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00일, 마이너들의 목소리 ⑥]

[편집자 주]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다. 이재명 정부의 공식 명칭은 ‘국민주권 정부’다. 새 정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다.

비마이너는 이재명 정부 100일을 맞아 장애, 성소수자, 여성, 빈곤 차별에 반대하는 마이너들에게 직접 물었다.

“이재명 정부 100일, 당신은 주권자로 권리를 보장받고 있습니까?”

소수자 논의에 유독 인색한 이재명 정부를 향한 마이너들의 목소리. 비마이너가 모아봤다.

다시 문턱 밖에 남겨진 정신장애인

지난 대선 당시, 정신장애인과 가족 3,454명은 이재명 후보를 공식 지지하며 ‘정신건강 정책 개혁’을 위한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이재명 후보는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되어 온 기존의 정신건강 관련 정책들을 국가가 책임지는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오랜 시간 사회적 배제 속에 살아온 당사자들에게 오랜만에 찾아온 희망의 신호였다.

그러나 정권 출범 이후 발표된 ‘123대 국정과제’ 어디에서도 공약으로 제시되었던 그 약속,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는 보이지 않았다. 국정과제 중 장애인 정책 영역을 살펴보면 발달장애인 지원 확대는 구체적인 수치와 실행 계획으로 명시된 반면, 정신장애인에 관한 내용은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모호한 한 줄로만 남았다. 구체적 로드맵도, 실행 시기도 제시되지 않았다.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 약속을 진심으로 환영했었다. “장애인이 당연하게 권리를 누리는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선언은, 정신장애인들이 처음으로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국정운영의 문서에서 자취를 감췄다.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고, 정신장애인 정책은 다른 영역의 하위 항목으로 흩어져 버렸다. 정신장애인은 또다시 배제되어, 정책의 문턱 밖에 남겨졌다.

지난 7월 11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회원들이 국정기획위원회 인근에서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 국정과제 실현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지난 7월 11일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회원들이 국정기획위원회 인근에서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 국정과제 실현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삼보일배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시설의 벽 너머,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

정신장애인 또한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지닌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통합되어 자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서비스와 자원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시설 중심이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되고,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었음에도, 정신과병상수는 많이 감소하고 있지 않으며, 장기입원 현상도 쉽사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22년 UN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장애인에 대한 지속적인 시설화 문제’와 ‘지역사회기반 서비스 부족’을 강하게 지적했다. 특히 “주거서비스 부재로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책이 어렵다”고 우려하며, 관련 예산 확충과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이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의 필요성을 상기시켜준다.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은 오래된 외침이다. 당사자와 가족들은 기존 법률이 사회통합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별도의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제정을 요구해왔다. 비록 법 제정은 무산됐지만, 이후 정신보건법이 정신건강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 복지서비스 조항이 신설되기도 하였다. 정신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지역사회 복지서비스가 부족하기에,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되어 있는 복지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는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결국 2021년 장애인복지법 제15조 개정을 통해 정신장애인도 지역사회 장애인복지서비스 이용이 가능해졌다.

이는 곧 국가책임제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흐름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과 낙인의 장벽 때문에 조용히 숨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은 끊임없이 국가책임제의 필요성을 외쳐왔다. 이제는 그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국가가 귀를 기울이고 듣고, 응답해야 할 때다.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 정신장애 당사자 포용을 넘어, 가족과 지역사회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가 부재한 사이, 지역사회는 여전히 공백 상태이다. 가령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신장애인의 ‘탈시설’을 이야기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실제로 살아갈 기반은 턱없이 부족하다. 2023년 기준 전국의 정신건강 관련 시설 2,620개 중, 정신의료기관이 84%를 차지한다. 반면 지역사회 복귀를 돕는 정신재활시설은 359개(13.7%)뿐이며, 주간활동을 지원하는 주간재활시설은 전국에 고작 88개다. 229개 지자체 중 3분의 2에는 이런 시설이 단 한 곳도 없다. 이 현실에서 어떻게 ‘지역사회 통합’을 말할 수 있겠는가.

정신장애인은 극심한 빈곤과 고립에도 놓여 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기초생활수급 비율은 70.4%로 장애인 평균(22.2%)의 세 배를 넘는다. 고용률 역시 11.3%에 불과하다(장애인 평균 36.4%). 일할 기회도, 배움의 기회도, 일상을 지탱할 주거도 부족한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일상적 삶의 복원’을 말하는 것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정신장애인의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부담도 심각한 상황이다. 국가가 방관하고 있는 사이, 정신장애인 돌봄의 책임이 오롯이 사적영역, 즉 가족에게 전가되면서, 많은 가족이 정서적, 경제적 부담으로 지쳐가고 있다. 돌봄부담이 과중해질수록 가족들은 현실과 미래를 점차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더욱 더 깊은 무력감과 좌절감 속으로 들어가, 결국 가족 전체의 삶을 뒤흔들 수 있다.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는 비단 당사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돌봄 부담을 국가가 조금씩 나누어 가지는 것, 그것이 곧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정신질환자 주간활동서비스가 신설될 필요가 있으며, 동료지원서비스 등이 확충될 필요도 있다. 또한 정신장애인 가족을 위한 ‘부모상담 지원, 가족휴식 지원’ 등도 새롭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하면서 기본적인 것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주거서비스이다. 현재 서비스 중에서는 공동생활가정 등의 주거서비스만 일부 존재하고 있지만, 추후 지원주택, 자립생활주택 등의 주거서비스가 확충된다면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증진하는 것과 더불어 가족의 돌봄부담을 감소시키는 것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는 국가가 정신장애인, 가족들과 함께 비를 맞아주어야 할 때

정신장애는 단순한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공공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장애인이 겪는 일상적 어려움과 권리 침해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 중인 정신장애 당사자가 386일 동안 강박을 당한 것으로 나타나 큰 충격과 슬픔을 주고 있다.

정신장애인 권리는 보호가 아니라 보장의 문제이다. UN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에 동참할 권리’를 명시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립이란 단순히 혼자서 살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에 참여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을 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즉, 제19조에 의거한 정신장애인의 탈시설화는 지역사회 내 물리적 주거만 주어지고 홀로 방치되는 것과 같은 소극적 권리(negative right)가 아닌, 정당한 편의제공을 받을 권리, 사회통합에 대한 권리 등과 같은 적극적 권리(positive right)가 내포되어 있다. WHO 또한 2021년 지침을 통해 시설·입원 중심에서 탈피하여, 지역사회에 기반한 사람중심의 정신건강서비스를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는 바로 이러한 권리들과 원칙들을 정책적으로 실현하는 핵심 장치가 될 수 있다.

국가가 책임을 다할 때, 당사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성을 복원하고, 가족은 돌봄의 짐을 덜며, 지역사회는 보다 따뜻한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정신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은 곧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돌봄의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떠넘겨왔다. 정신장애 당사자는 ‘문제’로 규정되고, 다소 처벌적으로 권위적인 조치가 취해졌고, 남겨진 사람들은 오로지 스스로 혹은 가족이 가진 자원으로만 버텨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러나 이러한 고립과 파편화의 시대는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를 지켜줄 가장 강력한 힘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연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이제는 국가가 정신장애인, 가족들과 함께 그 빗속에 서야 할 때다. 포용과 연대의 사회는, 배제되어 보이지 않던 정신장애인들을 끌어안는 순간에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정부에게 바란다.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국정과제에 보다 명확히 자세히 규정하고 명문화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라. 우리는 정부가 책임 있는 태도로 나서서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즉각 도입하고, 실질적 실행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는 지금, 이 약속을 다시 묻는다.

 

필자 소개

송승연 인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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