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대·파출소가 각종 편의시설 설치 의무 위반
‘장애인은 잘 안 온다’, ‘왜 편의제공 해야 하나’고 답해… 인식개선도 필요

장애인은 지구대·파출소 등에 접근이 어렵고 이용이 불편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경찰이 오히려 법률상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

29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의 주최로 ‘지구대 파출소 및 치안센터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 및 2020년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보고회’가 열렸다.

이번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은 장추련과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공동협력사업으로, 전국의 지구대·파출소 2990곳 중 1615곳(54%)을 조사한 결과다. 모니터링단 264명 중 207명(78.7%)이 장애인 당사자였고, 이 중 △뇌병변장애인(92명) △지체장애인(70명)이 전체의 절반 이상인 61.3%를 차지했다. 이승헌 장추련 활동가는 “경북, 전남, 전북 지역은 대중교통 수단이 원활하지 않아 장애인 당사자가 모니터링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라고 특별히 언급했다.

29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의 주최로 ‘지구대 파출소 및 치안센터(아래 지구대 등)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 및 2020년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보고회’가 열렸다.  이승헌 장추련 활동가가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29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의 주최로 ‘지구대 파출소 및 치안센터(아래 지구대 등)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 및 2020년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보고회’가 열렸다.  이승헌 장추련 활동가가 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전국 지구대·파출소 중 장애인 이용 가능한 화장실 32.7%, 장애인 주차구역에는 가건물이

모니터링 결과 지구대·파출소 화장실 장애인 접근성 문제는 심각했다. 지구대·파출소 화장실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용화장실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화장실 의무 설치 공간이다. 그런데도 조사가 이뤄진 지구대·파출소 1176곳 중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화장실은 고작 384곳(32.7%)에 불과했다. 장애인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화장실 좁음(84.1%), 남녀구분 안 됨(37.5%), 청소도구 등 물건 쌓임(16.9%), 턱(26.1%) 순으로 나타났다.

지구대·파출소의 장애인 주차구역 설치는 의무지만 이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구대·파출소 1176곳 중 장애인 주차구역이 없는 곳은 515곳(43.8%)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이승헌 활동가는 “주차구역이 확보되어도 경찰차를 위한 주차구역이 우선시 여겨졌다. 또한 모니터링 내용 중 장애인 주차구역에 방범센터와 같은 가건물이 세워져 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구대·파출소에 장애인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전국의 조사 대상 지구대·파출소 1176곳 중 휠체어 접근이 전혀 안 되는 곳은 무려 73곳(6.2%)에 달했다. 또한 경사로가 설치되었더라도 △폭이 좁아 이용하기 어렵거나 불편한 곳 16.9%(147곳) △안전바가 한쪽에만 설치되는 등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 51.4%(446곳) △경사로를 설치했지만 기울기가 가파른 곳 32%(278곳) 등 형식적인 설치에 그친 곳이 많았다.

왼쪽 사진 설명: 점자유도블록을 따라가면 파출소 문 앞에 연석이 설치되어 있어 시각장애인에게 위험해 보인다. 오른쪽 사진 설명: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접수대를 이용하려 하지만 접수대가 높아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제공 장추련
왼쪽 사진 설명: 점자유도블록을 따라가면 파출소 문 앞에 연석이 설치되어 있어 시각장애인에게 위험해 보인다. 오른쪽 사진 설명: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접수대를 이용하려 하지만 접수대가 높아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제공 장추련

점자유도블록 따라가면 ‘대형 돌’… 편의시설 지적에 “평소 장애인 잘 안 온다”

나아가 편의시설이 잘못 설치되어 오히려 큰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도 발견됐다.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는 점자유도블록의 경우 지구대·파출소 166곳(14.1%)에서 설치되지 않았으며, 설치되어 있더라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곳이 335곳(33.2%)이었다. 파출소 앞에 볼라드(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를 세워놓은 곳도 있었다. 이 활동가는 “파출소에서는 차량 충돌 위험을 우려해 세웠다고 했지만, 시각장애인이 충돌하면 매우 위험하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휠체어를 이용 장애인이 건물 내부에 접근하더라도 민원실 접수대에 접근할 수 없는 곳은 절반 이상이었다. 지구대·파출소 1176곳 중 민원실 접수대에 휠체어 접근·이용이 어려운 곳은 677곳(57.6%)으로 나타났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접수대는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용 접수대 설치가 안 돼 있거나 있더라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물건을 쌓아둬 이용할 수 없었다. 또한 지구대·파출소의 민원실 이용 시 점자로 된 안내 책자, 확대경, 화상전화 비치, 수어통역 제공 등 정당한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지만, 이중 모든 편의지원을 충족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아무런 편의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답한 곳도 무려 11.8%에 달했다.

가장 심각했던 건 경찰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 활동가는 “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찰관들이 많았다”라며 “사전에 경찰청에 협조공문을 보내 소통했음에도  강압적·권위적으로 모니터링단을 대하는 경우가 많아 당황스러웠다. 평상시 장애인에 대한 응대는 어땠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활동가는 “모니터링의 과정에서 경찰직원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평소 장애인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애인 지역주민들은 이미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가지 않는 것”이라며 경찰 조직에 대한 장애인식개선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경찰청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이용 가능한 편의시설 설치 △장애인등편의법 및 장애인차별금지법 의무사항 준수 △제대로 된 장애인식개선교육 등을 제언했다. 또한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에는 2018년 장애인편의시설 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반영해 파출소·지구대의 접근성 개선방안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29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지구대 파출소 및 치안센터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 및 2020년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보고회’가 열렸다. 사진 이가연
29일, 오전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지구대 파출소 및 치안센터 장애인 접근성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 및 2020년 장애인 편의환경 모니터링 결과보고회’가 열렸다. 사진 이가연
 

위급 상황에 장애인은?… 법률위반·시정명령 지적에 ‘예산 없다’

발제 뒤 이어진 토론에서 김준우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모니터링 결과에 대해 참담함을 표현하며 “가장 위급할 때 찾는 곳이 지구대·파출소이지만, 장애인이 얼마나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법을 수호하고 지켜야 하는 경찰이 오히려 헌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등편의법을 위반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예산이 없어 설치를 못 한다고 주장하지만, 예산이 없으면 법을 안 지켜도 되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모상묘 경찰청 경무담당관 총경은 이번 모니터링 결과에 대해 “눈물겹다”라며 “시정이 필요한 지역에 대해 복지부와 협의해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구대·파출소에 휠체어 리프트 차량에 없는 것에 대해 “경찰청에는 휠체어 리프트 차량이 없지만, 지자체에서는 휠체어리프트 차량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안다. 지자체와 협력해 이용이 원활하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나동환 장추련 변호사는 복지부가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른 시정명령을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 변호사는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라 복지부 장관은 지구대 및 파출소가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을 경우, 지방경찰청을 대상으로 1년의 범위 내에서 미비한 편의시설을 기준에 적합하도록 개선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복지부는 시정명령 조치를 거의 취하지 않고 있다”라며 복지부에 지방경찰청에 대한 시정명령을 적극적으로 내릴 것을 요구했다.

신용호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과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이행명령을 내린 건 2건 밖에 없지만, 장애인등편의법에 따른 시정명령은 1만 건이 넘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시정명령 이행에 대한 예산 마련은 지자체의 몫으로 넘겼다. 신 과장은 “전달체계 상 편의시설에 대한 관리는 복지부가 아닌 지자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부산의 한 파출소가 시정명령을 받고 난 뒤 ‘돈이 없는데 어떻게 (편의시설을) 설치하냐’며 복지부에 항의를 온 적이 있어, 지자체와 합의해서 예산을 마련하라고 했다”라며 앞으로도 지자체에 협력을 요청할 것을 밝혔다.

지난 2018년 복지부의 실태조사 결과를 경찰청에 전달했는지 묻는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의 질문에 신 과장은 “전달하지 않았다. 법의 시행 주체인 지자체에 개선명령을 취하도록 이야기했다. 이번 토론을 계기로 경찰청과 연대를 돈독히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박김영희 장추련 대표는 “그럼 지자체가 의지가 없다면 경찰청도, 복지부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하자, 신 과장은 “이미 실태조사를 했기 때문에 어느 지자체의 편의시설이 미비한지 알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각 지자체와의 미팅에서 심각성을 알리고 경찰청과도 이야기하겠다. 늦었지만 ‘제5차 편의증진 국가종합 5개년 계획’에 실태조사 내용을 반영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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