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HIV,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요구하다

[편집자 주]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복지법상의 등록 장애인이 아님에도, 국립재활원에서 입원 거부를 당한 HIV감염인의 차별을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차별로 판단했다. 그러나 “모든 HIV감염인 및 AIDS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단서는 한계로 남았다. 

인권위의 판단은 HIV감염과 AIDS확진 그 자체를 장애로 보고 차별을 금지하는 세계적 흐름에 비춰봤을 때, 여전히 보수적이다. HIV감염인은 감염을 이유로 사회적 격리와 분리, 차별을 경험한다. 이러한 차별은 왜 ‘사회적 장애’로 인정될 수 없는가? 비마이너는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과 함께 HIV감염인이 의료를 비롯해 생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하는 차별의 맥락을 드러내는 연속기고를 연재한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목숨

우리나라에 HIV감염인이 보고되기 시작한 지 4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감염경로가 밝혀졌고 예방법이 분명해졌다. 치료도 발전을 거듭해 약 복용만 꾸준히 한다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고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도 0%까지 떨어뜨릴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아기를 출산할 수도 있게 되었다. 질병관리청도 의사들도 더 이상 HIV/AIDS가 ‘죽음의 병’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혈압이나 당뇨처럼 HIV/AIDS가 만성질환이 되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의학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감염인이 건강하게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험하다. 적절하게 치료받고 충분히 지지받아야 할 환자가 차별과 비난, 냉대 속에 살고 있다. 병원진료는 거부되기 일쑤이고, 직장에서 감염사실이 알려지면 퇴사당하기도 한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비난은 더욱 고통스럽기에 어디에 하소연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 사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가난하다. 대여섯 명 중 한 명이 기초생활수급권으로 살아간다.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 고립되기 십상이다. 감염인 커뮤니티나 온라인 카페를 찾아온 이들은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한다. 자신에 대한 낙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감염인은 약을 먹을 이유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감염사실을 뒤늦게 아는 경우도 있지만, 알고도 항바이러스 약을 먹지 않거나 정기적으로 병원 다니기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아픈 건 자신이다. 치료시기를 놓친 사람들은 면역력이 떨어져 여러 질환의 위험에 시달리고 이로 인해 추가적인 장애를 갖거나 생명이 위태롭게 되기도 한다.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 때론 우리 스스로도 그렇다.

2017년 11월 6일, 국립재활원이 HIV감염인 재활치료를 거부한 것에 대해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진정을 했다. 사진 손문수
2017년 11월 6일, 국립재활원이 HIV감염인 재활치료를 거부한 것에 대해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진정을 했다. 사진 손문수

최초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 인정, 그러나…

우리는 모순적이게도 동료들에게 말한다. “우리 아프지 말자” 아파도 우리가 갈 곳이 없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말의 의미를 다들 너무 잘 안다. 아파도 마음 놓고 병원에 갈 수 없고, 아파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에이즈 환자가 잘못되어도 병원 밖에서 문제 제기할 사람이 없으니까 환자에게 함부로 한다”는 HIV감염인 의료차별 증언대회서 나온 동료의 증언은 감염인에게 지금의 의료서비스가 얼마나 차별적인지 보여주었다. 가족, 지인, 사회와 단절된 감염인들이 겪는 정신적․육체적 어려움은 병원에서부터, 병원에서조차 거부되어 왔다. 그렇다보니 다른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변하는 것이 없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2017년 11월, HIV감염인의 입원을 거부한 국립재활원을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하였다. 피해자는 HIV감염으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되었고, 시력소실과 편마비가 있었다. 피해자는 재활치료를 받고자 국립재활원에 입원하려고 하였는데, 국립재활원은 입원을 거부하였다. HIV감염인인 피해자는 역격리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시설이 없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인권위는 2019년 5월, 피진정인 국립재활원장에게, 에이즈 환자의 재활치료 입원을 거부한 행위는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차별행위에 해당하므로 피해자를 입원 조치할 것과 재발방지를 위해 HIV감염인에 대한 인권침해 및 차별 예방교육을 직원들과 함께 수강할 것을 권고하였다. 국립재활원의 주장과 달리 피해자의 상태가 의학적으로 역격리가 필요한 상태가 아니고, 국립재활원의 에이즈 치료를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 또한 피해자가 정기적으로 감염내과에 외래로 방문하고 처방받은 에이즈 약제를 복용하면 되므로 이유 없다고 보았다.

우리가 이 사건을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진정한 또 다른 이유는 HIV감염인이 체감하는 차별의 맥락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HIV감염인들은 “HIV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차별로 인해 죽는다”고 말한다. 에이즈약제가 없던 때에는 HIV감염 후 약 10년이 경과할 즈음 사망하였으나 현재는 의학과 약제의 발달로 HIV감염인의 건강상태는 HIV감염 후 경과한 시간, 에이즈약제 복용 시작 시기 등에 따라 다양하다. 그런데 차별적 대우와 사회생활의 제약은 면역체계 손상정도 및 건강상태의 차이보다는 HIV감염 그 자체로 인해 발생한다. HIV감염인에 대한 차별은 대부분 전파가능성에 대한 과도한 우려와 ‘위험한 사람’이라는 편견에 따라 ‘격리’ 혹은 ‘분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에이즈약제를 복용하거나 손상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가족과 단절, 만연한 진료거부, 직장에서의 해고, 심지어 부모가 HIV감염인이란 이유로 자녀가 공부방에서 쫓겨나는 등 사회생활의 제약이 따른다. HIV감염인은 개인의 몸이 지닌 차이로 인해 적대적인 사회적 태도와 문화, 환경의 상호작용을 경험하는 대표적인 ‘장애인’인 것이다.

2017년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 날 30주년’을 맞아 인권단체들이 ‘HIV/AIDS 인권주간 행동’을 선포하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람들이 “혐오를 넘어 사람을 보라”고 적힌 대형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손문수
2017년 12월 1일 ‘세계에이즈의 날 30주년’을 맞아 인권단체들이 ‘HIV/AIDS 인권주간 행동’을 선포하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람들이 “혐오를 넘어 사람을 보라”고 적힌 대형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손문수

이 사례는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권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적용되는 ‘장애(인)’의 범위를 더욱 확장한 것이었다. 이는 HIV감염인의 인권실태와 차별현실을 알리는 일이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 인정을 통하여 실질적인 차별금지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해당 권고에서도 인권위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장애인복지법’과는 달리 ‘신체적・정신적 손상 또는 기능상실이 장기간에 걸쳐 개인의 일상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초래하는 상태에 있는 자’를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있어 이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 등록 여부를 불문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적용을 받는 장애로 해석하여야 한다”면서도, “모든 HIV감염인 및 AIDS환자를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모호한 판단을 여전히 유지했다.

그러던 중 2021년 4월 19일, 공장에서 일하던 HIV감염인이 겪은 의료영역에서의 차별을 인권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차별로 진정하였다. 그는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 손가락이 절단되어 20여 개의 병원을 찾았지만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하고 사고 후 13시간이 지나서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수술받을 수 있었다. 피해자는 현재 손가락을 굽힐 수 없어 일자리마저 잃은 상태이다. 우리는 그가 겪은 경험이 2019년보다 적극적인 인권위의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장애로 인정되어야만 그는 물론 앞으로 더 보편적으로 HIV감염인의 차별의 맥락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비단 HIV감염인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장애를 경험하며, 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의 차별이 폭넓게 금지되고 구제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필자 소개 _ 손문수. 한국HIV/AIDS감염인연합회 KN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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