음이 증거로 인정되어야 한다며 이번 토론회를 개최했다.
제3자 녹음이 증거 인정될 수 있는 다양한 예외적 해석 가능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재왕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교수는 법원이 장애아동 부모의 녹취물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이유가 부모 등 제3자가 한 녹음이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와 제14조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통신비밀보호법 제4조에서는 이러한 불법 녹취물에 대해 ‘재판 또는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통신보호비밀)법령이 있더라도 학대 사실에 대한 녹취물이 다른 유사한 판례 해석을 통해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다퉈봐야 한다”며 발제를 시작했다. 김 변호사는 “해당 법률의 예외 인정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원칙배제-예외인정설’, ‘비교형량설’, ‘위법성조각사유 고려설’, ‘대리동의설’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먼저 김 변호사는 ‘원칙배제-예외인정설’에 대해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항에 대한 판례를 제시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 2항에 따르면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 하지만 2020년 대법원은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된다면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한편 김 변호사는 ‘비교형량설’ 역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항에 대한 2023년 판례에서 “개인의 사생활 내지 인격적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하여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벗어난 것이라면 공익이 개인의 인격적 이익보다 우월한 것으로 단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면서도 “한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근거로 들었다.
김 변호사는 “학대 피해 녹음도 위법수집증거의 일종이지만 공익이 우월한 경우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판례에 따라 증거로 인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가 제시한 ‘위법성 조각사유 고려설’은 1심 재판부가 녹음본을 증거로 인용한 근거이기도 하다. 위법성 조각사유 고려설은 제3자의 녹음을 일종의 정당방위로 본다. “통신비밀보호법에서 제3자의 녹음을 불법하게 보지만 정당방위 등 위법성 조각 사유가 있으면 법 위반이 아니므로 ‘불법’이라는 논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3자 녹음을 학대에 대한 정당방위로 보면 불법이 아니므로 통신비밀보호법 적용 자체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김 변호사는 미국 사례를 들어 장애아동에 대해서는 ‘대리동의설’의 적용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한국의 통신비밀보호법과 유사한 연방 도청법의 판례를 들며 “미국 일부 주의 법원에서는 부모 또는 보호자가 아동을 대신해 녹음을 한 경우 학대가 의심되거나 아동의 연령이나 성숙도를 고려해 증거능력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발제를 마무리하며 “한국적 상황에서 제3자 녹음을 증거로 채택하기 위한 해석으로는 성인에게는 비교형량설, 아동에게는 대리동의설이 가장 적용 가능해 보인다”고 밝혔다.
제3자 녹음 인정, 학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증거능력 인정해야
김 변호사의 발제에 이어 현장 및 법률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뤄졌다. 토론회 좌장은 염형국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맡았다.
김성연 제주특별자치도 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제3자 녹음이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권익옹호기관의 많은 사건들도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녹음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고 증거 인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신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청소년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제3자의 도움 없이 학대 증거를 확보할 수 없는 취약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증거를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가족 등 밀접한 관계에서는 추정적 동의가 가능하다는 해석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신 위원장은 “학대 등의 상황에 대해 예외를 두도록 입법으로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기동부노인보호전문기관 사례판정위원인 박선영 변호사는 신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개인의 사생활이 명확하게 보장받게는 하되 조화롭게 아동, 장애인, 노인처럼 법률이 두텁게 보호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예외적인 적용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러한 의견에 발제를 맡은 김 변호사는 “입법 추진에 대해 동의는 하지만 순조롭게 될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있다”며 “입법이 되더라도 해석의 영역은 분명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기획국장은 “부모연대에서 조사를 해보니 학교에서 정서적 학대, 신체적 학대, 방임 순으로 학대유형이 나타났다”며 “응답자인 부모의 54%가 자녀의 학대를 학교에서 경험했다”고 전했다.
백 국장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해결 절차 자체가 장벽에 부딪힌다는 데 통감하고 있다”면서도 “학생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지식의 전수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배양하는 교육의 본령”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국장은 “의사소통에 취약성을 가진 학생들을 전문성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의 확충, 학급당 학생 수 감축, 중재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관련 소송의 당사자인 장애아동의 아버지도 참여했다. 장애아동 아버지는 좌장의 발언 요청에 “지금도 (자녀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중”이라며 “교육청에서 가족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런 토론회의 이야기들과 방향이 개선되어 앞으로 불행한 일은 만들지 않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 같다”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