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추모제 연속 기고③] 거리홈리스

[편집자 주] 12월 21일은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입니다. 2020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14일부터 21일 동짓날까지를 ‘홈리스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거리와 쪽방, 고시원 등지에서 살다 떠난 홈리스를 추모합니다. 또한, 추모를 넘어 사회적으로 예견된 죽음을 더는 용인하지 말 것을 사회에 촉구합니다. 특히나 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삶의 벼랑에 내몰린 홈리스의 삶을 알리고, 홈리스의 인권과 복지지원 개선을 촉구하는 여섯 편의 글을 기고합니다. 이 글은 2020 홈리스추모제 연속 기고로 비마이너, 오마이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코로나가 초래한 위기, 코로나가 드러낸 위기

오늘날 코로나를 이러저러한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분석이 도처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언론은 물론 정·재계 거물들 가운데 ‘코로나 위기’라는 말을 내뱉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당장의 생계가 어려워진 영세 자영업자나 실업 상태에 처하게 된 노동자의 처지를 고려할 때, 현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는 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삶을 위기로 몰아넣은 또 다른 원인을 함구한 채 그저 코로나 탓만 늘어놓으며 변화를 요구하는 주장에는 어딘가 찜찜하고 구린 구석이 있다. 우리는 ‘코로나가 초래한 위기’와 ‘코로나를 통해 드러난 위기’를 구분해야만 한다. 그리고 후자를 전자와 겹쳐 놓으려는 행보를 경계해야 한다. 누군가의 삶을 끊임없이 위기로 몰아넣는 대가로 다른 누군가가 이득을 챙기는, 그러면서 정작 그 책임은 피해자에게 일방 전가하는 부정한 시스템과 공모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한 사람이 나무 옆 길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있고, 비둘기들도 옆에서 나란히 식사를 하고 있다. ⓒ최인기
한 사람이 나무 옆 길바닥에 앉아 밥을 먹고 있고, 비둘기들도 옆에서 나란히 식사를 하고 있다. ⓒ최인기

‘노숙인 급식대란’의 원인과 해법?

‘노숙인 급식대란’ 현상을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 코로나 여파로 홈리스를 비롯한 빈곤층에 식사를 제공하던 무료급식소들이 문을 닫고 있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전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예년엔 접하기조차 어려웠던 급식문제에 관한 보도가 벌써 수십 편에 이르고 있으니 가히 ‘대란’이라고 부를 만도 하다. 그런데 이 대란의 원인을 ‘시스템’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거의 없다. 홈리스가 지금 ‘코로나’ 때문에 얼마나 큰 곤경에 놓여 있는지를, 그 처지가 얼마나 불쌍하고 처량한지를 편집적으로 해부하고 “따스한 손길”의 필요를 요청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히려 사정은 정반대라고 해야 옳다. 그동안 홈리스의 한 끼 식사를 오롯이 민간과 종교기관의 ‘따스한 손길’에 맡겨왔던 것이야말로 ‘노숙인 급식대란’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침탈당해 온, 홈리스의 ‘적절한 식사에 대한 권리’

사실 한국의 홈리스 당사자가 ‘적절한 식사에 대한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노숙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는 홈리스의 ‘식사’ 문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인권 이슈임을 보여준다. 거리홈리스와 노숙인시설 입소자, 고시원 거주자 등을 대상으로 한 당시 조사는 무료급식 현장에서 홈리스 당사자가 경험하는 인권침해 요인을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유형화했다.

(1) 종교행사의 강요

무료급식을 시행하는 많은 단체가 종교단체인데, 이 경우 선교의 목적이 내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급식을 원하는 노숙인에게 종교행위 또는 행사 참여를 암암리에 강요. 노숙인들은 생존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됨. 또한 노숙인 중에는 무료급식을 하는 이유가 자신들을 이용하기 위해서이지, 순수한 목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음.

(2) 비위생적 관리

거리 무료급식은 상당히 비위생적이라는 지적이 많음.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음식 자체나 조리과정에서의 위생문제,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많고 수저 등이 위생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점임. 위생문제는 단지 위생상의 문제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노숙인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인생 자체를 비관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여야 함.

(3) 음식 질의 문제

사람이 차마 먹기 힘든 음식이 제공되는 경우도 있으며,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더라도 영양분 섭취를 위한 음식이 제공되는 것은 아니라고 인식하는 노숙인이 많음.

(4) 급식 과정에서의 침해

동료시민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배식을 받고, 그 주위에서 모여 식사를 함.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 아닌 방식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는 것. 이런 상황 자체가 노숙인들을 가치 절하하는 원인으로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임.

- 무료급식 현장에서 경험하는 홈리스의 인권침해 요인, <노숙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05.

2005년 당시는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노숙인복지법)이 제정되기 전으로, 현재처럼 ‘노숙인 등 급식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도 않았으며 지원체계 역시 충분히 제도화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 탓에 홈리스 대상 ‘무료급식’은 민간과 종교기관의 몫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고, 급식 과정에서 권리침해가 발생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1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무료급식 제공 현장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는 과연 해결되었을까?

2011년 「노숙인복지법」 제정으로 노숙인 급식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법 제정 9년을 맞은 현재, 노숙인 급식시설의 설치·운영 실태는 처참한 수준이다. 「노숙인복지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설치·운영되고 있는 노숙인 급식시설은 전국을 통틀어 4곳뿐이며, 그마저도 모두 수도권 지역에 위치해 있다. 전국에서 가장 홈리스 지원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되는 서울시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시 내 노숙인 급식시설은 2곳으로 모두 민간(사단법인)에서 자부담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적 급식지원 서비스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현재 노숙인종합지원센터 3곳과 노숙인일시보호시설 4곳을 통해 홈리스 당사자에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전용 일시보호시설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기관들은 1일 1식만을 제공하는 데다, 3개 자치구(용산구, 서대문구, 영등포구)에 몰려 있어 다른 지역의 홈리스는 사실상 이용이 어렵다. 그마저도 식사 인원이 제한돼 있어 「노숙인복지법」상 ‘노숙인 등’(고시원·쪽방 등 비적정 거처 거주민)은커녕 서울시가 공식 집계한 거리홈리스의 수(2018년 기준 1,229명)조차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2020년 10월 기준, 서울시 ‘노숙인 등’ 대상 공적 급식지원서비스 제공기관의 수와 식수인원 ⓒ홈리스행동
2020년 10월 기준, 서울시 ‘노숙인 등’ 대상 공적 급식지원서비스 제공기관의 수와 식수인원 ⓒ홈리스행동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설 입소자를 제외한 홈리스 당사자들은 식사를 위해 각지를 전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남시에 소재한 한 무료급식 기관(안나의집)에서 최근 이용자를 대상으로 수행한 실태조사의 결과는 서울시의 홈리스 대상 공적 급식지원 서비스가 양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2020년 9월 19일에 진행된 이 조사의 전체 응답자 수는 597명으로, 이 가운데 서울시에 잠자리 거처를 두고 있는 이들이 195명(32.7%)에 달했다. 전국에서 홈리스 지원체계가 가장 잘 갖춰져 있다는 서울시조차 이럴진대, 다른 지역의 사정은 오죽할까.

요컨대, 과거는 물론 현재에 이르기까지 홈리스를 대상으로 제공되는 공적 급식지원 서비스는 「노숙인복지법」상 정책 대상자를 전혀 포괄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상자의 필요를 감안한 서비스 공급 또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홈리스 당사자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민간·종교기관이 운영하는 영세 규모의 미신고 급식을 이용하거나 끼니마다 소위 ‘급식 원정’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공적 급식지원 서비스가 부족한 현실은 필연적으로 홈리스 당사자의 ‘적절한 식사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자선과 시혜,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와 민간단체가 급식제공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종교행사 강요’, ‘비위생’, ‘음식의 낮은 질’, ‘급식과정에서의 침해’ 따위의 문제가 절로 사라지길 기대하는 건 전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시기, 위기 봉착한 공공 급식지원 체계와 서울시의 역행적 해법

홈리스를 비롯한 빈곤층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급식소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적절한 식사에 대한 권리’의 침해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 이 문제는 ‘따스한 손길’이라는 장막 아래 쉽게 묻혀 지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의 시작과 함께 그 장막이 걷히자마자, 그간 가려져 있던 공공 급식지원 체계는 비로소 그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민간급식소들이 연이어 운영을 중단하면서, 수요가 소수의 공공급식소로 쏠리게 된 것이다.

박광빈 따스한채움터 소장이 기자의 질문에 “한 끼에 300명 정도 드셨다고 하면요, 지금은 300명이 아니라 400, 500명까지 오고 계셔서…”라고 답하고 있다. KBS 3월 6일 자 보도 화면 캡처
박광빈 따스한채움터 소장이 기자의 질문에 “한 끼에 300명 정도 드셨다고 하면요, 지금은 300명이 아니라 400, 500명까지 오고 계셔서…”라고 답하고 있다. KBS 3월 6일 자 보도 화면 캡처

놀라운 건 기존 공공 급식지원체계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서울시가 보여준 행보다. 서울시는 양적으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부적절한 현행 공공 급식지원체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닌, 공공급식소 이용 대상과 서비스 제공 횟수를 동시에 축소하는 길을 택했다. 서울역 인근에 있는 ‘실내급식장’인 서울시립 따스한채움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서울시립 따스한채움터는 서울역 인근에서 “노숙인 등 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행해지던 민간의 거리급식 관행을 개선(실내급식 전환)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10년 개소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따스한채움터는 시가 민간·종교기관에 장소를 제공하고 민간·종교기관이 사전 조리된 음식을 해당 장소에서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1년 「노숙인복지법」 시행 이후 따스한채움터를 법정 기준에 따른 집단급식소로 전환하라는 요구가 계속됐지만, 서울시는 따스한채움터가 사회복지사업법상 사회복지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숙인복지법상 노숙인 급식시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는 단지 공간만을 제공할 뿐이라는 이유로 「식품위생법」상 집단급식소 신고를 하지 않은 채 ‘급식장’이라는 정체불명의 명칭을 계속 사용해 왔다.

주지하듯 「식품위생법」은 식품으로 인해 생기는 위생상의 위해 방지와 식품영양의 질적 향상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 법이 까다로운 집단급식소 규정을 두는 까닭도 이러한 법의 목적과 무관하지 않다. 만약 다수가 동시에 이용하는 급식소가 적절한 위생수준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집단감염을 초래할 수 있고, 적절한 영양수준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심각한 영양결핍 및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서울시립 따스한채움터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이미 ‘방역에 취약한’ 장소였다. 물론 이런 차원의 문제를 차치(?)해 둘 수 있다면, 임의시설 나름의 장점을 찾는 것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실제 서울시는 그간 이용대상을 「노숙인복지법」의 ‘노숙인 등’으로 한정하지 않은 채 따스한채움터를 운영해 왔다. 다음은 따스한채움터 개소 초기, 서울시가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서울시는 ‘따스한 채움터’ 개장 100일을 맞아 이용자를 분석한 결과, 노숙인 등 79,770명이 이용, 하루 평균 790명이 식사를 했으며, (…) 이용대상은 주로 노숙인들이 이용(80%)했으며, 용산구 주변의 쪽방거주자, 독거노인 등도 이용했다.

_ 「서울역 거리급식 문화 바꾼‘따스한 채움터’」, 2010년 8월 18일 서울시 보도자료 중

이처럼 서울시는 따스한채움터의 ‘낮은 문턱’과 ‘다양한 계층의 이용’을 자찬하며 정책의 성과로 내세운 바 있다. 한편으로 이는 ‘임의시설’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장점으로 볼 여지가 있는데, 개별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대상이 명징할 경우 이 같은 운영상의 유연성은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서울시가 돌연 기존의 입장을 바꿔 따스한채움터의 이용대상을 조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2020년 9월, 서울시는 “9월 3일부터 65세 이상은 급식 제공이 안 됩니다.”라는 내용의 공지문을 따스한채움터 건물 외벽에 게재하였고, 이후 논란이 일자 “노숙인복지법 제2조 ‘노숙인 등’에 한해서만 입장이 가능합니다.”라는 수정된 내용의 공지문을 다시 게재하였다. 급기야 9월 중순부터 서울시는 노숙 이력 조회를 전제하는 전자식(RFID) 회원증 제도를 도입함과 동시에 조식 제공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런 사전논의조차 없이 졸속으로 집행된 이 같은 조치를 두고, 공공급식소의 과부족 문제를 ‘이용자 선별’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3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시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감염병 예방’을 명분으로 따스한채움터 이용대상을 법정 기준에 따라 ‘노숙인 등’으로 특정한 서울시는 집단급식소 전환을 요구하는 주장에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한다는 이유를 들며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다.

따스한채움터에 “9월 3일부터 65세 이상은 급식 제공이 안됩니다”는 공지문이 붙어 있다. 2020년 9월 2일 촬영. ⓒ홈리스행동
따스한채움터에 “9월 3일부터 65세 이상은 급식 제공이 안됩니다”는 공지문이 붙어 있다. 2020년 9월 2일 촬영. ⓒ홈리스행동
논란이 일자 따스한채움터는 공지문을 수정했다. 수정된 공지문에는 “9월 3일부터 노숙인복지법 제2조 ‘노숙인 등’에 한해서만 입장이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2020년 9월 22일 촬영. ⓒ홈리스행동
논란이 일자 따스한채움터는 공지문을 수정했다. 수정된 공지문에는 “9월 3일부터 노숙인복지법 제2조 ‘노숙인 등’에 한해서만 입장이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2020년 9월 22일 촬영. ⓒ홈리스행동

홈리스 향한 ‘따스한 손길’ 말고 부정한 시스템 향한 ‘매서운 눈길’이 필요하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구세군브릿지노숙인종합지원센터는 현재 서울에서 거리홈리스를 대상으로 유일하게 아침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선착순 200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이곳의 배식 시간은 오전 5시 10분으로, 이미 새벽 3시경부터 각지의 홈리스 당사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인권은 아침식사와 함께 시작한다.”는 유명한 경구가 넌지시 일러주듯, 취식이란 행위는 생명을 보존하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필수적인 요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 권리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영양 섭취가 없다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충분한 영양 섭취와 섭취 과정에서의 존중이 없다면 인간은 ‘사회적’으로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적절한 식사에 대한 권리와 취식보장(food security)에 대한 요구는 인권의 역사에서 항상 ‘보편인권’을 향한 투쟁의 시발점이 되곤 하였다. 그러나 이 권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인권적 요구이자 달성되지 못한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브릿지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아침식사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새벽 5시 30분에 촬영한 것이다. 이곳은 현재 서울에서 거리홈리스 대상으로 아침을 제공하는 유일한 공적 급식기관이다. ⓒ홈리스행동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브릿지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아침식사를 이용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새벽 5시 30분에 촬영한 것이다. 이곳은 현재 서울에서 거리홈리스 대상으로 아침을 제공하는 유일한 공적 급식기관이다. ⓒ홈리스행동

팬데믹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방역의 중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홈리스를 비롯한 빈곤층이 겪는 ‘급식위기’가 오직 코로나라는 외생 변수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따져 봐야 할 문제다. 더욱이 이용 대상을 축소하고 이용자 선별을 위한 도구를 무분별하게 도입하는 것이 공공 급식기관의 밀집도를 낮추고 방역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도 아니다. 앞서 확인하였듯 현재 서울시를 포함한 정부와 지자체의 ‘노숙인 등’ 공공 급식지원 서비스는 양적인 측면에서 접근성이 매우 낮아 정책 대상자를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으며, 질적인 측면에서도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존재한다. 오랜 대기시간과 높은 밀집도의 이면에는 홈리스가 이용할 수 있는 급식소의 절대량이 부족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그 민낯이 드러난 부실한 공적 급식지원체계의 결과에 책임지기는커녕, 외려 ‘방역강화’를 내세워 면책의 활로만을 모색하는 서울시의 모순적 행보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쩌면 이제 우리는 홈리스 당사자의 창백한 낯빛을 호들갑스럽게 조명하며 ‘따스한 손길’을 요구하는 잡스러운 시도로부터 일정하게 ‘거리를 둘’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급식위기 상황을 종식하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위기에 직면한 이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손길’이 아닌, 이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부정한 시스템을 향한 ‘매서운 눈길’이기 때문이다.

* 필자 소개 _ 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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