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언어, ‘국어와 동등한 자격’으로 명시 필요
국어 지원 정책과 별도로 문화예술 지원하듯, '농문화'도 지원해야

지난 2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수화언어 관련 입법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에선 수화언어와 관련한 4개의 법안(지난 2013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이 「한국수화언어 기본법」을 대표 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과 같은 당 이에리사 의원이 각각 「수화기본법」과 「한국수어법」을 발의했으며, 이어 11월에는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을 발의했다. _편집자 주)이 논의됐다. 법안이 발의된 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청회에 거는 기대와 수화언어 관련 법률을 제정한다는 농인들의 열망과 달리 법안을 만드는 과정은 순탄치는 않아 보인다. 공청회 과정에서 드러났듯 각 법안 내용의 차이에서 오는 쟁점들 때문이다. 법안 4개 모두 수화를 독자적인 언어로 규정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하여 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하고 있다. 수화언어의 발전과 보급을 위한 활동이나 권익옹호, 수화통역센터 설치 명시 등 비슷한 내용이 많다. 그럼에도 수화언어를 바라보는 관점 등에선 차이를 드러냈다. 

이에리사 의원 대표 발의안(아래 이에리사안)과 정진후 의원 대표 발의안(아래 정진후안)이 더욱 그러했는데, 용어(수화/수어)의 정의, 법의 성격, 수화언어의 지위, 수화언어 연구소 설치, 청인 아동에 대한 수화언어교육, 농문화의 규정 등에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이 글에선 공청회에서 드러났던 법안들의 차이, 쟁점이 될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간략히 살펴본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2일 수화언어 관련 4개 법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수화언어법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수화(手話)냐, 수어(手語)냐

첫째, 용어의 문제이다. 정진후안은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 이에리사안은 「한국수어법」, 이상민 의원 대표 발의안(이하 이상민안)은 「한국수화언어 기본법」, 정우택 의원 대표 발의안(이하 정우택안)은 「수화기본법」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즉, 같은 목적을 지향하지만 법안 명칭에선 조금씩 다른 용어를 쓴다. 법안 내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화언어 관련 법안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청인(듣는 사람) 입장에선 낯설다. ‘수어’, ‘청인’, ‘농인’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공청회에선 ‘수화’와 ‘수어’ 중 무엇이 적절한지에 대한 공방이 이어졌다. ‘수어’는 몇 년 전부터 농인(수화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용어이다.

‘수어’를 주장하는 농인들은 ‘수화(手話)’의 ‘화(話)’가 “언어의 의미보다는 회화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수화의 언어적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언어의 의미를 가진 ‘어(語)’를 사용하는 ‘수어(手語)’가 타당하다는 것이다. 한국농아인협회 조사에서도 조사대상 농인의 60% 정도가 ‘수어’를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농인 가운데는 여전히 ‘수화’라는 용어 사용이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수화’는 우리 사회에서 100년 넘게 사용해왔던 용어이고 청인들에게도 익숙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용어에 대한 지지의 측면에서 ‘수어’에 대한 욕구가 약간 높을 뿐 의견은 팽팽한 상태이다.

다행인 것은 공청회 과정에서 ‘수화언어’라는 중재안이 나왔다는 거다. 중재안이 타당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수화언어’를 대표용어로 하면서 약칭 ‘수어’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보아야 한다.

수화언어, ‘국어와 동등한 자격’으로 명시 필요

둘째, 언어로서 수화의 지위를 부여하는 문제이다. 정진후안은 “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언어”라고 명시한다. 이상민안도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의 공식적 언어”로 정진후안과 같다. 정우택안도 마찬가지로 “수화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의 공식 언어”라고 하여 언어로서의 자격은 물론 국어의 하나로 명시하고 있다. 반면 이에리사안은 “한국수어가 국어와 다른 형식의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고 하여 음성언어와 차별성을 두면서 독자적인 언어의 자격을 부여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수화언어의 지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는 중요하다. 이에리사안처럼 수화언어를 농인들의 공용어로 한정하여 규정하면 ‘수화는 농인들만이 사용하는 특수한 언어’로 일반 국민들이 인식하여 법률 제정 취지와 다르게 법률 내용이 격하될 수 있다. 그동안 농인들이 수화언어 사용으로 숱한 억압과 핍박을 받아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아이슬란드,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등의 수화언어 관련 법률에선 수화언어가 자국의 국어와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정진후안, 이상민안, 정우택안처럼 법안 목적에 ‘농인들의 공용어’임은 물론 ‘국어와 동등한 자격의 공식 언어’임을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인의 사회 통합위해 청인에게도 수화언어 가르쳐야

셋째, 청인(특히 청인아동)에게 수화언어를 가르치도록 법제화하는 문제이다. 정진후안의 경우 “「초·중등교육법」 제23조에 따라 교육과정에 수화언어 과목을 도입”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에리사안은 “한국수어 사용의 촉진 및 보급”을 명시하고 있다. 이상민안은 “한국수화언어를 배우려는 사람을 위하여 교육과정과 교재를 개발하고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정우택안은 해당 내용이 없다.

이렇게 본다면 3개의 발의안 모두 청인에 대한 수화언어 교육을 하도록 한다. 하지만 이에리사안이나 이상민안은 ‘수화사용의 촉진’, ‘수화의 보급’, ‘수화를 배우려는 사람’ 등 소극적이고 포괄적이다. 이에 반해 정진후안은 위 두 안이 가지고 있는 내용만이 아니라 ‘「초·중등교육법」에 따른 일반교육 과정’에 수화언어 교육을 하도록 한다.

즉, 이에리사안은 수화언어 교육과정이 정규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공공기관이나 민간기관에서 별도 운영하는 교육원에서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수화언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비용과 시간 등의 측면에서 부담을 줄 수 있다. 이상민안은 교육과정과 교재개발 등을 명시하고 있으나, 범위를 명확히 규율하지 않는다. 반면, 정진후안은 수화언어 교육에 대한 입장이 선명하다. 하지만 현재 교육부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도 정진후안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수화는 언어다" "수화 교과목 제2외국어로 제정하라!"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법률이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일정 부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제정 법률에서 ‘수화’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언어로 인정된다면 정규 초·중등 교육과정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하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통합 차원에서 필요한 내용이다. 더욱이 학교 교육에서 인권교육이 강화되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수화언어 교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입법을 통하여 일반교육과정에 일부 도입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과 수화언어에 대한 인식개선, 사회통합 차원으로 초·중학교 과정에서 방과 후 교육이나 특별활동 시간, 고등학교 과정에서 제2외국어 등으로 수화언어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수화언어가 농인들만의 언어가 아닌 한국 내의 또 다른 언어로서 가치를 가지며 청인 아동의 인식개선에 기여하기 위함이다.

국어 지원 정책과 별도로 문화예술 지원하듯, '농문화'도 지원해야

마지막으로 농문화 규정을 두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법안 4개 중 기본이념에 농문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정진후안과 이에리사안이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농문화 진흥에 대한 사항을 규율하고 있는 법안은 정진후안과 정우택안이다.

하지만 이에리사안과 정우택안은 기본이념과 국가의 책무에 농문화의 계승, 발전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이를 구체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조항이 없다. 즉, 4개의 법안 가운데 농문화를 의미 있게 담고 있는 법안은 정진후안이 유일하다. 정진후안은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이라는 법안 명칭에서부터 농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농문화 조항(안 제19조)을 별도로 두어 농인의 문화예술 발굴과 지원뿐만 아니라 농학교에서 농문화를 교육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원 가운데에는 농문화 규정을 별도로 둘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다. 농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이해했더라도 수화언어에 대한 지원을 통하여 농문화 활성화가 가능하지 않으냐는 거다. 하지만 언어의 지원만으로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문화의 밑바탕은 생활양식이다. 이러한 생활양식은 언어를 바탕으로 하기도 한다. 혹은 생활양식을 표현하는(받쳐주는) 양식 가운데 하나가 언어이기도 하다. 언어와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지만 이것만으로 문화를 전부 드러낼 수는 없다. 즉, 한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은 언어만으로 부족하다. 정부가 국어에 대한 정책과 별도로 문화예술 정책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취지에서 수화언어의 지원육성을 위해서는 농아인 생활양식을 포함한 농문화에 대한 지원 육성 정책이 꼭 필요하다. 따라서 농인의 생활양식을 포함한 농문화는 물론, 농문화에 기반을 둔 농인의 문화예술을 발굴·육성할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또한 비장애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수화언어의 기본계획에 관련 내용을 포함하여야 하고, 독립된 농문화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지면의 한계로 공청회 과정에서 드러났던 수화언어법안의 쟁점 중 몇 가지만 언급했다. 이 외에도 향후 법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쟁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정하는 법률이 ‘수화언어만’을 위한 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차별받았던 농인의 문제를 고려하여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의 권리보장도 비중 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수화언어의 독자성뿐만 아니라 농인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농문화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농인들이 수화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더이상 차별받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사회가 농문화를 비롯한 소수의 문화가 존중되는 진정한 다문화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