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비상상고 기각했지만… “‘인간의 존엄성’ 침해했다”
과거사위 통해 ‘보호’ 명분으로 한 감금행위 진상규명해야
대법원이 과거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에 대한 무죄 판단이 잘못됐다며 제기된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다만, 오늘 판결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이 헌법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다고 해석해, 2기 과거사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이목이 쏠린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김용원 변호사(당시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검사)가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을 수사하면서 알려졌다.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일명 ‘부랑인’으로 낙인찍혀 납치·감금·폭행·강제 노역을 당한 시설로, 75년부터 88년까지 공식기록상의 사망자만 551명이다.
사건이 밝혀진 당시 전두환 정권과 검찰의 외압으로 부실한 수사가 이뤄졌다. 박 원장은 특수감금(원생 168명을 울주군 작업장에 감금·강제노역시킨 행위)과 업무상 횡령(국고 보조금 횡령 행위)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본원으로부터 60km가량 떨어진 울주작업장에 대해서만 해당할 뿐, 형제복지원 본원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1987년 6월, 1심 법원에서는 특수감금 및 업무상 횡령 혐의 모두 유죄로 판단해 박 원장에게 징역 10년 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7번의 판결 끝에 결국 특수감금죄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며, 업무상 횡령 범죄만 인정되어 징역 2년 6개월로 형량이 줄었다.
그러다 지난 2018년 문무일 검찰총장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에게 사과하며, 검찰 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했다. 비상상고란 확정판결을 대상으로 그 재판에 법령위반이 있음을 이유로 인정되는 비상구제 절차다. 이를 통해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해 법령 적용의 오류만 시정한다. 다만, 그 판결의 효력이 피고인에게 미치지 않아 재심과는 다르다.
당시 문 검찰총장은 ‘내무부 훈령 제410호(아래 훈령)를 근거로 피고인에 대한 공소사실 중 특수감금을 형법 제20조를 적용해 무죄로 판단한 것은 법령위반’이라며 원판결의 파기를 주장했다. 훈령은 당시 사회정화사업에 따라 부랑인을 단속·수용·보호하는 지침으로 형제복지원과 같은 부랑인 시설의 존립 근거가 됐다. 즉, 훈령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위헌‧무효였다는 설명이다.
대법원, 비상상고 기각했지만… “‘인간의 존엄성’ 침해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1일 오전, 형사소송법상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며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과거 재판에서 박 원장의 특수감금 행위가 정당화된다고 판단해 적용한 법령은 훈령이 아닌, 정당행위에 관한 형법 제20조 등이라고 보았다. 훈령은 그 적용의 전제로 삼은 여러 사실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대법원은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회복의 필요성과는 별개로,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헌법 최고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했다”고 해석하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과거사위)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해 6월 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개정되었으며, 같은 해 12월에는 2기 과거사위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첫 번째로 접수한 바 있다.
대법원은 “과거사위가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을 재개할 수 있고, 규명된 진실에 따라 희생자, 피해자 및 유가족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부의 적절한 조치를 통해 피해자들의 아픔이 치유되어 사회 통합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비상상고는 본질 아냐… “과거사위 통해 진상규명해야”
그러나 훈령의 위헌‧위법성 여부를 따지는 것이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의 진상규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검찰총장은 비상상고를 신청하면서 훈령의 위헌·위법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은 이미 훈령이 제정되기 이전에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형제복지원 검찰 수사가 시작되어 훈령이 폐지되었음에도 내무부의 부랑인 단속은 계속 진행됐다.
그보다 형제복지원 사건 본질은 사회복지시설이 ‘보호’를 목적으로 감금한 행위가 과거 판결에 의해 정당화된 점이다. 또한 그동안 기소조차 되지 않았던 형제복지원 본원에서의 감금 행위에 있다. 이는 2기 과거사위의 조사를 통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한종선 형제복지원사건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 대표는 “이번 비상상고에서는 박 원장의 범죄행위에 대한 과거 검찰의 실수를 만회하려고 한 시도가 기각된 것일 뿐, 우리의 피해사실이 기각된 건 아니다”라며 “비상상고 결과로 인해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는다. 과거사위를 통해서 더 정확하고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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