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어느 대학의 장애인권 활동
② 접근성을 조사하며 타협해야 했던 것들

대학 안에서의 활동은 누구나 접하기 쉬운 기록으로 잘 남지 않고, 길게 지속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종종 ‘추억’으로만 남는다. 졸업을 앞둔 필자는 더 많은 이야기가 글로 남아 읽히길 바라며, 대학 안의 활동이 어떻게 바깥과 연결되거나 단절되는지, ‘온실’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대학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여전히 필요한지 기록한다. 서울 소재 한 대학, 그 안에서도 소수의 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연재가 더욱 많은 ‘다른 이야기’에 연결되길 바란다.

[ 전편 ] 

① 장애인권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계기

우리 학교의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주기적으로 대학 내의 시설을 점검하여 개선한다면, 게르니카와 장애인권위원회는 학교 주변 상권을 주기적으로 돌며 상가들의 접근성을 점검하여 목록으로 만들었다. 이는 원래 동아리 활동이나 뒤풀이 준비와 같은 활동들 때문이었다. 학생회나 동아리 등 학생자치단체에서 사람들이 함께 모일 때, 모이는 장소의 선정 기준에 접근성이 없었기 때문에 장애학생들은 이런 활동에서 자주 배제당하곤 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조사하기 시작한 게 배리어프리 맵을 만든 계기였다.

연세대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와 문화예술웹진 잔치가 협력하여 만든 신촌 음식점 배리어프리 지도. 치킨 요리·국물 요리·양식·일식·고기 요리·카페 등으로 식당 범주를 나누고, 휠체어 혼자 진입 가능·진입 시 도움 필요·엘리베이터 설치 유무·별도 출입구 유무 등으로 접근성을 세분화했다.
연세대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와 문화예술웹진 잔치가 협력하여 만든 신촌 음식점 배리어프리 지도. 치킨 요리·국물 요리·양식·일식·고기 요리·카페 등으로 식당 범주를 나누고, 휠체어 혼자 진입 가능·진입 시 도움 필요·엘리베이터 설치 유무·별도 출입구 유무 등으로 접근성을 세분화했다.

배리어프리 맵은 계속 발전했다. 내가 들어가서 활동하던 당시에는 훨씬 다양한 기준으로 공간들을 평가했다. 메뉴판에 점자가 있는지, 글씨는 큰지 작은지, 조명은 얼마나 밝은지와 같은 기준을 통해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공간의 소리가 얼마나 울리는지 등의 기준을 통해 청각장애인 접근성을 따졌다. 비건 음식을 파는지, 비건 옵션은 있는지 확인하면서 비건과 소화기질환자, 내부장애인 등의 접근성도 포함했다. 휠체어의 출입 가능 여부를 조사할 때도 기준은 단순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2~3cm 정도의 턱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으나, ‘가장 안전한 기준’만을 적용해서 공간을 조사하면 실상 갈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다. 혼자가 아니더라도 들어갈 방법이 있다면 모두 기록하려고 하자, 우리의 지도는 더 복잡해졌다.

특히 수동휠체어와 전동휠체어는 상황에 따라 꽤 다양한 접근 방식을 사용할 수 있었다. 수동휠체어는 가볍고 작아서 오히려 다양한 곳에 유연하게 들어갈 수 있고, 수동휠체어 사용자는 보통 상체를 사용하기에 직접 휠체어 앞바퀴를 들면 조금 높은 턱도 넘어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급한 경사에서는 이동하기 어렵다. 반대로 전동휠체어는 수동휠체어보다 급한 경사길에서도 이동하지만, 폭이 크고 무겁다. 우리는 여기서 혼자 들어갈 수 있는지, 누군가 도와주면 들어갈 수 있는지, 도와준다면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등의 정보를 함께 적었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는 2~3cm를 넘는 턱이 있는 장소를 모두 배제하지는 않았다. 모든 턱은 다르게 생겼다. 약간 경사지게 깎인 턱도 있고, 부드러운 턱도 있다. 그래서 같은 높이의 턱이어도 어떤 턱은 넘을 수 있고, 어떤 건 위험하다. 이렇다 보니, 높이 자체는 우리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장소를 조사하러 다닐 때 자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물론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턱을 보면 알았다. 이게 넘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는 휠체어 탄 사람이 직접 턱을 테스트했다.

여기서도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테스트를 하는 사람마다 결과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자를 들고 다니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었다. 비슷한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몸의 근육량이 달랐고, 건강 상태가 달랐고,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분이 달랐다. 몸을 조금 움직여서 균형을 잡으며 다소 높은 턱을 넘을 수 있었던, 뇌병변 장애가 있는 회원이 조사해 놓은 자료는 이후 근육병이 있는 회원의 조사에 따라 수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공간을 지도에서 아예 삭제하지는 않았다.

지도에 기록하는 정보들과는 달리, 지도 제작 과정 자체는 단순했다. 조를 나누어 학교 근처 상권을 돌아다니는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우리의 조사는 대부분 장소에 들어가지 않고 이루어졌는데, 이는 신촌이 상가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일일이 안에 들어가서 조사할 만큼의 시간도, 체력도, 인력도 없었던 우리는 주로 거리에서 가게 문과 안을 관찰하여 빠르게 기록했다. 조명 밝기, 자리 사이 거리, 의자나 밥상의 고정 여부 등은 그 정도로도 파악할 수 있었다.

게르니카 배리어프리 맵 만들면서 게르니카 친구들과. 가운데 필자. 출처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페이스북
게르니카에서 배리어프리 맵을 만들던 중 친구들과 찍은 사진. 가운데가 필자다. 출처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페이스북

그러나 조사 중인 장소의 사장님을 마주치면 상황은 다소 난감해진다. 생각해보면, 사장님 입장에서는 웬 학생들이 갑자기 식당이나 카페 근처에 와서 두리번두리번하면 당황스럽거나 불쾌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사장님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저희가 여기 앞에 학교 다니는 학생들인데요, 장애인권동아리에서 신촌 지역의 상권을 조사하고 있는데, …….’ 그런데 이렇게 말하니 문장을 끝마치기도 전에 종종 사장님의 표정이 안 좋아졌고, 뭔지는 모르겠으나 피곤하다는 듯 얼른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 상황들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나는 다른 대처 방법을 찾았다. 우리가 잠재적 손님이라는 걸 상기시키는 것. 휠체어 사용자가 함께 있을 때는 사장님이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내가 상황을 빠르게 납득시킬 수 있어야 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내가 떠올린 문장은 이것이었다.

“아, 나중에 친구랑 같이 먹으러 오려고요! 하하.”

어딘가 해맑은, 친절하면서도 싹싹한 표정과 말투를 장착하고 이런 말을 하면 열에 아홉은 밝은 웃음이 돌아왔다. 한국의 ‘청년’ 내지 ‘대학생’에게 기대되는 열정과 예의범절을 충실히 연기할수록 조사는 수월했다. 사장님들의 밝은 웃음에는 종종 ‘기특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게 어딘가 불편하면서도, 왜 이 맥락에서 유독 불편한지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거기에는 나를 ‘(장애인 친구와 지내는) 착한 학생’으로 보는 시선이 있었던 것 같다.

나에게 배리어프리 맵 제작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즐거운 경험이었고, 공간을 이해하는 다양한 틀을 체득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장애 혹은 접근성을 단지 ‘친구와 함께하는’ 것으로만 설명함으로써 탈정치화하는 과정이었고, 거기서 우리는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가 아니라 ‘착한 학생들’로 남아야 했다. 결과적으로 지도는 잘 완성되었지만, 공간을 직접 바꾸는 데까지 나아갈 수 없었고 (혹은 그렇게 믿었고) 지금의 상황을 잘 알아두자는 취지는 명백한 한계로 남았다. 대학생, 청년이라는 위치는 받아들여지기 쉬웠고, 그만큼 우리는 안주함으로써 얻는 친절함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나에게 배리어프리 맵 제작은 접근성의 아주 구체적인 기준을 체득하고, 지금의 현실을 알아가는 계기였지만, 동시에 접근성이 좋지 않은 공간도 아주 조금의 가능성이나마 존재한다면 기록하고, 사장님들에게는 ‘착한 학생’이자 ‘잠재적 손님’으로서만 발화할 수 있었던 타협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성을 둘러싼 정치와 탈정치는 대학 안의 논쟁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다음 달에 이어집니다.)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질병과 통증을 새로운 시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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