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특별법 대표발의, 생활동반자법 발의 준비 등
특별법, 배·보상안 뺀 협의안 도출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답답’

지난 4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는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과 유족들이 길게 늘어선 줄 사이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있었다. 19대 초선 의원인 진 의원은 형제복지원특별법, 생활동반자법 등 ‘어려운 길’만 골라 걷고 있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비마이너와의 인터뷰 후 이어진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진 의원은 “어려운 일은 있어도 안 되는 일은 없더라”고 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9대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면 지난 4년간 쌓아 올린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 되는 시점에서, 그녀는 피해생존자들을 그렇게 안심시켰다. 배제된 존재에 빛을 비추어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드러내는 사람. 이를 통해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에 관해 고민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 진선미 의원을 지난 4월 27일 국회에서 만났다.

진선미 의원
진선미 의원

- 어려운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 이 자리도 스케줄 틈바구니에 마련되었는데, 무척 바빠 보이신다.

오늘 오전에도 스케줄이 하나 있었고, 방금 전에 끝난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주관했다. 잠시 후에는 또 부산, 대구 등에서 오신 피해생존자분들께 밥 한 끼 대접하려 한다. 그리고 오후에 또 일정이 있다. 열심히 뛰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 형제복지원 참상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중에서도 진선미 의원은 특별법을 대표발의하고 제정에 앞장서고 있다. 굳이 이 어려운 일을 택한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2012년에 연락을 받았다.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 생존자의 증언집이 나왔는데, 출간보고회를 주최해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한종선 씨와 함께 작업한 책 『살아남은 아이』였다. 변호사 시절에 형제복지원 사건에 관해서 들어봤다. 다 해결된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제 와서 무슨 책인가 싶었는데 막상 읽어보고 너무 놀랐다. 제대로 마무리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들의 고통만 가중되고 있었다. 공식적인 집계로만 513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그곳에선 상상하기 힘든 인권침해가 매일, 매 순간 자행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이렇게 조용하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간보고회를 시작으로 형제복지원 특별법과의 질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 방금 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던 도중 눈시울을 붉히던데.

그렇다. 형제복지원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만 길게 하면 꼭 이렇게 울컥한다. 피해자분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특별법 제정이 계속 늘어지니까 답답하기도 해서. 피해자 대부분이 빈곤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니까 더 묻히는 것 같다는 애통함이 있다. 

- 말씀하신 대로 특별법 제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몇몇 인터뷰 등에서 ‘정부가 특별법 제정을 가로막고 있다’라는 취지의 발언도 하셨던데, 정부가 어느 정도로 비협조적인지 궁금하다.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 형제복지원 이야기를 했을 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의원과 안전행정부(아래 안행부) 소속 공무원들 모두 충격을 받았다. 안행부 등 관계부처는 부산시와 회의도 거듭하면서 특별법 제정이 물살을 탔다. 그런데 안행부 장관이 경질되거나 국회의원 출마 등으로 몇 차례 바뀌면서 진전되었던 논의가 자꾸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다. 너무 답답했다. 안행부와 논의해서 협의안도 만들었다. 그런데 이 협의안조차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많이 알려졌듯 박희태 당시 부산지검장이나 김용준 당시 대법관 등 여당 쪽 인사들이 관계된 일이다 보니, 과거사를 들춰내기 싫은 것 아니겠나. 

- 협의안이라면 어떤 점을 조정한 것인가.

안행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예산이 많이 들어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분들께 정말 어렵게 입을 열어 ‘배·보상안 빼고 진상규명위원회만이라도 제구실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자’고 말씀드렸다. 그분들의 동의를 받아 배·보상안을 뺀 협의안을 도출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약 2~3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사회적 낙인 때문에 ‘나도 형제복지원 피해자’라고 밝히는 것 자체를 아예 못 하고 있다. 진상규명을 통해 자신들이 당한 폭력이 국가에 의한 것이었음을, 자신들이 부당한 피해자였음을 인정받고 사과받는 것이 피해자들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필수적인 단계다.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국가 책임을 밝혀내야 배·보상 문제도 걸림돌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도 있었다. 
   

안전행정소위 4차(2015년 11월 27일) 회의록 중

2015년 6월 국회에서 열린 책 『숫자가 된 사람들』 북콘서트에 참여한 진선미 의원
2015년 6월 국회에서 열린 책 『숫자가 된 사람들』 북콘서트에 참여한 진선미 의원

◯진선미 위원 지금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그 내용과 관련해서……그러니까 지금 행자부에서 그렇게 하시면 안 되지요. (자료를 들어 보이며) 자, 이것 지금 보시지요. 보이세요? 지금 법안에, 우리가 원래 내놓았던 법안을 바꾸었습니다. 그 이유는 중간에 행자부에서 의견을 줘서―그때는 안행부였지요―저희가 그것 수정한 대로 다시 다 만든 거예요. 이렇게 다 만든 거예요. 공청회는 어쨌든 제정 법안이니까 한 번은 거쳐야 된다라고 해서 한 거고 그래서 공청회 거쳤는데, 그러면 당연히 이것이 통과가 돼야 되는 건데 이제 와서 완전히 3년 몇 개월 전으로 다시 돌아가 있으세요? 

◯행정자치부지방행정실장 김성렬 지방행정실장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때 만약 법으로 간다면 현행 다른 법률들과의 충돌 부분에 대한 실무적 의견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 방금 우리 차관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부의 입장은 지금 나와 있는…… 

◯진선미 위원 아니, 그게 말이 되냐고요. 위원장님 그리고 위원님 여러분! 이미 3년 내내 그 피해자들의 상황들에 대해서 다 들으셨잖아요? 이게 어떻게 형평을 얘기합니까? 과거사 내내 500명 이상의 사망자가 생긴, 한국전쟁 이후에 사망자가 가장 많이 생긴 사건이고, 그것이 지금까지 과거사에서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그 사건의 특성 때문이잖아요? 특성에 맞게 구제를 해 줘야 그것이 오히려 공평한 거지요. 어떻게 다른 사건하고 비교해서 공평……지금 공평하려고 일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의 상황 보셨잖아요? 

자기가 그 사건과 연루돼있는 것이 자기 가족들한테 해가 될까 봐 자기 얘기를 다 숨기고 살았다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과거사 진상 회복, ‘그 진상위원회가 있었으니 너네가 거기 가서 안 했지, 그러니까 불공정해’ 이렇게 얘기하시는 게 말이 되냐고요. 저는 정말……위원장님 그리고 우리 위원님들! 우리가 진짜 책임감을 갖고 이것은 처리해 줘야 됩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행자부에서 우려할 만한 것들을 저희가 다 반영해서 이 건이 논의됐던 게 거의 3년 6개월이에요. 그래서 그 부분들 다 정리해 가지고 법안을 수정해서 다 만든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미 논의할 건 다 논의가 된 겁니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거지요. 저는 위원님들께서 결단을 좀 내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중략) 

 

◯이철우 위원 보류, 다음에 계속 심사할까요? 

◯소위원장 강기윤 예. 

◯진선미 위원 진짜 너무하세요. 어떤 법이 신중 검토라는 게 3년이 넘도록 그것을 신중하게 검토를 합니까? 피해자들은 지금 당장 괴로워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데, 500명 죽은 사건이 어떻게 유사한 사건이 어디가 있습니까? 제가 그렇게 많이 얘기했잖아요.

◯김민기 위원 정부에서 반대하는 것은 제가 들어 보니까 그냥 반대예요, 그냥 반대. 각 부처별로 협의, 협의 하나도 안 했잖아요. 협의했으면 협의한 근거를 대 봐요. 그리고 여타 사건과의 형평성이요? 이런 사건이 또 있습니까? 

◯진선미 위원 대상자들이 힘이 없고 말이 없으니까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다른 법들은 그냥 제정법안 공청회도 안 하고 하잖아요.

- 이번에 AP통신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보도하면서 해외에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이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에 어떤 도움이 될 것 같나.

해외언론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한국 사회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시각과는 좀 다른 점이 있다. 해외언론은 형제복지원 안에서 벌어졌던 참상에 경악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이 사안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더 주목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국제무대에서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고, 일본군에 ‘위안부’ 문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해외 언론의 눈에는 모순적으로 비치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인권문제에 이렇게 후진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면서 다른 나라 인권을 논한다면, 이는 한국의 외교정책에도 심각한 타격일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27일 진행된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진선미 의원.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 씨(사진 왼쪽)와 조영선 형제복지원대책위 집행위원장(사진 오른쪽)
지난 4월 27일 진행된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중인 진선미 의원.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한종선 씨(사진 왼쪽)와 조영선 형제복지원대책위 집행위원장(사진 오른쪽)
 

-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준비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가 ‘남녀 간의 혼인으로 결성된 집단’이라는 보수적 가족관을 고수하려다 보니, 법과 제도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지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화 사회가 진행됨에 따라 사별이나 이혼 등의 이유로 혼자가 된 노인들이 동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재산 문제나 가족 관계 등이 복잡해서 자녀들의 반대로 사실혼 관계임에도 혼인신고는 하지 못한다. 제도적으로는 남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단 성애적 관계뿐만이 아니더라도, 청년들 경우에 집값 문제 등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같이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나. 사회 변화로 인해 분명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결합’이 제도에 반영되지 않아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메우는 것이 바로 생활동반자법이다. 

- 실제로 생활동반자법은 장애인 자립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는 부양의무제나 독거장애인 가중 지원 정책 등으로 인해 장애인이 ‘혼자가 되어야만’ 지원받을 수 있는 현행법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부터, 장애 특성상 1인 생활이 특히 어려운 발달장애인이 모여 사는 경우, 이를 ‘그룹홈’이라는 명목으로 소규모 시설화하지 않고도 지원받을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는 실질적 지지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그렇다. 실제로 법안을 다듬어 오면서 장애인에게 어떤 효용이 발생할지도 많이 살펴봤다. 생활동반자법이 ‘가족’제도와 관련해 장애인이 가진 문제를 모두 풀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관련 법 제도가 더욱 꼼꼼하게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생활동반자법의 도입은 우리 사회가 가진 보수적 ‘가족’ 가치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 법안의 가장 큰 기대효과이다. 이제껏 ‘정상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결합’이 무시되어왔나. 더 이상 집이 외로움의 공간이 되지 않도록, 사람과 사람이 서로 주고받는 감정적 에너지를 통해 회복과 충전이 있을 수 있도록, 생활동반자법 제정에 많은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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