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개선됐지만 시각·청각·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 여전히 부족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가 16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투표 편의를 확대하기 위해 새로 개발한 기표 용구와 사전투표소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를 직접 체험해본 장애인 당사자들은 여전한 불편함을 호소했다.
 
선관위는 1층, 또는 승강기를 이용할 수 있는 사전투표소 비율을 지난 6회 지방선거 당시 31.4%에서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83.2%에 확대했으며, 휠체어 이용자가 사용했던 기존 종이 기표대를 강화 플라스틱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제작했다고 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손목 활용형, 마우스형 등 특수형 기표용구를 제작하여 모든 투표소에 총 2만 7674개 비치한다.
 
나아가, 시각장애 선거인을 위해 점자투표보조용구의 표기 내용을 기존에 기호만 적었던 것을 수정해 정당명, 성명까지 표기했으며, 청각장애 선거인을 위해 구·시·군 선관위 별로 수화통역사를 배치하여 안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발달장애 선거인을 위해 안내 홍보물과 애니메이션 동영상도 제작하고 3월 말까지 각 시·도 선관위에서 투·개표 시연회 및 투표체험행사를 지속할 계획을 전했다. 
선관위 모의 투표 체험행사가 열린 이룸홀을 가득 채운 참석자들과 취재진들.
선관위 모의 투표 체험행사가 열린 이룸홀을 가득 채운 참석자들과 취재진들.
 
선관위 모의투표 체험 행사에는 6개 장애인단체에서 시각, 청각, 지체, 발달 장애인 등 200여 명이 모여 장애계의 뜨거운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애인들은 각자 장애 특성에 맞게 선관위에서 준비한 기표용구 등을 이용해 보았다. 안정감이 커진 기표대, 손목 활용형· 마우스형 등 새로 도입된 기표용구, 점자 표시 확대 등에 대해서는 '한결 편해졌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새로운 기표 용구가 도입되었음에도 물리적 불편함은 여전하고, 비밀 투표 보장에도 취약성이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전동스쿠터를 탄 지체장애인은 낮은 기표대에 스쿠터가 가로막혀 기표용구에 손이 닿지 않았다. 결국 다른 사람이 기표 용구를 집어주고 나서야 기표할 수 있었다. 
 
점자투표보조용구의 문제점도 있었다. 투표용지가 보조용구에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제대로 된 칸에 도장이 찍히지 않을 위험이 있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찍은 도장은 심하게 뭉개져서 무효표 처리가 될 우려도 있어 보였다.
 
또한, 시각장애인이라고 해도 점자를 읽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러한 선거인들에 대한 대책은 아직 미비했다. 선관위는 "그런 경우 가족 1인이나 참관인 2인이 함께 들어가 투표를 지원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부족한 수화통역사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한 청각장애인 참가자는 "신분증 확인부터 투표 용지 처리 방법, 투표함에 넣는 것까지 투표 과정 전반에 걸쳐 안내받아야 하는 내용이 많은데, 이 때 수화통역사가 없다면 매우 불편하고 행여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모든 투표소에 수화통역사를 배치하는 것은 어렵다며, 시·군·구 단위에 한 명씩 통역사를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선관위에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 안내 자료와 영상을 배포하겠다고 밝혔으나, 여전히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이해하기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보호자는 "말 자체가 너무 어렵게 되어 있다. 이 안내 자료와 영상을 만들 때 당사자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면서 "그리고 이러한 시청각 자료로 아무리 소개를 해도, 직접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모의 투표소를 상시로 운영해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투표소와 투표 절차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낮은 기표대에 걸리는 전동스쿠터. 전동스쿠터 사용자는 기표대에 손이 닿지 않아 타인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
낮은 기표대에 걸리는 전동스쿠터. 전동스쿠터 사용자는 기표대에 손이 닿지 않아 타인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
마우스형 기표 용구를 사용하는 모습. 기표대가 앞으로 기울어지기는 하지만 기표대 자체가 낮아 혼자서는 사용할 수 없다. 기표 용구를 사용하더라도 타인의 보조가 있어야 기표가 가능하다.
마우스형 기표 용구를 사용하는 모습. 기표대가 앞으로 기울어지기는 하지만 기표대 자체가 낮아 혼자서는 사용할 수 없다. 기표 용구를 사용하더라도 타인의 보조가 있어야 기표가 가능하다.
시각장애인이 보조용구를 이용해 도장을 찍은 모습. 도장이 심하게 뭉게져 무효표가 될 우려를 낳았다.
시각장애인이 보조용구를 이용해 도장을 찍은 모습. 도장이 심하게 뭉게져 무효표가 될 우려를 낳았다.
 
직접 모의 투표에 참여하고 모니터링한 김준형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시각장애인이 기표 후 확인이 어려운 점, 기표대 높낮이 조절 실패로 인해 타인의 보조가 불가피하게 되는 점, 한글을 잘 읽지 못 하는 발달장애인의 기표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면서 "하지만 선관위는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가족이나 참고인 등 보조자와 함께 기표하도록 하겠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투표 보조 용구를 제작한 것은 장애인이 혼자 힘으로 투표할 수 있기 위함인데, 기표 용구의 불완전성을 개선하기보다 '보조인'이라는 손쉬운 대안에만 기댄다면 보조 용구 제작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