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정당’, ‘투쟁정당’ 내세워 자진 해산 예고했지만
서울시선관위, “‘당’ 명칭 쓰는 것은 정당법 위반”
시민사회단체 “소수자 정치참여 막는 현행법, 헌법 위배”

탈시설장애인당이 서울시선관위 건물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하민지
탈시설장애인당이 서울시선관위 건물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하민지

‘가짜정당’, ‘투쟁정당’을 천명하며 1월 13일 창당한 탈시설장애인당이 처벌받을 위기에 놓였다. 등록된 정당도 아닌데 ‘당’ 자를 써서 정당법을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서울특별시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서울시선관위)는 지난달 19일, 탈시설장애인당 앞으로 공문을 보내 △정당법 41조에 의해 등록된 정당이 아니면 명칭에 정당임을 표시하는 문자를 사용하지 못하고 △공직선거법 90조에 따라 정당의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을 명시한 현수막 등 시설물을 설치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며, 이를 어길 경우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탈시설장애인당은 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 종로구 서울시선관위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위성정당은 놔두면서 소수자의 정치참여는 막는 현행법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규탄했다.

박경석 탈시설장애인당 집행위원장이 면담 요청서를 들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탈시설장애인당 집행위원장이 면담 요청서를 들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위성정당은 합법, 소수자 정당은 불법’이라니

위성정당은 작년 4월 국회의원 선거 때 등장했다. 이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됐다. 정당 득표율로 정해진 전체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 수를 뺀 후, 남은 의석수의 절반을 비례대표로 가져가는 제도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당처럼 지역구 의석수를 많이 확보하는 정당이 의석수 확보에 불리하자,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지역구는 더불어민주당에, 정당투표는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하게 해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더 많이 확보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꼼수’라는 비판이 많았다.

기자회견에서는 위성정당은 그대로 두면서 소수자가 모여 정치에 참여하는 정당만 불법이라고 하는 서울시선관위를 규탄했다.

윤현식 노동정치사람 정책위원은 “위성정당이야 말로 가짜정당이다. 헌법 8조에는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당은 반민주적인 위성정당을 만들었는데도 국고지원까지 받아 가며 정당활동을 한다. 기득권만 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서린 사회변혁노동자당 사회운동위원장은 “위성정당이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고 등록되는 마당에, 이 사회에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민중의 삶과 목소리가 지워지고 있는 게 한국 정당의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박경석 탈시설장애인당 집행위원장은 탈시설장애인당 창당 취지를 설명하며 소수자의 의견을 짓밟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기존 정당이 장애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선거 때만 써먹고 버리는 행태에 분노한다. 분노만 할 게 아니라 시민에게 알려서 제대로 된 정책이 실행될 수 있도록 우리가 가진 힘을 다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소수자의 의견이 무시되는 게 선거법이라면 법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또 “힘 있는 사람만 정당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도 선거 때 마음껏 자신의 의견을 시민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김상은 변호사는 현행 정당법이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사진 하민지
김상은 변호사는 현행 정당법이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사진 하민지

- 5개 시·도당, 천 명 당원 가져야만 ‘정당’ 인정?

정당법에 따라 등록된 정당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당이 고발조치 된 사례가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는 작년 4월, 사회변혁노동자당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당법 41조에 의해 등록된 정당이 아닌데 ‘당’ 자를 썼다는 이유에서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은 5개 이상 시·도당과 천 명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만 정당등록이 가능하다고 명시된 정당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예정이다.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준비하는 김상은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헌법 8조에는 ‘정당의 설립은 자유’라고 명시돼 있다. 정당법이 정하고 있는 정당 등록요건 자체가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 설립의 자유를 침해한다. 또한 가짜정당임을 내세우며 정당으로서의 실체를 갖추지 않은 탈시설장애인당에 대해 정당법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서린 위원장은 “5개 이상 시·도당과 천 명 이상의 당원 기준을 들먹이며 정치활동을 가로막는 정당법은 폭압적이다. 영국은 정당 등록기준이 당원 2명 이상이고 프랑스는 정당 등록제도가 없다. 우리나라의 정당등록제 자체가 폐지돼야 한다. 소수자의 정치를 탄압하고 가로막는 국가의 명령을 거부한다”고 성토했다.

윤현식 정책위원도 “시골, 산골 어디서 정당활동을 하든, 몇 명이 하든 정당을 통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우리 헌법의 정신이다. 하지만 서울시선관위는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을 가져와 헌법 정신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법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선관위는 탈시설장애인당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서울시를 약속해 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안철수·나경원·오세훈 예비후보의 성명이 게재된 피켓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90조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김 변호사는 “공직선거법 90조를 기계적으로 적용한 사례다. 탈시설장애인당은 낙선운동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한 적이 없다. 각 후보에게 정책협약을 요청한 건 최근 여러 예비후보가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과 정책협약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탈시설장애인당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는 위법적·위헌적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후보들이 참석했다. 최영은 이동권 후보와 박정숙 건강권 후보가 피켓을 목에 걸고 다른 참가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하민지
기자회견에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후보들이 참석했다. 최영은 이동권 후보와 박정숙 건강권 후보가 피켓을 목에 걸고 다른 참가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 하민지

- “‘탈시설장애인숭구리당당’은 괜찮나?” 비판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탈시설장애인당은 서울시선관위 지도과와 면담을 가졌다. 서울시선관위는 “‘당’을 포함한 유사명칭을 쓸 수 없다. 사회 통념상 정당활동과 유사해 보이므로 그렇게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 집행위원장이 “그럼 ‘탈시설장애인숭구리당당’으로 바꾸는 건 괜찮은가”라고 질의하자 서울시선관위 측은 “정식으로 중앙선관위에 질의하면 유권해석을 해서 알려드리겠다”고 답했다.

한편, 탈시설장애인당은 ‘가짜정당’, ‘투쟁정당’을 천명하며 지난 1월 13일 창당했다. 중증장애인 11명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이 또한 가짜 후보다. 이들은 ‘진짜’ 후보를 찾아가 11대 장애인정책 요구안을 전달하고 거리유세를 펼치고 있다. ‘가짜정당’인 탈시설장애인당과 ‘가짜’ 서울시장 후보 11명은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25일 전날까지 활동하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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