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대법원 ‘트랜스젠더 성별정정 허가 필요하다’ 결정
하지만 요건 까다롭고 신청 과정에서 끊임없이 인권침해 발생해

지난 6월 11일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사람들이 행진하는 모습
지난 6월 11일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사람들이 행진하는 모습

대법원이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별정정을 허가한 지 정확히 10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요건은 까다롭고 신청 과정에선 수많은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 이에 SOGI법정책연구회(아래 SOGI)는 22일 논평에서 트랜스젠더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성별정정 요건 개정과 절차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SOGI는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관한 차별시정을 위해 법 정책 분석을 하는 곳으로 국내외 변호사와 연구자로 이뤄져 있다.
 

과거 2006년 6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성(性)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기본권 보장을 위해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허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트랜스젠더가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 기재는 물론 주민등록번호가 과거 성을 따라야 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 가족관계등록예규에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 지침’이 제정되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과 예규 제정으로 트랜스젠더의 법적 성별 정정의 길이 열렸다.
 

하지만 대법원이 정한 요건은 매우 엄격했다. 19세 이상에 미혼이어야 하며, 미성년자녀가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상당 기간 정신과적 치료나 호르몬요법에 의한 치료를 받았어야 한다. 또한, 성장기 때부터 지속해서 성정체성으로 고통받고 반대의 성에 귀속감을 느꼈어야 하며, 성전환수술로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 성으로 전환되어 있어야 한다. 성전환수술로 생식 능력을 상실하고, 과거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도 없거나 극히 희박해야 한다. 이 외에 첨부서류로 2명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서, 2명 이상의 인우보증, 부모 동의서 등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건은 트랜스젠더 성별변경을 인정하는 국가 중 가장 엄격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SOGI는 “특히 ‘성전환수술’에 대한 요구는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외과적 수술, 불임수술 등을 강요함으로써 헌법상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SOGI에 따르면, 이러한 까다로운 요건은 국제 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해외에선 이미 생식능력제거, 외부 성기 성형수술 등은 헌법상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위헌 결정을 받고 대부분 나라는 이를 삭제했다. 지난해 11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위원회’는 최종권고문에서 성별정정에 대한 과도한 제한에 우려를 표하며, 용이하게 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이미 2008년 대법원장에게 까다로운 요건을 지적하며 인권침해 요소가 없도록 개정을 권고했지만, 이는 바뀌지 않고 있다.
 

까다로운 성별정정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2012년 한 가정법원은 성별정정을 신청한 트랜스젠더에게 탈의한 상태의 전신사진 제출을 요구했다. 2013년엔 현 인권위원장인 이성호 전 서울남부지방법원장이 ‘성전환자로서 여성으로서의 외부 성기를 갖추었음을 소명하는 사진(2장 이상, 식별 가능해야 함)’을 제출하라고 보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성전환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거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있다며 성별정정을 기각하거나, 부모의 동의서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SOGI는 “성별정정 절차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과도한 요구와 수치심을 가하는 인권침해는 법원이 과연 소수자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라는 사명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면서 “성별정정은 인권침해를 감수하더라도 법원에 애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SOGI는 트렌스젠더 당사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할 것과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게 성별정정 요건 개정,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별정정 절차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성별정정 신청사건은 사건 통계에서 ‘등록부 정정’으로 묶여 있는데, 이를 분리해서 파악하여 일본처럼 트랜스젠더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무엇보다 이를 집행하는 공무원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며, 성별정정 담당 법관의 경우 트랜스젠더와 성별정체성에 관한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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