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어느 대학의 장애인권 활동
④ 지워지거나 없던 것으로 취급되는 장애인권 활동

대학 안에서의 활동은 누구나 접하기 쉬운 기록으로 잘 남지 않고, 길게 지속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종종 ‘추억’으로만 남는다. 졸업을 앞둔 필자는 더 많은 이야기가 글로 남아 읽히길 바라며, 대학 안의 활동이 어떻게 바깥과 연결되거나 단절되는지, ‘온실’이라고 여겨지기도 하는 대학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여전히 필요한지 기록한다. 서울 소재 한 대학, 그 안에서도 소수의 단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연재가 더욱 많은 ‘다른 이야기’에 연결되길 바란다.

[ 전편 ]

① 장애인권동아리에 들어가게 된 계기

② 접근성을 조사하며 타협해야 했던 것들

③ 학생사회, 접근성의 정치

대학 안의 장애인권 활동은 자주 지워지거나 초기화되었는데, 장애인권 활동을 하다가 만난 다른 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실정은 비슷했으며, 학교에 따라서는 학교 당국이나 장애학생지원센터와 직접적인 갈등 관계에 있는 곳들도 존재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활동하면서 접한 여러 대학의 다양한 사례들을 섞어서 서술할 예정이다.

장애인권 활동을 하는 자치단체가 있는 대학은 그리 많지 않다. 있더라도 하나 정도이고, 우리 학교에서도 두 개가 활동했으나 둘 중 하나가 활동을 중단한 이후로는 이곳도 하나의 단체만 활동 중이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권 활동 단위에는 장애인 의제에 대한 온갖 인터뷰와 설문조사, 협업 요청이 들어온다.

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한 사람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그런데 요청을 하는 사람 중에 다소 당혹스러운 태도로 다가오는 이들이 있었다. 갑자기 다음 날까지 인터뷰가 가능하냐고 연락하는 것도 부지기수이고, 때로는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정보조차 없이, 다짜고짜 우리가 조사한 배리어프리 맵 등의 자료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마치 우리의 인터뷰나 자료가 자신들의 권리인 것처럼, ‘좋은 일’을 하는 자신들을 돕지 않으면 우리가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는 것처럼.

하지만 인터뷰나 협업 요청에 응하거나 자료를 넘겨주어도, 그 이후 어떻게 사업이 진행됐는지 알려주는 곳은 별로 없다. 우리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가 발행된 후에 따로 연락받은 적도 물론 거의 없고, 우리가 제공한 배리어프리 맵이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 단체의 이름이 언급되긴 했을까?’ 고민하다가 미련을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장애인 접근성에 대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던 스타트업, 캠페인을 기획한다던 프로젝트 팀이 사업을 실제로 진행했는지조차 모른다.

그런데 비슷한 문제는 학교 기관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몇 년 전에 대학 내 장애인권 단체들 사이의 연대를 구성해보려는 시도가 있을 때 여러 대학의 사례를 한 자리에서 공유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온 이야기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떤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는 학생들이 기획하거나 추진한 사업들을 임의로 자신들의 기획인 것처럼 포장하여 홍보했고, 또 다른 곳에서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업을 방해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또 어떨지 몰라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최근 대학 내 문제들을 해결하는 토대로 여겨지는 인권센터에도 문제가 많다. 얼마 전, 고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통해 대학 내에 인권센터 설치가 의무화되기도 했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설치 이후 운영 과정이다. 몇 학생을 뽑아 인권 학술제를 추진하는 모 대학의 인권센터에는 접근성 매뉴얼조차 없고, 정당한 편의 제공의 부재를 인권 침해와 별개로 파악한다. 문제를 제기해도 인수인계가 안 되어 비슷한 문제가 반복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준비하던 인권 축제를 검열하려 하고,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예산 지원을 끊고 학생들과 별개로 축제를 개최하여 ‘학교 기구’의 위치를 통해 적법성 혹은 정당성을 독점하려 하기도 했다(쓰면서도 이게 차라리 거짓이길 바란다).

커다란 판넬에 수십 개의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판넬 위에는 “학내 접근성 문제, 제보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출처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페이스북
커다란 판넬에 수십 개의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판넬 위에는 “학내 접근성 문제, 제보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출처 연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페이스북

그래도 가끔은 생각한다. 우리 단체의 이름이 남지 않더라도, 사업이 잘 되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인권의 가치가 전달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경험하고 여러 단위들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스타트업이나 프로젝트 팀, 언론에서 연락이 들어오는 레퍼토리는 여전히 비슷하다.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는 장애학생들도 비슷한 연락들에 질려서 이제는 응답하지도 않는 수준이다. 학교마다 상황은 다양하지만, 대학 내의 기관들은 경로 의존성이 강하고 학생 단체들은 연속성이 부족해서 관계가 불안정한 곳이 많다.

다른 곳들은 잘 모르지만, 장애학생지원센터의 경우에는 노동조건의 문제도 지금 언급한 문제들과 관련이 깊다. 센터의 직원은 대부분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곳들도 태반이다. 학교마다 지원체계가 다른 점들도 있는데, 이렇게 자주 직원이 바뀔 수 있는 환경이다 보니 전문성을 쌓기도 어려운 실정이고, 같은 이유로 개별화된 지원이 제대로 못 이루어지기도 한다. 심지어 배정되는 예산도 적은데, 실적이 없으면 그마저도 더 줄어들기도 한단다.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을 착취하거나 방해하는 일이 정당화되지는 않지만, 근본적으로 따지려면 이는 교육부와 예산, 대학평가제도까지도 연결해서 읽어야 하는 복잡한 문제다.

학생들의 장애인권 활동을 탈취해 가거나 지우거나 초기화해버리는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활동을 이어나가야 할까? 학교 예산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너무도 중요해서 학생들이 직접 나서서 했던 일이 학교의 이름으로 바뀌고 학생들의 공헌은 모두 사라진다면, 학생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건 잘된 일이 맞는 걸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물음들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학생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이전보다 나아간 단체들도 있었다. 2017년 하반기에 우리는 어느 스타트업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위에이블(Weable)’이라는 곳이었다. 배리어프리 지도를 만드는 사업이었다는 점만 보면 기존의 작업들과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곳은 자료만을 요구하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 직접 거리로 나섰고, 단지 접근할 수 있는 식당이 아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식당을 찾고자 했다. 많은 장소를 조사해서 목록을 만들기보다 소위 ‘핫플레이스’의 ‘힙한’ 곳들에서 접근할 수 있는 곳을 발굴했고, 접근할 수 없는 곳에는 경사로를 설치하자고 제안하여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위에이블 말고도 학생들과 협업하고 학생들의 공헌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곳들이 적게나마 존재했다. 이런 곳을 보면 대표나 창립 멤버가 대학 내에서 장애인권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마 대학 시절 내내 경험한 활동의 초기화와 탈취에 지쳐서 학생들과의 적극적인 연대를 추진한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좋은 사례는 분명 더 존재할 것이다. 지금도 코로나19 참사 안에서 장애학생 교육권을 함께 외친 여러 대학의 단체들이 모여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 있고, 이들은 또 다양한 기관과 단체들과 적극적으로 연결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런 실패나 초기화를 기록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몇 년 동안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런데 대학에서 장애인권 활동을 하다 보면, 대학 바깥의 장애인권 의제들과는 활동 주제가 꽤 다르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 달에 이어집니다.)

안희제의 말 많은 경계인

관해기(증상이 일정 정도 가라앉아 통증이 거의 없는 시기)의 만성질환자. 장애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고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수업을 들으며 질병과 통증을 새로운 시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몸의 경험과 장애학, 문화인류학에 관심이 많고, 앞으로도 그것들을 공부하려 한다. 책 『난치의 상상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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