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추모제 연속 기고⑥] 명의범죄 피해 홈리스

[편집자 주] 12월 21일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입니다. 2020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14일부터 21일 동짓날까지를 ‘홈리스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거리와 쪽방, 고시원 등지에서 살다 떠난 홈리스를 추모합니다. 또한, 추모를 넘어 사회적으로 예견된 죽음을 더는 용인하지 말 것을 사회에 촉구합니다. 특히나 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삶의 벼랑에 내몰린 홈리스의 삶을 알리고, 홈리스의 인권과 복지지원 개선을 촉구하는 여섯 편의 글을 기고합니다. 이 글은 2020 홈리스추모제 연속 기고로 비마이너,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2013년부터 홈리스 법률상담을 하면서 취업이나 대출을 명목으로, 아니면 인정에 못 이겨 명의범죄에 연루된 분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현실적인 자구책으로 개인파산을 하였고, 채무로 인해 압류된 통장에서 최저생계비를 되찾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거대한 산은 늘 연체된 세금이었다.

본인의 명의가 유흥업소 등의 사업자, 법인대표자, 차량소유자로 등기·등록된 경우 고액의 세금이 발생하는데, 홈리스 상태에서는 일정한 주거가 없어 고지나 통보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세금이 부과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수년, 수십 년이 지나 거액의 체납자가 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많게는 10억 원 가까이 체납된 경우도 보았다.

흔히 세금은 파산·면책도 되지 않아 죽을 때까지 따라간다고들 한다. 거액의 세금과 과태료, 독촉장 자체만으로도 이미 버티기 힘들지만, 일을 해서 수입이 생길라치면 압류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자립할 의지도 희망도 꺾여버리기 일쑤다. 궁여지책으로 납세자보호담당관이나 조세심판원의 문을 두드려 보기도 하지만 엄격한 요건 탓에 사정은 녹록지 않다.

작년 이맘때쯤 홈리스행동, 동자동사랑방 등 홈리스 인권단체와 몇몇 변호사들이 뜻을 모아 명의범죄기획소송단을 꾸리고, 원고를 모집하여 4건의 기획소송에 착수했다(▷관련 기사 : 홈리스, 사각지대 내몰리는 '명의범죄' 피해자). 과세대상의 귀속자를 판정할 때는 단순 명의자가 아닌 사실상의 귀속자를 납세의무자로 하여야 한다는, 조세법상의 실질과세원칙에 위배됨을 근거로 과세처분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행정소송이었다. 그러나 소송 과정에서 2건은 직권취소되어 지금은 나머지 2건만 진행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2건은 과세관청에서 스스로 과세처분을 취소했기 때문에, 더 이상 소송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더 이상 소송할 필요가 없다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국세청훈령이나 행정안전부 안전예규에 따르면, 사실판단사건으로서 소송수행부서에서 검토 결과 확실히 패소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직권취소를 할 수 있다. 즉, 엄격한 요건에 맞추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재판을 통해 제대로 된 법적 판단을 받지 못한 채 과세관청의 자체적인 결정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이 경우 소송당사자의 개별적 권리구제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간 소요된 노력과 비용은 물론이려니와, 법적 판단을 받을 기회, 소송당사자 외 다른 피해 홈리스의 구제 가능성은 요원해진다.

지난 12월 17일 ‘조세행정의 관점에서 본 명의범죄의 현황과 개선과제’를 논의하는 온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사회복지공익법센터
지난 12월 17일 ‘조세행정의 관점에서 본 명의범죄의 현황과 개선과제’를 논의하는 온라인 토론회가 열렸다. ⓒ사회복지공익법센터

그리하여 1년이 지나 다시 홈리스추모제가 열리는 이즈음에, ‘조세행정 관점에서 본 명의범죄의 현황과 개선과제’ 토론회가 지난 17일 다시 열렸다. 소송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존 조세행정을 개선하는 것도 방법이니까.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이 국회의원 장혜영, 법무법인 동인, 재단법인 동천, 화우 공익재단과 공동주최하고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가 주관한 이 날의 토론회에서는 조세심판원 심판조사관과 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이 토론자로 참가하였다.

주로 문제되는 것은 불복기간과 체납세액의 합계, 그리고 증명책임이다.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하려 해도 홈리스 상태에서는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 이내’라는 불복기간을 사실상 지키기가 어렵다. 국세청이나 지방세무서에 고충민원을 제기하려 해도 체납세액이 ‘3천만 원’이 넘는다는 이유로 민원접수조차 거절당했던 경험이 있다. 고액체납자의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둔 기준일 뿐, 접수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일부 세무서의 사례일 수 있다지만 균질적인 행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증명책임의 문제 역시 정신적 장애등록이나 진단을 받은 정도가 아니면 인정되기 쉽지 않은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렇다고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국세청은 각 세무서별 고충민원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소송단은 장혜영 의원실과 함께 법 개정이나 제도개선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송단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한 건의 승소보다 법과 제도, 그리고 홈리스 명의범죄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홈리스 상태라는 취약한 상황을 악용하여 저질러지는 명의범죄에서 쉽게 피의자로 명명되는 당사자는 피해자일 때가 더 많다는 사실, 각종 행정적·사법적 구제수단이 존재하지만 형식적 요건과 실질적 판단기준은 여전히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다음에야 진짜 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어느 홈리스의 생애를 다른 홈리스의 구술로 전해 들었다. 역시나 명의범죄의 피해자였던 그는 차도 있고, 아파트도 있었기 때문에, 용산역 텐트촌에 살지만 아파도 치료받지 못했고, 임대주택도 신청하지 못했고, 거액의 채무에 삶이 짓눌리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길에서 죽어 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법·제도란 그저 성가신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납득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다시금 되새겨본다. 법의 언어와 현실의 언어가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더라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너무 동떨어진 사회라면 그것은 좋은 사회가 아닐 것이다. 그 간격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지 다시금 남은 자들의 어깨가 묵직하다.

* 필자 소개 _ 이 글은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함께하고 있는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의 변호사 김도희님이 작성하셨습니다.

2020 홈리스 추모제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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