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지원법 발의 100일… 탈시설장애인 100명 제정 촉구 편지
“탈시설장애인 100명의 서한은 ‘시설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외침’”
각 정당에 전달해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에 힘 실을 것
남은희, 이상순, 이철영, 장포곤, 하태관, 정혜진, 김동림, 김희선, 정승배, 한규선, 이상우, 최영은, 추경진, 신경수, 신소희, 신지은, 김○영, 임○자, 임○운, 한○섭, 주송희, 김순옥, 박소연, 윤정표, 박영석, 박경한, 최지원, 김승환, 윤수미, 김정훈, 김동예, 김현수, 고지훈, 백남준, 최준섭, 강남이, 김선수, 김진욱, 임미경, 조영숙, 서금순, 이수나, 홍정수, 김철수, 김태완, 창기환, 김휘운, 신대길, 최창호, 황성재, 김경남, 서주영, 안득균, 김세종, 임영채, 명기완, 강진석, 고숙희, 구중서, 김경민, 김재훈, 김정, 김한민, 문감옥, 손이구, 손지훈, 안형필, 유용남, 이상곤, 이시운, 정재욱, 조현덕, 최경윤, 최병열, 최형기, 한샘, 권오승, 조연익, 김근태, 김기봉, 김진석, 김혜진, 김홍기, 방상연, 배덕민, 신정훈, 이병기, 이봄, 강동철, 황인현, 김용남, 김기정, 김남기, 한규선, 주기옥, 홍성호, 김진수, 김현수, 하상윤, 정지숙, 김복자.
탈시설장애인 100명이 탈시설지원법을 촉구하는 편지를 국회로 보냈다. 이들이 국회를 향해 편지를 쓴 것은 지난해 12월 10일 발의된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아래 탈시설지원법)’ 제정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편지는 60m 프랜카드에 새겨져 이룸센터 앞 탈시설지원법·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촉구 농성장을 지나 국회를 향해 깔렸다. 탈시설로드맵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여전히 지키지 않는 정부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날 정의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당 등은 직접 서한을 받기 위해 기자회견장을 방문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등에도 100인의 서한이 전해질 예정이다. 정민구 발바닥행동 활동가는 “100명의 서한은 글자가 아니다. 다시는 시설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절절한 외침이다”라며 “이들의 편지로 탈시설의 필요성이 알려지고, 탈시설지원법 제정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아래 발바닥행동) 등 장애인권단체는 국회가 보이는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탈시설지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국정과제 42번인 장애인탈시설… 임기 1년 남겨두고 ‘전무’
지난해 12월 10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68명의 국회의원이 공동발의로 탈시설지원법안을 발의했다. 장애인 관련 법안에 이처럼 많은 국회의원이 동참하는 일은 드물기에 탈시설장애인들은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100일이 지난 지금까지 제정 움직임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과제 42번으로 ‘장애인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약속했다. 그러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탈시설 관련 정책은 전무하다. 일선 공무원들마저 ‘탈시설이 대체 뭐냐? 설명할 수 있냐?’라는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탈시설의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정책을 만들 수도, 펼칠 수 없다는 논리다. 지난 2019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정부에 ‘장애인탈시설 로드맵’ 마련을 권고했지만, 정부 차원의 노력은 없다.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시청, 복지부를 찾아가 싸운 지 20년이다. 공무원들이 그렇게 좋아하던 법이 바뀌어야 한다”라며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시설에서 모두 나올 수 있도록 우리 힘으로 탈시설지원법을 반드시 제정하자”고 외쳐다.
- 코로나19로 수용시설 문제점 더 크게 나타나
탈시설의 중요성은 코로나19에서 더욱 강조됐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원인은 집단수용시설로 지목되고 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2021년 2월(2.25 기준)까지 거주시설 장애인의 코로나19 감염은 전체인구 감염의 4.1배에 달한다.
정기열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많은 시설들이 코호트격리를 겪었다. 방역수칙이라고 했지만 안산평화의집, 신아재활원 등 중대형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속출했다”라며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도 코로나19에서 집단수용시설에서의 ‘긴급탈시설’을 촉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단 코로나19 상황에서만 문제는 아니다. 그동안 보았던 수많은 시설문제에서 불거진 인권침해는 시설수용 자체의 비인권성을 드러낸다. 탈시설장애인 한규선 씨는 ‘사육당했다’는 말로 생활을 정의하기도 한다. 장애인거주시설뿐 아니라 모든 수용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비일비재하다.
박성진 파도손 활동가는 “정신병원은 감옥이다. 몇 년 전 정신병동에 갇혀 있다 플라스틱 통을 넘어뜨렸다는 이유로 보호실로 끌려갔다. 정신병원에서는 코끼리 주사를 놓고, 나를 묶어두었다”라며 “이처럼 폭력적으로 강압적으로 정신장애인을 병원에 수십 년씩 가둬두고 있다. 이는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전국 정신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 탈시설지원법은 인간의 평등과 존엄에 관한 법
탈시설지원법에서는 ‘탈시설’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그동안 권리를 빼앗겼던 시설 거주인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탈시설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어떤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를 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향후 10년 내에 모든 장애인거주시설을 폐쇄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탈시설지원법을 공동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은 “이미 5년 전 우리는 탈시설권리선언을 통해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모든 말과 인식, 장애인거주시설을 반대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수용시설폐쇄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라며 “탈시설은 능력이 아닌 권리다. 좋은 시설이란 있을 수 없다. 국회 앞에 깔린 현수막이 평등과 존엄이라는 우리의 역사를 바꾸는 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는 “탈시설지원법은 시민을 1등 시민, 2등 시민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민이든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된다는 신뢰를 심어줄 수 있는 법안이다”라고 말했다.
배복주 정의당 부대표는 탈시설만큼 시설폐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부대표는 “탈시설 문제는 결국 인간의 존엄과 자유,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라며 “탈시설 운동의 핵심이 시설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조건·문화·인식을 깨나가는 것이기에, 시설 자체를 폐쇄해야 한다. 탈시설지원법 나아가 시설폐쇄법으로 모두가 존엄한 세상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탈시설장애인들 “나의 동료와 같은 동네에서 살고 싶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탈시설장애인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같은 시설에 있던 사람들과 한 동네에서 살고 싶다”라며 조속한 탈시설지원법 제정을 강조했다.
탈시설장애인 이규석 씨의 어머니, 손영애 씨는 “우리 규석이는 시설에서 단체생활을 하니까 공부하고 싶어도, 어디 가고 싶어도, 소원대로 마음껏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행복해한다. 최근 일해서 번 돈으로 엄마와 이모에게 용돈도 보냈다”라며 “제가 마음 놓고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나라님과 복지부장관에게 말하고 싶다. 법으로 장애인을 지켜달라”고 강조했다.
탈시설장애인 100명의 편지의 공통점은 시설에서는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이다. 이규석 씨가 밝힌 탈시설한 소감에는 탈시설지원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탈시설하여 지원주택에 살고 있는 이규석입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는데 지금 자유로워서 행복해요. 교회도 가고 놀러 가고 일도 하고 있어요. 마트에 가서 맛있는 것도 사요. 시설에서 같이 살던 양 아저씨 (활동지원) 24시간 주세요. 사랑이 필요해요. 처음 옆집 아주머니가 이사 와서 시끄럽다고 했는데 지금은 잘 지내요. 계속 일하고 싶어요. 십일조 내고 어머니 용돈도 드리고 싶어요. 장애인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하세요. 앞에서 차가 오면 무서워요. 이 집에서 죽을 때까지 쭉 살고 싶어요. 식당의 계단 부셔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