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역사』와 함께하는 미국 탐방기④

(왼쪽) 퍼킨스맹인학교 교정의 속도 제한 표지. (오른쪽) 맹인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육상 트랙. ⓒ김승섭
(왼쪽) 퍼킨스맹인학교 교정의 속도 제한 표지. (오른쪽) 맹인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육상 트랙. ⓒ김승섭

보스턴의 퍼킨스맹인학교(Perkins School for the Blind) 교정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속도 제한 표지였다. 캠퍼스 내에서는 시속 5마일(시속 8Km) 이하로 운행하라고 쓰여 있었다. 미국에서 자동차 운행 속도를 엄격히 규제하는 스쿨존에서도 보통 시속 15마일이 제한 속도인 점을 감안하면 엄격한 규정이었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은 운동장 한편에 있는 육상 트랙이었다. 트랙을 구분하는 하얀 줄과 나란히 굵은 철사 줄이 있고, 그 철사 줄에는 맹인 학생들이 트랙에서 벗어나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움직이는 손잡이가 있었다.

(왼쪽) 퍼킨스맹인학교 하우 빌딩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 (오른쪽) 하우빌딩 방문센터 로비에서 필자. ⓒ김승섭
(왼쪽) 퍼킨스맹인학교 하우 빌딩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 (오른쪽) 하우빌딩 방문센터 로비에서 필자. ⓒ김승섭

퍼킨스맹인학교의 방문센터는 하우 빌딩(Howe Building)에 있었다. 하우는 1829년 퍼킨스맹인학교―설립 당시 이름은 ‘맹인을 위한 메사추세츠 수용소(Massachusetts Asylum for the Blind)’였다―를 만들고 초대 교장을 지낸 인물이다.

의사이자 노예제 폐지론자였던 새뮤얼 그리들리 하우(Samuel Gridley Howe)는 사회가 그 구성원들을 최대한 교육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우는 가능하다면,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모든 이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하우는 모든 사람, 심지어 백치까지도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노동을 배울 수 있으며, 몇몇은 자급자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우는 농이나 맹을 가지고 있거나 백치인 학생들을 위한 학교 설립을 이끌었다. 이 중에는 1829년 설립되어 로라 브리지먼, 앤 설리번, 헬렌 켈러가 다녔던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퍼킨스맹인학교도 있었다. (『장애의 역사』 142~143쪽)

첫 번째 인물: 로라 브리지먼(1839년 입학)

하우 빌딩에 들어서자 퍼킨스맹인학교 졸업생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세 인물의 사진과 설명이 보였다. 그 첫 번째 인물은 로라 브리지먼(Laura Dewey Bridgman, 1829~1889)이다. 브리지먼은 2살 때 가족이 성홍열에 걸렸는데, 브리지먼은 두 언니를 잃고 본인은 농과 맹을 가지고 평생을 살게 되었다.

퍼킨스맹인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로라 브리지먼의 사진 ⓒ김승섭
퍼킨스맹인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로라 브리지먼의 사진 ⓒ김승섭

브리지먼이 퍼킨스맹인학교 교장 하우의 눈에 띈 것은 1837년이었다.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맹인은 교육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하우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자신의 믿음을 보여줄 기회를 찾고 있었다. 하우는 7살 브리지먼에게서 그 가능성을 보았고, 브리지먼은 2년 뒤인 1839년 퍼킨스맹인학교에 입학한다.

하우는 브리지먼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기로 마음먹고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1837년 10월 하우를 처음 만난 브리지먼은 1839년 자신의 이름을 쓰는 법을 배우고 그다음 해 수학 공부를 시작한다. 하우는 나날이 성장하던 브리지먼을 세상에 알려 학교를 홍보하고자 했다. 물론 그를 통해 학교를 운영하기 위한 후원금을 받는 데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러던 와중 당대 최고의 유명세를 떨치던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가 퍼킨스맹인학교를 방문한다. 디킨스는 브리지먼의 이야기를 1842년 출판된 『아메리칸 노트(American Note)』에 썼는데, 그로 인해 브리지먼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된다. 농과 맹을 가진 사람이 교육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첫 ‘성공 사례’가 된 브리지먼을 만나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퍼킨스를 찾아오기 시작한다.

책이 출판되고 44년이 지난 1886년, 알라바마의 한 여성이 디킨스의 『아메리칸 노트』를 읽게 된다. 남북전쟁에 참전한 남부연맹 장군의 딸로 풍족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케이트 켈러(Kate Keller)는 생각했다. 브리지먼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면, 비슷한 장애를 가진 자신의 아이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 막 6살이 된 딸은 19개월 때 감염병에 걸려 농과 맹을 가지고 있었다. 케이트 켈러는 자신의 딸을 교육할 방법을 수소문했고, 그 소식은 퍼킨스맹인학교에 닿는다.

두 번째 인물: 앤 설리번(1880년 입학)

당시 퍼킨스맹인학교에는 자신을 둘러싼 불행과 분투하며 삶을 꾸려나가던 한 여학생이 최우수 졸업을 한 이후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브리지먼의 어린 친구이기도 했던 앤 설리번(Anne Sullivan Macy, 1866~1936)이었다.

설리번이 8살 때 결핵에 걸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알코올중독에 빠져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는 그녀와 남동생을 빈민수용소에 맡겼다. 어린 시절 트라코마 눈병에 감염돼 앞을 거의 볼 수 없었던 설리번은 그곳에서 결핵으로 또다시 동생을 잃는다. 그녀는 열악하고 폭력적이었던 그 시절의 삶의 환경과 경험을 두고 “어린 시절에 가해진 범죄”라고 표현했다.

설리번은 간절히 공부하길 원했다. 1880년 자선단체의 도움으로 마침내 그녀는 기회를 얻게 된다. 빈민수용소를 떠나 보스턴으로 향하던 날, 기차역까지 그녀의 짐을 운반해주던 남자는 말했다. “절대 이곳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듣고 있지? 모든 걸 잊어버려. 이제 다 괜찮아질 거야.”

퍼킨스맹인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 설리번은 6년 뒤인 1886년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하며 학업을 마쳤다. 그러나 그 공부의 시간이 결코 순탄할 리 없었다. 그곳에서 공부하던 마지막 해에 작성한 리포트에서 그녀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열등감 콤플렉스’를 고백했다.

나는 정말로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다. 교육받은 사람들처럼 말하고 싶었다. (…) 무엇보다도 빈민수용소에서 보낸 6년의 어린 시절을 잊고 싶었다. 내가 그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때, 내 안의 무엇인가 그것을 방해했다. 내 마음에는 이미 빈민수용소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스며들어 있었다. 내 마음은 어두운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퍼킨스맹인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의 사진 ⓒ김승섭
퍼킨스맹인학교에 전시되어 있는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의 사진 ⓒ김승섭

세 번째 인물: 헬렌 켈러(1888년 입학)

1887년 학교를 졸업한 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몰라 막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설리번에게 안정된 수입의 가정교사 자리는 거절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알라바마 지역에 가서 지내야 한다는 것도, 농과 맹을 가진 생면부지의 7살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도. 그녀는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퍼킨스맹인학교의 선생님들은 옷소매에 얼굴을 묻고 웃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케이트 켈러의 남편은 24달러라는 고액의 월급을 제안하며, 함께 지내는 동안 가까운 가족처럼 대하겠다고 편지를 보낸다. 설리번은 보스턴을 떠나 알라바마로 향했고, 1887년 3월 5일 그녀는 마침내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를 만난다.

헬렌 켈러는 설리번을 만나기 전까지 모든 대상에는 각각 그 대상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걸 깨닫는 순간이 설리번을 만나고 한 달 뒤 있었던 바로 그 유명한 장면이다. 설리번은 헬렌 켈러로 하여금 한 손으로는 흐르는 물을 만지게 하고 다른 한 손에 ‘water’라고 썼다. 훗날 헬렌 켈러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 살아있는 단어는 내 영혼을 깨우고, 빛과 희망을 주었고, 자유롭게 했다.” 이 장면은 헬렌 켈러의 삶을 바꿔내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2009년 미국 의회의사당에 동상으로 세워지기도 했다. 1888년 5월 설리번은 헬렌 켈러를 데리고 보스턴으로 향했고, 헬렌 켈러는 퍼킨스맹인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된다.

알라바마주에서 기부한, 미국 의회의사당 건물에 있는 헬렌 켈러 동상 ⓒArchitect of the Capitol
알라바마주에서 기부한, 미국 의회의사당 건물에 있는 헬렌 켈러 동상 ⓒArchitect of the Capitol

1888년 겨울, 퍼킨스맹인학교의 모습을 생각해본다. 그곳에는 이듬해 질병으로 사망하는 59세의 브리지먼과 인내와 열정을 갖춘 선생인 22살의 설리번,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8살의 헬렌 켈러가 함께 있었다.

[참고 자료]

Kim E. Nielsen, The Radical Lives of Helen Keller, NYU Press, 2004.

Kim E. Nielsen, Beyond the Miracle Worker: The Remarkable Life of Anne Sullivan Macy and Her Extraordinary Friendship, Beacon Press, 2009.

필자 소개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 『장애의 역사』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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