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장애인들 “지하철 이동권 보장되고 있나?” 직접 조사 나서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휠체어 이용자는 이동시간 5배 더 걸려
법 안 지키는 역사…전동휠체어 접근 어려운 화장실도 다수
“서울교통공사는 자료 더 수집하고 제대로 조치해야”
(전장연이) 이동권보다 탈시설에 더 관심이 많은 이유는, 사실 이동권에 대해서는 그다지 명확하게 요구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도권 전철역의 휠체어 접근성은 96%에 달하고, 이제 저상버스도 고상버스보다 더 많이 운행되고 있습니다.
- 11.21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페이스북 발췌-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 보수 정치인들이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을 근거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를 비판하는 가운데, 서울 성북구의 장애인들이 직접 지하철 편의시설 조사에 나섰다.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판(아래 센터판)’은 성북구 관내 지하철 역사를 돌며 역사 내 편의시설이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기준에 적합하게 설치되어 있는지, 장애인이 실제 지하철을 이용할 때 비교통약자와 비교해 어떤 차별을 경험하는지 직접 조사했다.
센터판이 조사한 지하철역은 한성대입구역, 석계역, 돌곶이역, 상월곡역, 길음역, 월곡역, 고려대역, 안암역, 북한산보국문역, 성신여대입구역, 보문역 총 11개 역사로 서울지하철 1호선, 4호선, 6호선, 우이신설선에 해당한다.
지하철 탑승까지 휠체어 이용자, 미이용자 5배 시간 차이나
센터판이 실시한 지하철 이동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이동하는 데 전동휠체어 이용자는 보행자에 비해 평균 2.5배, 수동휠체어 이용자는 5.2배 더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출구에서 출발해 휠체어 이용자는 엘리베이터를 탑승하고, 보행자는 계단을 이용해 지하 승강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장 차이가 크게 났던 길음역의 경우 전동휠체어 이용자는 상행선 탑승까지 8분 15초, 수동휠체어 이용자는 7분 39초가 걸렸다. 반면 휠체어를 타지 않는 보행자의 이동 시간은 2분 35초에 불과했다.
한편 석계역 같은 경우는 6호선에서 1호선 환승 시 휠체어 리프트를 탑승해야만 했다. 조사에 참여한 센터판 활동가 이상우 씨는 “리프트 사용 시 불안하고 불편했다”며 “(휠체어 리프트 작동을 위해) 직원 도착시간까지 5분 이상 소요되었다”고 밝혔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이 씨가 석계역 6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할 때는 13분 50초나 걸렸다. 조사에 따르면 보행자의 환승 시간은 3분 20초로, 전동휠체어 이용자의 이동 시간이 4배 가까이 더 걸린 것이다.
교통약자법 따라 화장실 편의시설 갖추지 않은 지하철역도
지하철역사 내에 있는 화장실도 문제였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과 장애인 등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르면, 휠체어 이용자의 대변기 접근 및 회전 공간을 보장하기 위해 최소 1.4㎡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6호선 상월곡역과 보문역의 경우 휠체어 진입만으로도 공간이 꽉 차, 조사자들은 휠체어를 돌릴 수 없어 이용이 어려웠다고 했다.
한편 6호선 석계역 화장실에는 대변기에 손잡이가 없었고, 길음역에는 휠체어 낙상 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바닥부 비상벨이 부착돼 있지 않았다. 장애인등편의법에는 이 역시 법적으로 규격에 맞게 설치하도록 돼 있다.
특히 월곡역은 휠체어 이용자가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리프트를 탑승하고 화장실까지 이동해야 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조사자들은 돌곶이역, 북한산보문역, 보문역의 경우 승강장에 내려가기 위한 엘리베이터 앞에 공공자전거(따릉이)나 오토바이가 주차돼 있거나 쓰레기가 무단투기되어 있어 이용 시 불편이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이동권 보장 위한 제대로 된 조사 필요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9월 교통약자 이동권 증진을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설문조사를 통해 수집한 자료는 교통약자 배려석과 승강설비 고장문자 발송, 시각장애인 안내도우미 배치, 유모차 대여, 수어영상전화기와 같은 맞춤형 서비스 만족도 등이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의 설문조사나 정부 통계치만으로는 센터판 조사 결과와 같은 휠체어 이용자가 실제 경험하는 어려움을 파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민푸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애인도 '아주 보통의 하루'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는데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100%도 아닌, 장애인의 이동권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갈 길이 먼 현실”이라며 “서울교통공사도 ‘이것이 최선이다’라는 식의 태도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이동한다는 것의 의미를 더 깊게 고민하고 현실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