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에서 극심한 차별 겪어
힘들게 취업해도 ‘저임금, 불안정 노동, 성과 중심’에 좌절
노동 생산성 중심에 두니 장애인은 배제될 수밖에

26일 ‘장애인노동권 재구성을 향해-장애인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동의 의미’ 토론회가 바람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주최로 노들장애인야학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명숙 활동가, 고태은 활동가, 정창조 연구원 순으로 앉아 있다. 사진 허현덕
26일 ‘장애인노동권 재구성을 향해-장애인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동의 의미’ 토론회가 바람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주최로 노들장애인야학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명숙 활동가, 고태은 활동가, 정창조 연구원 순으로 앉아 있다. 사진 허현덕

최근 장애계에선 장애인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정책 제안이 쏟아졌지만 여전히 정부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정부 정책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대부분 복지 영역에서 다뤄져 ‘노동’으로 인식되지 못하며, 따라서 이들은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 취업률도 여전히 낮다. 2020년 보건복지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장애인의 삶’에 따르면 장애인취업률은 34.9%로 전체 인구 취업률 60.7%의 절반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애인노동경험을 통해 장애인노동권을 재구성하고자 모색하는 토론회가 26일 오전 10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아래 바람)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주최로 노들장애인야학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바람과 장애인노동권담론모임은 올해 7명의 장애인노동자들의 집단·개별면접을 통해 이들 노동 경험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취업에서 어려움 겪어

명숙 바람 활동가는 기초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연구참여자 7명은 모두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있었고, 1명을 제외하고는 기간제·계약직·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장애인노동경험 조사연구 집단면접 참여자 목록. 사진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발제문 캡처.
장애인노동경험 조사연구 집단면접 참여자 목록. 사진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발제문 캡처.

이들이 노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경제력 확보와 노후 대비가 가장 컸다. 또한 임금노동관계에 속함으로써 사회적 역할, 나아가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단순히 새로운 경험이나 호기심으로 노동을 하기도 했다. 가족 권유로 노동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연구참여자들은 대체로 가족이나 지인의 소개, 학원이나 학교에서 소개한 곳에 입사했다고 답했다. 명숙 활동가는 “이는 장애인일자리나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며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구직 시 고려사항이 ‘신체장애, 언어장애가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장애인노동자들은 취업 전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한다.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시행 후 노골적인 장애인 채용 거부는 적어졌지만, 여전히 정신장애인에 대한 채용 거부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중증장애인의 일자리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정보접근의 제한으로 취업과정이나 정보 등을 얻을 수 없었다. 취업과정에서 활동지원사가 말을 잘못 전해 면접에서 떨어진 경우도 있었고, 취업시험에서부터 청각장애인에게 듣기평가 점수를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어학점수에서 듣기평가 점수를 요구하는 거예요. 듣기평가도 있고, 읽고 쓰기도 있잖아요. 듣기 평가를 뺀 나머지 점수를 봐달라니까 회사에선 그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회사에는 지원하지 못했고 나중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서 지금은 채용절차가 바뀌었구요.” (연구참여자 C, 청각장애인)

장애인노동자들은 비장애인이라면 겪지 않을 문제도 겪고 있었다. 이들은 많은 노동자들이 겪는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 외에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거나, 비장애인중심의 업무와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유형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 괴롭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명숙 활동가는 “적절한 업무 부여와 업무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 발생하는 일임에도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이는 속도중심의 현재 업무환경이 낳은 문제인데 장애인노동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다”라며 “발달장애인 연구참여자는 괴롭힘을 ‘혼난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일터에서 장애 사실을 밝혔다가 차별이나 혐오를 당하기도 했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선의에 의한 차별도 빈번했다. 또한 정신장애인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취업조건이 있거나 업무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데도 장애인임을 속였다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사례로 있었다.
 
“잘린 이유가 뭐냐면 제가 약을 먹고 있었거든요 정신과 약을 먹고 있으니까 그거 매장에서 편의점에서 점장이 물어보더라고요. ‘아니 무슨 약을 먹길래 맨날 먹냐.’ 그래서 처음에 거짓말했어요. 제가. 감기약이다. 그랬더니 그냥 넘어갔어요. 근데 그다음 날도 계속 그 약을 먹으니까 ‘진짜 감기약이야?’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말하게 됐어요. 제가 우울증도 있고 간질도 있어가지고. 간질약 먹고 있다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잘렸어요.” (연구참여자 A, 정신장애인)

명숙 활동가는 “노동 자체의 힘듦은 물론이고 정신장애인의 경우 나이와 성별 등 유사집단 부재로 증상이 악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며 “코로나19의 장기화로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면서 발달장애인노동자들은 업무수행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저임금, 불안정 노동, 성과중심’에 좌절하는 장애인노동자 

고태은 바람 활동가는 기초연구를 바탕으로 장애인이 노동현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노동 경험의 의미를 분석했다.

장애인노동자들은 노동시장 진출이 제한되고, 취업한 노동자라 하더라도 불안정하고 ‘질 나쁜 일자리’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자리 자체도 △보호작업장(직업훈련시설) △시간제 단순노동 △장애인일자리 사업 등 세 가지에 한정되어 있었다. 고태은 활동가는 “이런 일자리는 노동시간, 임금 등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함에도 장애인노동자가 일하는 곳‘치고는’ 괜찮은 일자리로 여겨지고 있다”며 “이들은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일자리를 ‘순환’하는 경우가 많은데, 1년~2년 짧게 일하기에 노동안정성이 매우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에서도 장애인노동자들은 시설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고태은 활동가는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에서 ‘시설화’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보호’, ‘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하여 권리와 자원을 차단하고 이로 인하여 ‘무능화’, ‘무력화’된 존재로 만들고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제한하여 주체성을 상실시키는 것(진은선, 2020 재인용; 조미경, 2018)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며 “직업훈련시설이 이러한 시설화의 양상을 보여주는데, 여기에서 노동이 ‘단순 작업’에 그침으로써 장애인노동자의 역량 증진, 숙련 등의 ‘노동 성취’가 희석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고태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고태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가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장애인노동자들은 개인의 나이, 학력, 장애유형, 지역적 차이로 차별이 교차되고 중첩되기도 했다.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등록)증도 잘 발급이 안 될뿐더러 증이 있어야 취업 연계가 되는데 증이 없으니까 취업이 잘 안 되는 거예요. 병원에서도 복지카드를 잘 안 발급해주니까. 받더라도 타장애인보다 적으니까. (중략) 다른 장애인들은 협회들이 있는데 정신장애인들은 협회가 없어요. 아직까지 그래서 각자가 알아서 알아보는 이유도 협회도 없을뿐더러 지역사회에서 안 받아주기 때문에 지방이 훨씬 더 열악하거든요.” (연구참여자 B, 정신장애인)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노동하지 않는 존재’, ‘노동 능력 없음’ 등으로 치부하는 문제는 장애인노동자의 일터에서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고태은 활동가는 “비장애인 중심으로 이뤄진 임금노동의 생산성 논리를 장애인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적용해 회사에 일방적으로 적응하도록 강요하고, ‘적응’ 문제를 장애인노동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훈련이나 숙련 기간을 거치지 않고, 비장애인 관리자에게 질책을 당하면 스스로 ‘느리기 때문에 미움받았다’라고 해석하는 장애인노동자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과중심 노동은 장애인공공일자리에서도 나타난다. 지난해 12월, 설요한 동료지원가는 실적, 성과 압박에 못 견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 이후 동료지원 건수와 서류 업무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성과중심의 설계는 그대로 남아 있다. 고태은 활동가는 “오히려 동료지원가로 일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포기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연구참여자 중에는 고 설요한 활동가처럼 되는 될까 봐 걱정돼 일자리를 그만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 ‘생산성 중심에 둔 노동’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연구참여자들은 노동을 통해 자신감, 성취감, 즐거움, 사회적 인간관계 형성과 소속감, 경제적 여유와 미래에 대한 대비, 규칙적 생활에 따른 건강, 삶에 대한 책임감 등이 생겼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숙 활동가는 “이는 마사 누스바움이 말한 ‘존엄한 삶을 실현하는 방법’으로서의 핵심역량과 매우 많이 겹친다”라며 “노동을 통해 장애인들은 존엄한 삶을 실현할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창조 노들장애학 궁리소 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정창조 노들장애학 궁리소 연구원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따라서 장애인노동권의 담론과 정책 변화를 꾀해, 장애인노동의 시설화를 타개하고 안정적 일자리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은 “고태은 활동가의 지적처럼 보호작업장과 복지기관을 통해서 이뤄지는 노동은 ‘작업’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며 “연구참여자를 포함해 한국의 장애인들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2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했다면 정규직으로 전화되도록 하고 있지만, 장애인복지형 일자리는 여기서 배제된다. 장애인은 임금뿐 아니라 기간에서도 차별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창조 연구원은 한국의 장애인일자리 정책의 특징을 △불안정고용 중심의 공공일자리 △복지 영역에서의 일자리 등으로 꼽으며 “현재 장애인노동이 복지시스템에서 마치 노동 취약계층의 소득을 보충해주는 의미를 띠다 보니, 장애인노동자가 결코 노동주체로 설 수 없다”며 “복지일자리도, 장애인의무고용으로 민간·공공기간의 장애인노동자 채용도 직무가 단순노동인 경우가 많다.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10조 2항에는 ‘국가가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종 개발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국가는 노력한 적이 없다”라고 비판했다.

단순노동이라고 해도 생산성 프레임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 연구원은 “연구결과에서 장애인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이유, 직장을 찾지 못하는 것은 모두 생산성 노동에서 비롯된 현상이다”라며 “장애인 일자리의 다양성을 위해 현재의 생산성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안으로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를 제시했다. 여기서 중증장애인 참여자들은 실적이나 생산에 구애받지 않고,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활동 등의 활동을 한다. 정 연구원은 “권리중심형 공공일자리 참여자들 중 생애 최초로 노동을 경험하면서 노동의 주체가 됐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다”며 “이처럼 다양한 장애인 직무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틀을 벗어나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어 “현재의 장애인노동정책은 비장애인과의 통합을 주장하지만, 결국 작동하는 방식은 분리방식이다. 또한 장애인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라 훈련생, 복지 수혜자로 보며, 결코 비장애인노동자처럼 일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며 “이제는 자기 모순적 정책에서 벗어나 장애인을 기생적 존재, 세계 생산에 참여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겼던 통념을 깨는 방식으로 장애인의 노동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6일 ‘장애인노동권 재구성을 향해-장애인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동의 의미’ 토론회가 바람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주최로 노들장애인야학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사진 허현덕
26일 ‘장애인노동권 재구성을 향해-장애인노동자가 경험하는 노동의 의미’ 토론회가 바람과 서울노동권익센터 주최로 노들장애인야학 4층 강당에서 열렸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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