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왕립위원회, 아동 성폭력 역사 치밀하게 진상규명
‘금전적 지원, 피해에 완전 등가하는 배상 아냐’ 강조
배보상·국가의 공식 사과 이어져… 2기 과거사위 함의점 주목

지난해 12월, 마침내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과거사위)가 시작됐다. 

이번 과거사위에서는 그간 부랑인 수용시설로 알려진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에 대한 조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해당 시설들은 부랑인 수용시설로 주로 알려져있지만, 아동 및 청소년기의 사람들이 강제로 감금되어 폭력을 경험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동학대·폭력의 관점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구현하기 위한 검토가 필수적이다. 

18일, 오후 7시 한국인권학회 제15차 월례포럼에서는 수용시설 아동학대 과거청산에 대한 흐름을 호주를 중심으로 짚어보고, 2기 과거사위가 시작한 현재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했다. 이날 발제는 주윤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과 이사랑 진실의힘 팀장이 맡았으며, 줌을 통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1970년 선감학원 기록 사진. 사진제공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
1970년 선감학원 기록 사진. 사진제공 정진각 안산지역사연구소 소장

강제 수용시설의 역사, 아동학대·폭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등 강제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의 대다수 피해생존자는 아동·청소년기에 폭력을 경험했다.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산 선감도에 설립된 선감학원은 해방 후 국가 부랑아 정책에 따라 강제수용시설로 사용됐다. 1955년부터 82년 폐쇄 전까지 총 4,691명의 아동이 경찰과 공무원에 의해 강제 수용됐으며, 이 중 약 41%가 8~13세였다. 

형제복지원은 아동을 비롯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부랑인으로 낙인 찍혀 납치·감금·폭행·강제노역을 당한 곳으로, 1975년부터 88년까지(87년 시설폐쇄) 공식 기록으로만 551명이 사망했다. 

주윤정 연구원은 “피해생존자의 노력으로 2기 과거사위가 만들어졌다. 정의와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만들어 어떻게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지 다른 사례를 통한 꼼꼼한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주 연구원은 연구의 목적을 밝히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피해생존자들의 60% 이상이 아동·청소년 시기에 폭력과 감금을 경험했다. 선감학원도 아동을 강제수용해서 복지라는 이름으로 보호한다고 했지만, 그곳에서 아동에게 엄청난 폭력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한 피해생존자의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아동기의 폭력과 인권침해는 한 사람의 생애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18일, 오후 7시 한국인권학회 제15차 월례포럼에서는 수용시설 아동학대 과거청산에 대한 흐름을 호주를 중심으로 짚어보고, 2기 과거사위가 시작한 현재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했다.  주윤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이 발표를 하고 있다. 줌 영상 캡쳐 
18일, 오후 7시 한국인권학회 제15차 월례포럼에서는 수용시설 아동학대 과거청산에 대한 흐름을 호주를 중심으로 짚어보고, 2기 과거사위가 시작한 현재 앞으로의 과제를 논의했다. 주윤정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이 발표를 하고 있다. 줌 영상 캡쳐 

호주의 왕립위원회, 국가 주도로 아동 성폭력 역사 진상규명해

다른 나라에서는 시설 내 아동 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회복을 구현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을까? 주 연구원은 “호주의 경우, 시설 내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해 철두철미하고 치밀하게 조사를 해 정의와 인권의 개념을 바꾸는 것 같았다”라고 밝혔다. 

호주에서는 지난 2013년, 줄리아 길라드(Julia Gillard) 전 호주 총리의 권고로 아동 성폭력에 대한 시설 대응 조사를 위한 왕립위원회(Royal Commission into Institutional Responses to Child Sexual Abuse)가 설치됐다. 

호주 정부는 초기 가톨릭 교구 내 시설, 학교 등에서의 아동 성폭력 문제가 호주 전역에서 문제시되자, 의회와 각 주립 위원회, 인권위원회 등을 통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호주 총리가 ‘과거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아이들이 안전할 방법을 함께 찾아내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왕립위원회의 설립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각 주립위원회에서 나눠 진행된 조사는 왕립위원회가 설치된 뒤 국가 주도로 진행됐다. 

왕립위원회의 규모는 상당하다. 위원회 기간 5년 동안 총 700여 명이 근무했으며, 예산은 5년간 약 3000억 원에 달한다. 위원회 위원의 구성은 두 명의 판사, 전 경찰청장, 정부 생산성위원회 위원장, 전직 서호주 상원의원, 그리고 아동 청소년 전문 정신과 의사로 총 6명이다. 이사랑 팀장은 특히 “아동들이 겪었을 PTSD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정신과 의사가 위원으로 참여했다”라고 밝혔다. 

왕립위원회는 아동 성폭력과 관련된 문제의 혐의와 사건에 대한 시설대응을 조사하겠다고 명시했지만, 이와 관련한 불법·부적절한 행위도 조사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폭력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을 열어뒀다. 

왕립위원회는 진실규명을 위해 방대하고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총 8,013건의 개별조사를 진행해 6,876명의 생존자가 증언했으며, 조사에 참여한 생존자의 나이는 7세부터 93세까지로 광범위한 기간 동안 발생한 사건을 대상으로 했다. 공청회의 경우 57건의 공개, 67건의 비공개 공청회가 총 444일 동안 열렸다. 이 팀장은 “개별조사를 할 때 심리상담 전문가가 동석했으며, 왕립위원회의 조사가 끝나더라도 다른 곳으로 이관되어 조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라고 덧붙였다.

피해생존자들의 정보접근도 쉽게 만들었다. 왕립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쓰였다. 개인정보보호법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시설에서 나와 자신의 정보를 직접 찾아보고 싶어도 거부되기도 했는데, 왕립위원회는 관련 법률이 완전히 막지 않는 이상 반드시 피해당사자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팀장은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피해생존자들은 기록을 확보하기까지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호주의 사례를 참고할만하다”라고 말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지난 2018년 10월, 호주 전역의 기관과 시설에서 아동 성폭력을 당한 피해생존자를 위해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했다. 사진 캡쳐 호주 정부 홈페이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지난 2018년 10월, 호주 전역의 기관과 시설에서 아동 성폭력을 당한 피해생존자를 위해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했다. 사진 캡쳐 호주 정부 홈페이지

호주 총리의 진심 어린 사과, 사법·행정적 결과로 이어져

왕립위원회는 조사를 마친 뒤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며 409개의 권고를 했다. 2018년 10월,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호주 총리는 호주 전역의 기관과 시설에서 아동 성폭력을 당한 피해생존자를 위해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했다. 

오늘 우리는 과거를 받아들이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헌신할 것을 약속합니다. 아동 피해자, 생존자들이 겪는 극심하고 계속되는 고통과 괴로움, 트라우마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어린이로서 당신은 돌봄과 보호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돌봄에 책임 있는 바로 그 사람과 기관은 당신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물리적, 정신적 학대에 괴로워했고 끔찍한 성범죄를 겪어냈습니다. (중략) 모든 호주 어린이들은 학대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보호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과의 의미를 진실하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행동을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 이 팀장은 “호주 총리의 진심어리고 구체적인 사과는 왕립위원회의 개별적인 조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호주 정부가 구조적·제도적으로 아동 성폭력이 발생했던 사실을 인정하고, 이후 사법·행정적 결과로 이어진 점이 눈에 띈다”라고 밝혔다. 

“금전적 지원은 피해에 완전히 등가하는 배상 아냐” 분명히 밝혀

그렇다면 이후 배보상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왕립위원회는 시설 내 아동 성폭력 피해자가 겪은 과거 및 현재의 피해, 그리고 미래에 발생가능한 피해에 대한 적절하고 충분한 회복·배보상을 피해자와 가족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제공했다. 왕립위원회는 조사가 끝난 뒤에도 배보상 신청 현황을 홈페이지를 통해 계속 업데이트 중이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총 9,506건이 신청되었으며, 이 중 4,842건에 대한 재정 지원금이 지급 완료됐다. 총 약 3500억 6천만 원이 피해자를 위해 지원됐다. 

그런데 배보상을 위한 재원 마련 방식은 100% 정부예산이 아니다. 피해에 책임을 져야 하는 관련 기관·시설과 지자체가 ‘국가 배보상 제도(National Redress Scheme)’에 가입해 신탁 운영을 통해 재원 마련에 함께 한다. 해당 홈페이지에는 가해에 가담했던 기관명이 공개되어있으며, 학교·교회·자선단체 등 450개의 시설이 가입되어 있다. 

이 팀장은 “가해에 가담한 기관이 ‘국가 배보상 제도’에 가입해야 신청인에게 지원이 가능한 구조다. 당연히 기관은 가입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 정부지원금 제도에서 영구적으로 신청이 불가능하게 하는 등 불리한 조건을 두어 가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왕립위원회는 금전적인 지원의 경우, △폭력의 심각성 △폭력의 영향 △추가 요소를 기준으로 삼아 피해정도를 수치화했으며, 최소 85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8천만 원을 지원금으로 책정했다. 이 팀장은 “중요한 점은 왕립위원회가 금전적 지원이 피해에 완전히 등가하는 배상이 아닌 보조적인 성격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존에 사회복지 지원을 받고 있던 피해생존자가 지원금을 받음으로써 다른 복지지원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했다”라고 밝혔다.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피해생존자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다. 만일 배상이 이뤄지게 되면 중복수혜를 이유로 기존의 복지 지원이 끊기게 될 우려가 있어 호주의 선례를 참고할 만하다. 

이사랑 진실의힘 팀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줌 영상 캡쳐 
이사랑 진실의힘 팀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줌 영상 캡쳐 

2기 과거사위, 시설 내 아동 폭력 뿌리 뽑는 계기 되어야

호주는 왕립위원회 이전과 이후, 아동정책을 비롯해 호주 사회가 완전히 변화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2기 과거사위원회 또한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분명히 만들어낼 목적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팀장은 “호주에서도 왕립위원회의 활동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2기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에 함의점이 많다”라며 “사건의 종합적 진실과 함께 개별 피해자 조사에 충실하고, 개별사건의 특이성을 반영한 주요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금전적 손해배상만이 유일한 수단이 아닌, 다양한 피해자 지원방안을 제안하고 운영해 확실한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주 연구원 또한 “2기 과거사위원회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외면되어 왔던 사회복지시설과 아동에 대한 폭력을 철저히 뿌리 뽑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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