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수용 근거 ‘내무부 훈령 410호’는 위헌
징벌적 조치로 정신요양원 강제 입원, 약물로 수용자 통제
대통령과 보안사, 안기부, 지자체까지 동원된 국가 폭력의 현장

진실화해위는 24일 오전 10시,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근식 위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진실화해위는 24일 오전 10시,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근식 위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이 “공권력이 적극 개입한 총체적인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밝혔다. 1987년 형제복지원 실상이 세상에 드러난 지로부터 35년, 2012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씨가 국회 앞 1인 시위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세상에 다시 소환한 지 10년 만에 나온 결정이다.

진실화해위는 24일 오전 10시,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현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피해생존자 10여 명이 자리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조사결과를 발표하자, 피해생존자 박순이 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엉엉 울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이라고 적힌 노란 점퍼를 입고 온 한종선 씨는 내내 무거운 표정으로 발표를 지켜봤다.

조사결과 발표를 듣던 중 피해생존자 박순이 씨가 울음을 터뜨렸다. 또 다른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가 곁에서 위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조사결과 발표를 듣던 중 피해생존자 박순이 씨가 울음을 터뜨렸다. 또 다른 피해생존자 최승우 씨가 곁에서 위로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형제복지원 사건은 1987년 1월 부산지검 울산지청의 수사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박인근 원장은 특수감금,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으나 이는 형제복지원 본원이 아닌 본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울주작업장에 한한 문제였다. 당시 전두환 정권의 외압으로 본원에 대해선 문제조차 삼지 못했다. 게다가 두 번의 파기환송으로 7번의 판결 끝에 박 원장은 특수감금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받고 업무상 횡령만 인정받아 2년 6개월의 징역을 산 게 전부였다.

이후 세상에서 잊힌 형제복지원은 2012년 한종선 씨의 국회 앞 1인 시위와 책 ‘살아남은 아이’의 출간으로 재조명되면서 시민사회계에선 대책위가 꾸려졌다. 2기 진실화해위 출범에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국회 앞 농성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0년 12월 10일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 사건’으로 접수한 후 지난해 5월 조사를 개시했다. 이번 발표는 전체 신청자 544명 가운데 2021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만을 대상으로 한 1차 결과다. 올해 연말 2차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2018년 8월,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피해생존자들이 농성하는 모습. 농성장에는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하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2018년 8월, 국회 앞에서 형제복지원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피해생존자들이 농성하는 모습. 농성장에는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하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다. 사진 강혜민

- 내무부 훈령 410호는 위헌, 사망자도 추가 발견

형제복지원 수용의 근거는 내무부 훈령 410호이다. 이는 ‘부랑인의 신고·단속·수용·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이다.

진실화해위는 이 훈령이 위헌·위법하다고 밝혔다. 당시 내무부 훈령 410호로 인해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은 어떠한 형사 절차도 없이 시군구청과 경찰의 합동으로 구성된 ‘부랑인 단속반’에 의해 수용시설에 보내져 정해진 기한도 없이 강제수용됐다. 진실화해위는 조사 결과, 내무부 훈령 410호는 법률유보 원칙,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 체계 정당성을 모두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추가 사망자도 확인됐다. 이제까지 형제복지원에서 확인된 공식 사망자 수는 552명이었으나, 이번 조사로 105명이 추가로 확인돼 1975년부터 1988년까지 사망자는 총 657명이 됐다. 사망사유가 모호하거나 사망진단서가 조작된 경우도 있었다.

형제복지원에서는 사망률도 높았다. 1986년 한 해에만 원내에서 135명이 죽어 4.30%의 사망률을 보였다. 이는 일반국민 사망률 0.31%보다 13.5배 높은 수준이다.

부산시청의 단속에 의해 검거된 부랑인을 인수하기 위해 형제복지원에서 운영한 수송차량. 사진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화보집
부산시청의 단속에 의해 검거된 부랑인을 인수하기 위해 형제복지원에서 운영한 수송차량. 사진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화보집

- 징벌적 조치로 정신요양원 입원시켜 약물 과다 투여하기도

형제복지원 내에는 정신요양원이 있었다. 수용자 다수는 정신과 진단에 따르지 않고 간부 원생에 의한 징벌 조치의 일환으로 정신요양원에 수용됐다고 진술했다. 이는 신상기록카드에서도 드러났다. 양아무개 씨의 신상기록카드에는 “정신질환자로 사료된다”는 비의료인의 판단이 적혀있었고 실제 그는 한 달 후 정신요양원으로 전원 조치됐다.

비의료적 판단에 의한 정신요양원 입소는 형제복지원만의 일탈은 아니었다. 보건사회부의 ‘정신질환자 요양보호시설 운영지침’(1984)에는 수용대상으로 △사회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자 △중증 정신질환자 △기타 정신질환자를 명시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애초에 정신요양원 목적이 의학적 진단에 따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위해를 끼칠 우려’라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대상자를 격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시설 안에서는 수용자에게 정신과 약물을 과다 투여해서 통제하는 ‘화학적 구속’이 만연했다. 1986년 형제복지원에서 1년간 구입한 클로르프로마진(조현병 환자의 증세를 완화하는 약물)은 총 25만 정인데 이는 1년 동안 342명이 매일 2회 복용할 수 있는 양이다. 당시 정신요양원 수용인원이 395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수용자 대부분을 증상과 상관없이 약물로 통제했음을 알 수 있다.

용당동 시절, 원사를 짓기 위해 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는 원생의 모습. 사진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화보집
용당동 시절, 원사를 짓기 위해 흙으로 만든 벽돌을 쌓는 원생의 모습. 사진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화보집

- 시설 확장에 수용자 강제동원… 대통령 지시로 강제노역 전국적으로 이뤄져

수용자들은 형제복지원 시설 확장에 강제 동원되기도 했다. 1960년 7월, 형제복지원 전신인 형제육아원이 부산 감만동에서 첫 개소했다. 1962년 6월에는 용당동으로, 1975년 7월에는 주례동으로 확장 이전했으며, 1982년 이후에는 증축 공사를 했다. 이 모든 공사에 수용자들의 노동력이 무급으로 쓰였다.

이러한 ‘형제복지원 모델’은 정부 주도로 시설 강제노역이 이뤄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81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구걸행위자보호대책’이 시행된다.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부랑인 단속 목표가 제시되고 일제단속이 일어난다. 이때 정부 차원에서 부랑인 수용시설의 신설과 확충이 이뤄지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국가 재원을 줄이고자 정부는 형제복지원을 참고해 수용자의 노동력을 시설이 강제 동원하도록 지시한다. 진실화해위는 “정부 주도하에 강제노역 모델을 전국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형제복지원은 자활사업을 명목으로 낚시공장, 장난감공장, 봉제공장 등에서도 수용자를 부리면서 돈을 주지 않았다. 형제복지원은 ‘모든 수익금을 수용자들의 적금 통장에 예치하여 자립 퇴소하는 이들에게 지급했다’고 주장하나,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시설은 이 돈을 착복했다.

진상규명 발표에 참석한 피해생존자가 트라우마가 올라오는 듯 고통스러워하며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진상규명 발표에 참석한 피해생존자가 트라우마가 올라오는 듯 고통스러워하며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보안사와 안기부까지 동원된 ‘국가 폭력’의 현장

형제복지원 사건은 단지 민간 사회복지법인에서 일어난 끔찍한 인권침해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지시와 함께 국군보안사령부(아래 보안사)와 국가안전기획부(아래 안기부)가 관여하고, 사건이 드러난 후에는 관계 기관들의 조직적인 은폐가 작동했다.

진실화해위는 보안사가 형제복지원을 집중 관리해온 사실을 확인했다.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어 있는 납북귀환어부 김아무개 씨(당시 29세)를 간첩 용의자로 파악하고 이를 감시하기 위해 보안사 요원을 시설에 위장 침투시켰다. 보안사는 1986년 5월 8일 이 수사공작을 ‘갈채공작’으로 명명하고 승인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보안사는 간첩 용의자 사건으로 형제복지원의 심각한 인권침해 실상을 인지했다. 그러나 보안사는 ‘형제복지원이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가 있는 곳’이라고 판단했음에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안사는 박인근 원장으로부터 서약서를 받고 지속해서 관리체계를 구축해나갔다.

안기부 주재로 관계기관이 모여 형제복지원 대책회의를 했다는 사실도 이번에 밝혀졌다. 1987년 3월 24일, 안기부 2국장 주재로 안기부 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관련 관계기관대책회의가 열렸다. 형제복지원 원생 30여 명이 집단 탈출해 형제복지원 실태를 폭로한 다음날 열린 회의였다. 이어 같은 달 26일에는 청와대 정무 2수석, 안기부 2국장, 내무부 차관, 대검 차장, 치안본부장, 총리비서실장, 부산시 부시장 등 고위급이 참석한 가운데 형제복지원 개편 방안이 논의됐다.

국가보안법, 국방경비법, 반공법 위반자를 신원특이자로 구분해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감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공안사범 15명을 사회안전법(현 보안관찰법) 등에 근거해 관리한 것이다.

또한,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사회적으로 알려져 검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부산시를 비롯한 경찰, 안기부 등 관계 기관은 이를 조직적으로 축소·은폐했다. 특히 부산시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진정·소송을 회유하고, 원장과 측근들이 다시 사회복지법인을 장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보건사회부 또한 ‘부랑인 강제수용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진실화해위는 24일 오전 10시,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진실화해위는 24일 오전 10시, 대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강혜민

- 진실화해위 “총체적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 국가는 공식 사과하라”

이날 진실화해위는 이러한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이들의 허가와 지원, 묵인하에 부랑인으로 지목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절차 없이 단속하여 장기간 자의적으로 구금했다”면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총체적인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국가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 및 피해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지원 방안 마련 △각종 시설 수용 및 운영 과정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할 것을 권고했으며, 국회에는 △지난 6월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유엔강제실종방지협약을 조속히 비준 동의할 것을, 부산시에는 △형제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담당 조직에 적절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 대표인 한종선 씨는 “우리는 잘못을 저질러서 수용된 게 아니었다. 국가는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면서 “다시는 이런 나쁜 정책을 국가가 만들지 못하게 감시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진상규명을 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우리는 아직 국가에 정확한 답을 받지 못해서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피해당사자들이 트라우마 치유를 통해 다시 사회 일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종선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모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형제복지원사건진상규명을위한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도 이날 오후 논평을 통해 진화위 권고를 환영하면서도 피해생존자에 대한 실효적인 구제와 명예회복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피해자 개개인이 지루한 국가배상소송을 하지 않고 일괄배상 및 명예회복을 받을 수 있도록 입법을 통해 진정한 화해를 모색해야 한다”면서 “아직 신청조차 하지 못한 피해생존자들을 발굴하고, 남은 신청자에 대한 조속한 진상조사 및 진실규명 결정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진실규명 신청은 올해 12월 9일까지다. 진실화해위와 17개 시·도청과 시·군·구청, 재외공관에서 우편이나 방문하여 접수하면 된다.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진실화해위원회 누리집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문의 전화 02-3393-9700).

한편, 이번 조사 사건 시기는 형제복지원의 전신인 형제육아원이 설립됐던 1960년 7월 20일부터 형제복지원 후신인 법인 욥의마을 산하 니느웨정신요양원이 폐쇄됐던 1992년 8월 20일까지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 8000여 명에 달하며, 1984년에는 최대 4355명까지 수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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