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에 장애인 개인진정·직권조사 가능한 CRPD 선택의정서, 법무부가 은폐?
복지부·외교부는 비준 추진 동의했지만, 법무부가 소극적 태도 보여 지지부진
장애계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적극 추진해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출처 법무부 홈페이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출처 법무부 홈페이지

장애계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지목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할 것을 촉구했다. 

9일 오후 2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한국장애포럼(아래 KDF)은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아래 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에 관한 공개질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 정부는 2008년 협약을 채택했지만 선택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았다. 선택의정서에는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가 침해되었음에도 국내에서 구제절차가 이행되지 않을 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개인진정제도가 규정되어 있다. 아울러 당사국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중대하고 조직적으로 침해했다는 믿을만한 정보가 나올 경우 위원회가 당사국을 직접 조사할 수 있는 직권조사 절차 등이 명시되어 있다. 즉, 선택의정서는 협약의 선언적 의미를 넘어 협약의 실질적 이행이 가능하도록 한다. 

장애계는 지난 12년 동안 꾸준히 한국 정부에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했다. 위원회 또한 2014년 한국 정부의 국가보고서에 대한 최종 견해를 통해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동안 구체적인 선택의정서 비준 계획을 내놓지 않다가, 지난 2019년 위원회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서 선택의정서 비준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까지 아무런 추진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선택의정서가 비준되기 위해서는 협약을 직접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부, 의회에 안건을 상정할 책임이 있는 외교부, 그리고 국내 집행을 위한 법 적용의 책임이 있는 법무부의 의지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장애계는 선택의정서가 비준되지 않고 있는 핵심 원인으로 법무부를 지목하고 있다. 전장연은 “법무부는 협약을 채택한 지 12년이 지난 현재까지 선택의정서 비준 동의 의견을 공식 표명한 바 없다. 도리어 협약과 저촉되는 국내법 간 상충과 갈등을 우려해 비준을 원치 않는 듯한 모습으로 진행을 주저시키고 있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9일 오후 2시 전장연과 KDF가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에 관한 공개 질의를 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자회견은 온라인 생중계됐다. 사진 이가연
9일 오후 2시 전장연과 KDF가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선택의정서 비준에 관한 공개 질의를 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자회견은 온라인 생중계됐다. 사진 이가연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협약을 비준했지만, 가장 중요한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앙고 없는 찐빵’과 다름없다”라며 “이후에도 12년 동안 정부가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장애계가 유엔에 가서 모든 문제를 제소할까봐 겁이 나서 못 했다고 한다. 또한 복지부와 외교부는 절차가 진행된다면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법무부가 계속 이 문제를 은폐하는 메시지를 주고 있어서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일영 KDF 공동대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국가의 많은 장애인들의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으려면 한국이 먼저 선택의정서 비준을 통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추미애 장관은 선택의정서를 비준하고 이 정권이 지향하는 인권의 가치를 보여주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김미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장도 기자회견에 참여해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저는 오늘 대한민국에서 장애를 겪고 살아가는 장애인당사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직도 시설에 갇혀 끝나지 않는 인생을 허망하게 보내고 있는 장애인들의 인권 현실을 피눈물로 기억하면서, 코로나19로 시설과 정신병원에서 죽어가던 비참한 현실을 직면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즉각 선택의정서 비준을 촉구한다”라고 밝히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선택의정서 비준은 장애인 국민 인권의 보루다. 이러한 노력은 법치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법무부가 어느 부처 보다 앞장서서 해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는 “한국에서 장애인들은 활동보조 제도 투쟁 등 정부를 향해 권리보장을 요구해왔으며, 최후의 보루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을 해왔다. 그러나 인권위가 있더라도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만일 한국이 선택의정서에 비준했다면, 이럴 때 위원회에 개인진정제도와 직권조사를 요청했을 것”이라며 “추미애 장관이 많이 바쁘신 걸로 안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12년 동안 기다려왔던 선택의정서를 비준할 때이다. 더 이상 장애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 추미애 장관은 미루지 말고 꼭 선택의정서 비준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전장연을 비롯한 장애계는 추미애 장관에게 △모든 장애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보장하는 협약의 정신을 존중하며, 이에 실질적 집행을 위한 선택의정서 비준에 동의하는가? △선택의정서 비준을 목표로 보건복지부, 외교부와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하는가? 라고 공개 질의했다. 이들 단체는 해당 공개 질의서를 법무부 인권국장을 통해 전달했으며,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할 경우 직접 법무부를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