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동권투쟁 시발점 된 오이도 추락사고 20주기 맞아
오이도역에서 추락해 사망한 장애인 추모 후 서울역까지 지하철로 이동
지하철 하차 시 시간 정체되자 시민들 “시민 볼모”라며 분노 표출해
장애인들, “고작 20분 이동권 지체? 우리는 20년 이상 이동권 제약받았다”

‘20년 기다렸다. 노선버스 대·폐차 저상버스 도입의무화하라!’라는 종이팻말이 지하철 노선도 아래 붙여져 있다. 사진 허현덕
‘20년 기다렸다. 노선버스 대·폐차 저상버스 도입의무화하라!’라는 종이팻말이 지하철 노선도 아래 붙여져 있다. 사진 허현덕

“오이도역 추락참사는 비단 장애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 사회가 장애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일깨워, 이동권 보장 없이는 장애인이 이 땅에 살아갈 수 없다며 이동권 보장을 외쳤습니다. 오이도역 추락참사는 장애인운동의 출발이었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장애인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었습니다. 가장 목마르고 가장 열망하는 사람들이 질기게 싸우면 세상은 조금씩 변화합니다. 변화에 만족하지 않고 이 사회의 기준을 완전히 바꿔내는 것, 그것이 목표입니다.” (김병태 안산단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2001년 이동권연대 상황실장)

김병태 안산단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그는 2001년 이동권연대 상황실장이었다. 사진 허현덕
김병태 안산단원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그는 2001년 이동권연대 상황실장이었다. 사진 허현덕

지난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다 장애인부부가 추락해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큰 사고를 당했다. 당시 서울시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고작 13.74%에 불과했다. 즉, ‘1역사 1동선’이 확보된 곳은 262개 역사 중 36개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처럼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 휠체어리프트는 잦은 고장으로 장애인을 공포심에 몰아넣었고, 결국 추락사고로 장애인이 사망했다. 당시 오이도역에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된 지 고작 한 달 지난 시점이었다.

그날부터 ‘장애인이동권연대(아래 이동권연대)’가 결성됐다. 이동권연대는 △모든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을 촉구하며 투쟁했다. 이들의 투쟁은 고 박종필 감독의 다큐멘터리 ‘버스를 타자!’에 고스란히 담겼다. 중증장애인들은 서울역 지하철 선로로 내려가고, 종로1가 버스를 점거해 장애인 이동권을 처절하게 외쳤다. 이렇게 투쟁을 시작한 지 20년,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얼마나 확보되었을까?

활동가들이 붙여놓은 종이팻말 사이에 ‘오이도역 추락참사 20주기 특별열차’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사진 허현덕
활동가들이 붙여놓은 종이팻말 사이에 ‘오이도역 추락참사 20주기 특별열차’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사진 허현덕
지하철에 붙은 종이팻말. ‘장애인이동권은 자유권이다.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개정하라!’라고 써 있다. 사진 허현덕
지하철에 붙은 종이팻말. ‘장애인이동권은 자유권이다.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 개정하라!’라고 써 있다. 사진 허현덕

-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무관심한 시민인식은 그대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인권운동단체는 22일 오전 11시 오이도역에서 추모제를 열고, 20년 전 휠체어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장애인을 추모했다. 추모제가 끝난 직후에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열차 안에서 장애인들은 그들이 탄 열차를 ‘오이도역 추락참사 20주기 특별열차’라고 칭하고, 바닥과 창문, 의자에 ‘장애인 이동권은 자유권이다 교통약자편의증진법 개정하라!’, ‘서울시는 약속을 지켜라 2022년까지 지하철 1동선 엘리베이터 100% 설치’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붙이기도 했다.

서울역까지 오는 도중 시민들은 불편한 기색 없이 다른 칸으로 이동하거나 장애인활동가들이 하는 구호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활동가들이 내리던 도중 시간이 조금 지체되자, 시민들 중 일부가 “시민을 볼모로 이래도 되는 거냐”, “서울대병원 가려고 4시간이나 걸려서 왔다. 나도 장애인등록증이 있는 장애인이다. 이렇게 지하철 지연시키면 나는 4개월 지나야 진료받을 수 있는데, 잘못 되면 당신들이 책임질 거냐”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장애인활동가들은 “우리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을 20년이나 참아 왔다. 우리의 권리를 알리려고 하는 것뿐이다”라며 “우리에게 따질 것이 아니라 장애인 이동권에 무관심한 정부와 서울시장에게 따지라”고 응수했다. 이러한 반박에도 화를 참지 못한 한 시민은 바닥에 드러눕고 여성 장애인활동가를 위협했다. 계속된 항의에 지하철 운행은 더욱 지체됐다. 20년 전 박종필 감독의 영상에 담긴 시민들의 항의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 시민이 장애인등록증을 내보이며 장애여성 활동가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진 허현덕
한 시민이 장애인등록증을 내보이며 장애여성 활동가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진 허현덕
한 시민이 장애여성 활동가에게 등을 내보이며 위협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한 시민이 장애여성 활동가에게 등을 내보이며 위협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한 시민이 항의하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로 인해 열차 정체가 더욱 길어졌다. 사진 허현덕
한 시민이 항의하며 땅바닥에 드러누웠다. 이로 인해 열차 정체가 더욱 길어졌다. 사진 허현덕

- 계속된 투쟁에도 장애인들의 죽음은 계속돼

2001년 이후 장애인들의 끝없는 투쟁에도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02년 발산역에서 또 다시 휠체어리프트가 추락했다. 중증장애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39일간 단식 농성을 하며, 이동권연대가 했던 요구를 다시 촉구했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04년(서울역), 2006년(회기역), 2008년(화서역), 2012년(오산역)에도 휠체어리프트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7년에도 신길역에서 한경덕 씨가 휠체어리프트를 이용하려던 중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시장애인이동권선언’을 통해 2022년까지 서울시 지하철 ‘1역사 1동선’ 완료, 2024년까지 서울시내 100%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 저상버스 도입률은 49.8%에 불과하며, 2020년 기준 서울 지하철 278개 역사에 ‘1역사 1동선’이 확보된 곳은 255개(91.73%)이다.

한 활동가가 주먹을 움켜쥐고 있다. 뒤에는 ‘2021 이동할 권리’라는 글씨가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허현덕
한 활동가가 주먹을 움켜쥐고 있다. 뒤에는 ‘2021 이동할 권리’라는 글씨가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허현덕

- 무늬만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지역 간 장애인 이동권 격차 심화

그나마 서울시는 나은 편이다. 지방에 사는 장애인들은 여전한 이동권 제약이 있다. 2005년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국토교통부는 제3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2017~2021)에서 전국 시내버스의 42%를 저상버스로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2019년 기준 도입률은 전국 28.4%에 불과하다. 당초 정부가 발표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기준 5000여대가 모자란 수준이다.

정기열 이천이삭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심상정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저상버스 도입률이 경기도는 고작 13%밖에 안 된다”라며 “여전히 장애인은 집 밖을 나서면 투쟁의 연속이다. 오이도역까지 2~3시간 걸렸고, 서울역에서 결의대회가 끝나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부터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다”라고 지적했다.

‘특별교통수단 지역 간 차별없이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라!’라는 피켓을 목에 걸고 있는 활동가. 사진 허현덕
‘특별교통수단 지역 간 차별없이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라!’라는 피켓을 목에 걸고 있는 활동가. 사진 허현덕

특별교통수단의 지역 간 격차도 심하다. 특별교통수단은 ‘중증장애인 200명당 1대’에서 지난 2019년 7월에 보행상의 장애인 중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150명당 1명’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전국 특별교통수단 도입률은 82.6%에 불과하다. 의무도입률을 지킨 곳은 경기(141.7%), 경남(104.4%) 두 곳뿐이다. 충북은 49%에 불과했다. 대부분 의무도입률의 절반 정도만 지키고 있다.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에서 운영과 예산의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명확하게 명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유현 시흥두리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시흥시는 도시개발로 인해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이에 비례해 장애인인구도 증가하고 있는데, 2020년에 이르러서야 이틀 전 예약제에서 즉시콜로 바뀌었다”라며 “시흥시 저상버스는 2개 노선뿐이고, 특별교통수단은 24시간 운영을 하지 않아 심야에는 장애인들이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시흥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행정수도 세종시에서는 특별교통수단 누리콜을 민간위탁에 맡겨서 이용자들이 심각한 이동권 제약을 받고 있다. 이에 공공운영을 촉구하며 세종시청 앞에서 40일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춘희 세종시장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장애인활동가와의 약속을 파기했다.

한 활동가가 등에 ‘기재부는 돈장난 하지말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중앙정부 책임 분명하게 하라!’라는 종이팻말을 붙이고 있다. 사진 허현덕
한 활동가가 등에 ‘기재부는 돈장난 하지말라. 장애인 이동권 보장. 중앙정부 책임 분명하게 하라!’라는 종이팻말을 붙이고 있다. 사진 허현덕

- 장애인들 “이동권은 자유권” 선택이 아닌 필수

기자회견에서는 ‘이동권은 자유권에 속한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며, 권리가 보장되지 않을 때는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은 너무나도 천천히, 예산에 따라서 조금씩 보장되고 있었기에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에 장애인활동가들은 △국토교통부장관 면담 △노선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 법제화 △장애인특별교통수단 지역 간 차별철폐 법제화 즉각 시행을 촉구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황망함과 분노와 희망의 교차적인 감정을 내비치며, 앞으로의 이동권 투쟁을 강조했다.  

“20년 만에 오이도역에 처음 왔습니다. 처음 오이도역에 왔을 때 느낀 감정은 황망함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분노와 희망도 동시에 느낍니다. 20년 내내 이동권 확보를 위해 지하철도로 내려가고 버스도 점거해 쇠사슬로 묶고, 사다리 매고 투쟁했는데도 정부와 지자체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 대한 분노입니다. 그리고 20년 전 10명도 안 되는 동지들과 싸웠는데, 오늘은 50명의 동지들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먼저 투쟁해서 대한민국에 사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동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이기적인 투쟁이 아니라, 장애인만 잘 먹고 잘사는 투쟁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투쟁입니다.”

서울역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투쟁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서울역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투쟁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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