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HIV,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요구하다

[편집자 주]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복지법상의 등록 장애인이 아님에도, 국립재활원에서 입원 거부를 당한 HIV감염인의 차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차별로 판단했다. 그러나 “모든 HIV감염인 및 AIDS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단서는 한계로 남았다. 

인권위의 판단은 HIV감염과 AIDS확진 그 자체를 장애로 보고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적 흐름에 비춰봤을 때, 여전히 보수적이다. HIV감염인은 감염을 이유로 사회적 격리와 분리,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차별은 왜 ‘사회적 장애’로 인정될 수 없는가? 비마이너는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과 함께 HIV감염인이 의료를 비롯해 생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하는 차별의 맥락을 드러내는 연속기고를 연재한다. 

18년 전의 일이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19살의 청년이 찾아왔다. 당시 나는 간사로서 감염인들의 어려움을 듣고,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HIV 진단을 받고, 큰 충격에 빠졌던 내담자를 상담실에서 처음 만났다. HIV감염 이후 삶의 전부를 놓아버렸던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거의 성공할 뻔도 했다. 성공할 뻔한 그때, 그는 심한 외상을 입었다. 다량의 수면제 복용으로 무의식 상태에서도 살려고 발버둥을 쳤던 모양이다. 낙상으로 머리와 눈을 심하게 다쳤고 눈의 시력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가까스로 ‘산 자’가 되어 상담실을 다시 찾아왔던 그때, 그는 “선생님, 저 장애인이 되고 싶어요”라는 말을 꺼냈고, 그 말은 매우 낯설었다.

“선생님, 장애인이 된다면 더는 HIV에 감염된 나를 자책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살엔 실패했지만요.”

그때 그가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충분히 이해하고서 한 말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나 또한 그 말을 어떠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지 당시엔 알 수 없었지만, 활동을 하는 내내 그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꽤 오랫동안 나는 나의 어린 내담자를 볼 수 없었다.

나는 활동을 하며 많은 감염인 당사자의 신체적·심리적·사회적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CMV(거대세포바이러스) 기회감염 때문에 시력을 상실하고, 만성우울증, 신장 투석, 심장 손상, 거동이 불편해진 감염인 등 직접적인 신체적 손상을 경험하는 감염인분들을 만난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차별과 편견으로 인한 다양한 장벽을 경험하고, 일상생활 전반에서 상당한 제약을 경험하고 있는 감염인, 자살을 시도하거나 스스로 생을 포기한 감염인을 다양한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

자연스레 나는 장애와 HIV의 교차 지점에 서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HIV는 의학적 질병을 넘어, 사회적·문화적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했으며, HIV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과 상담 역시 의학적 손상의 관점으로만 접근하기에는 부족함이 컸다. 그렇게 나의 ‘HIV감염인, 장애인 되기 운동’은 시작되고 있었다.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HIV감염인 진료 거부에 대해 차별 진정을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지영 대표가 “HIV감염인도 장애 인정 필요하다”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지영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HIV감염인 진료 거부에 대해 차별 진정을 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지영 대표가 “HIV감염인도 장애 인정 필요하다”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지영

- HIV감염 이유로 병원 진료 거부, 왜 이것은 ‘장애’가 아니란 말인가?

2008년 ‘에이즈 감염인의 법정장애인 지정에 관한 타당성 연구1)’를 바탕으로 시민사회단체의 일부 목소리와 서울시의 ‘HIV 감염인 장애인 지정 건의’가 있었지만, 더 이상 진척되지는 못했다. 그 이후 2014년, 한 요양병원에서의 HIV감염인 인권침해 사건이 ‘장애인차법금지법상 장애인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되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유일하게 HIV감염인을 받아주던 해당 요양병원과 계약을 해지하고선, 꽃동네 입소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HIV감염인을 또다시 사회에서 격리해 보이지 않는 곳에 보내려는 것이었다. 이는 장애인에 가해졌던 시설 격리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요양병원에 화가 났고, 정부에 분노했고, 이것 말고 별다른 것을 할 수 없는 우리에게 자괴감과 연민이 들었다.

2017년에는 국립재활원에서 ‘HIV감염인의 면역력을 걱정하며 입원 치료를 거부’한 사건이 발생했다. 거부하는 방법도, 언어도 진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더 괘씸했다. 병원 측은 명확하게 HIV감염인을 거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019년 5월, 인권위는 처음으로 HIV감염인에 대한 입원 거부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인 차별로 인정’했다. 하지만 찜찜했다. 왜냐하면 이 당사자는 장애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편마비와 시력 상실의 상태였고, 인권위는 HIV감염 사실보다는 편마비와 시력 상실에 더 무게를 두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피해 당사자는 HIV 때문에 차별과 진료 거부를 당했음에도 HIV감염 자체를 장애로 판단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올해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인권위에 다시 진정서를 제출했다. HIV감염인에 대한 진료 거부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여러 차례의 인권위 권고에도 개선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우리는 명백한 장애인 차별로 인식하고 대응하고자 했다. HIV감염을 이유로 입원과 수술을 거부하는 것이 사회의 장벽이고 이로 인해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장애를 경험한다는 것을 정확히 해두고 싶었다.

이번 사건의 경위는 이러하다. 2020년 9월, 손가락이 절단된 HIV감염인이 수십 곳의 병원에서 수술을 거부당했다. 당시 병원들은 ‘코로나라서 안 된다’, ‘전문 의료진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병원들이다. 국립병원, 권역별 외상센터를 비롯해 대학병원, 접합수술 전문병원까지 총 20여 곳에 이르렀다. 그는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13시간가량 헤매고서야 겨우 수술해줄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상황에서 내 주변인도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했다. 당연히 곧장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접합수술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비감염인을 본적이 없다. 그런 일은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를 일이다.

어느 병원이든 손님 유치에 열을 올리고 ‘수술 성공 사례가 몇 건이다’. ‘복지부 평가 최우수 병원이다’ 이런 현수막을 흔히 보는 상황에서 병원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절단된 내 손가락을 부여잡고 자존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내가 HIV감염인이라 그런 게 아니야. 병원에 의료진이 없고, 야간이고 주말이어서 그런 거야’라고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HIV감염인 진료 거부에 대해 차별 진정을 했다. 한 감염인 당사자가 “HIV감염인 아프고 늙으면 갈 곳 없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지영 대표. 사진 김지영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을 하루 앞둔 4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HIV감염인 진료 거부에 대해 차별 진정을 했다. 한 감염인 당사자가 “HIV감염인 아프고 늙으면 갈 곳 없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지영 대표. 사진 김지영

- 사회에서 수용받지 못한 질병, ‘권리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

HIV당사자는 생명이 담보되는 병원에서조차 거부당한 몸으로 사회에서 ‘권리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자신이 겪는 질병이나 손상을 사회적으로 수용 받지 못할 때, 환자들은 더 큰 고통 속에 방치된다. 『은유로서의 질병』 작가 수잔 손택은 ‘환자들이 가장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라 말한 바 있다. HIV감염인의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해주는 말이다.

HIV감염인은 누구보다도 우리 사회에서 극심한 차별을 겪고, 그로 인해 장애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2019년 12월, 레드리본인권연대와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대구경북지회,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HIV감염인 102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했다. ‘HIV감염인의 사회적·신체적 장애 경험과 법제도 마련을 위한 인식조사’라는 주제로 수행된 이번 조사는 감염인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제법 큰 규모의 첫 장애 인식조사였다.

응답자의 95.1%(97명)가 ‘HIV감염인이 장애인차별금지와 권리 구제 정책에 포함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의외의 결과였다. HIV낙인에 덧붙여 장애에 대한 이중 낙인으로 부정적인 답변이 클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5.1%나 되는 응답자가 필요성을 긍정한 것은 2014년, 2017년 사건을 통해 HIV 당사자들의 인식이 변화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HIV감염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 수준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는 99%(101명)가 차별이 있다고 응답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HIV감염인들은 신체적 고통도 매우 컸지만, 사회적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다수 HIV감염인은 현재 차별을 경험하지 않아도 언제든 자신이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HIV와 장애의 교차지점에서 계속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HIV감염인이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아직도 낯설고 어색하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HIV와 장애의 교차지점은 과연 어디쯤일까. 질병과 손상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HIV당사자들의 삶은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어려운 수많은 질문이 계속 따라다닌다.

며칠 전 37살이 된 나의 내담자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19살 청년이었던 그는 나를 보더니 ‘이제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 있었던 일상적인 일들을 무심히 늘어놓던 그는 자랑스레 장애인복지카드를 보여줬다.

나는 나의 내담자가 던져준 이 낯설고 어색한 질문에 대한 길을 앞으로도 차분히 따라 가보려 한다. 그 길 속에서 만난 HIV당사자들의 삶에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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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도 서울특별시/대한에이즈예방협회서울특별시회 연구 용역사업으로 수행되었으며, 인하대학교(이훈재 연구책임자)에서 연구를 주관했다.

필자 소개

김지영.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표.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은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대구경북지회, 대구경북HIV/AIDS감염인자조모임 해밀과 함께 레드리본인권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HIV의료연대기금 레드케어, 사회적주택 꿈담채, 사회적기업 빅핸즈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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