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아이다호 데이 맞아 ‘프라이드 플래그’ 전시
올해 슬로건은 ‘우리가 여기 있다’
이어진 성소수자의 죽음… “슬픔 딛고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할 것”

신촌하늘을 수놓은 프라이드 플래그. 다양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색깔의 플래그에는 “투쟁!”, “남말은 소수자가 듣는다”, “사랑이 혐오를 이길 거예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신촌하늘을 수놓은 프라이드 플래그. 다양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색깔의 플래그에는 “투쟁!”, “남말은 소수자가 듣는다”, “사랑이 혐오를 이길 거예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무지개 플래그에는 
무지개 플래그에는 ‘차별 없는 세상’, 젠더퀴어 플래그에는 ‘누구도 혐오로 죽지 않는 세상을 향해’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트젠(트랜스젠더) 혐오 철폐! 투쟁!”

“계속 살아 춤추자”

“1991년 3월 11일생 김재원”

22일 오후 1시,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 유플렉스 광장 하늘에 펄럭이던 문장들이다. 학창시절 운동회날, 운동장 하늘에 펼쳐진 만국기처럼 성소수자의 다양한 정체성이 담긴 ‘프라이드 플래그’ 수백 장이 광장의 하늘을 뒤덮었다.

프라이드 플래그 전시는 지난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아래 아이다호 데이)을 맞아 진행됐다. 아이다호 데이는 1990년,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질병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해 제정된 날이다. 매년 5월 17일 전후로 세계 각국에서는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행사가 열린다.

한국에서는 여러 시민사회 단체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을 조직해 아이다호 데이에 다양한 활동과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작년에는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로 지하철 광고를 기획했고, 올해는 여러 성소수자 시민에게 받은 문구를 활용해 프라이드 플래그 전시를 열었다.

공동행동은 프라이드 플래그 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드시 제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프라이드 플래그 밑 현수막에는 길벗체로 ‘우리가 여기 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알록달록한 프라이드 플래그 밑 현수막에는 길벗체로 ‘우리가 여기 있다!’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 어디에나 있는 성소수자 시민, 평등한 권리 주어져야

올해 공동행동 슬로건은 ‘우리가 여기 있다’이다. 오소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올해 초, 여러 성소수자를 떠나보낸 슬픈 경험이 지나고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슬로건이 뭘까 고민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때도 사용됐던 슬로건이다. 당연하고 평범하지만 강력한 말이다. 또한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메시지다”라며 “수많은 플래그처럼 수많은 성소수자가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공동행동으로 ‘우리가 여기 있다’는 외침이 사회 곳곳에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슬로건처럼 성소수자는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시민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성소수자 이주민, 성소수자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 등 다양한 성소수자가 일상 속에 있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건 단순히 봐달라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엄연한 구성원이니 평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태환 상임활동가가 수어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태환 상임활동가가 수어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성소수자 장애인인 태환 한국농인LGBT설립준비위원회 상임활동가는 이중적인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태환 상임활동가는 “나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성소수자, 청각장애인 등 세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성애 중심의 농인사회에서는 성소수자 혐오를 겪고, 수어를 모르는 청인사회에서는 농인이라는 이유로 소통할 수 없다. 어떤 곳에서도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돼 버리고 말았다”며 “더는 이런 이중적인 차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성토했다.

공동행동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투쟁할 예정이다. 오는 25일부터 ‘10만행동’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국민동의청원 운동을 진행한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서 10만 명이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나중이 아닌 현재를 살아간다’, ‘야생의 논바이너리 등장!’, ‘목사로 일하는 젠더퀴어’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그 밑에서 한 활동가가 ‘성소수자 여기 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나중이 아닌 현재를 살아간다’, ‘야생의 논바이너리 등장!’, ‘목사로 일하는 젠더퀴어’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그 밑에서 한 활동가가 ‘성소수자 여기 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예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는 “성소수자는 일상에서 차별을 자주 겪는다. 하지만 이 차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모른 채 살아간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무엇이 차별인지, 어디에 말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법이다”라며 “25일부터 10만 국민동의청원 운동을 시작한다. 모두의 목소리를 모아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염원을 국회로 보내는 데 힘을 보태 주시기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은 신촌 유플렉스 광장에서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성소수자 당사자가 릴레이로 발언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한 프라이드 플래그는 22일 오후 8시까지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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