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홈리스추모 주간 시작… 오는 22일 홈리스추모제 
주거기반 방역 대책에 홈리스는 없어… 형벌화 조치만 반복
열악한 주거환경 집단감염 위험성 높여… 주거대책 마련돼야
장사법 개정, 공영장례지원 체계 구축으로 존엄한 죽음 보장해야

15일 서울역 광장 계단에는 지난 2020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사망한 홈리스 395명의 명패가 놓였다. 사진 허현덕
15일 서울역 광장 계단에는 지난 2020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사망한 홈리스 395명의 명패가 놓였다. 사진 허현덕

“누군가에는 소중하게 불렸을 그 이름을 기억하며, 또 각자의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을 기억을 추모하며, 장미꽃 한 송이를 가슴에 올려드립니다.”

15일 서울역 광장 계단에는 지난 2020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사망한 홈리스 395명의 명패가 놓였다. 시설, 쪽방, 고시원 등 열악한 거처에서 삶을 마감한 홈리스는 지난해(295명)보다 100명이나 늘었다. 빨간 카펫 위에는 사망한 홈리스의 이름, 사망한 곳, 사망 일시가 적힌 명패와 장미꽃 한 송이가 놓였다. 홈리스의 죽음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홈리스 기억의 계단’이다. 일부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명패에 새겨진 이름을 하나씩 읽으며 이들을 추모했다. 

일부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명패에 새겨진 이름을 하나씩 읽으며 이들을 추모했다. 사진 허현덕
일부 시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명패에 새겨진 이름을 하나씩 읽으며 이들을 추모했다. 사진 허현덕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기획단)은 홈리스 기억의 계단 앞에서 ‘2021년 홈리스 추모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홈리스추모제는 21년째 계속 열리고 있다. 그러나 홈리스의 삶은 그때와 비교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 주거기반 방역 대책에 홈리스는 없어… 형벌화 조치만 반복

코로나19는 홈리스들의 주거환경의 열악함을 파고들었다. 안정적 주거가 기반인 정부의 방역 대책에 홈리스는 없다. 이렇다 보니 홈리스는 2년째 코로나의 위험에 맨몸으로 노출돼 있다. 최근 서울역 광장에 거주하는 홈리스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았지만, 경찰이 그를 둘러싸고 이동하지 못하게 했을 뿐 치료지원은 하지 않았다.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김경희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기초의료보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서울시 내년도 예산안을 봐도 홈리스에 대한 지원에는 변화가 없다”라며 “홈리스는 관련법상 지정병원만 다닐 수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지정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의료서비스 이용이 불가능해졌다. 지정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홈리스는 10명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방역을 위한 지원은커녕, 홈리스가 쉬거나 잘 수 있는 공간에서 쫓겨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구청에서 서울역 홈리스의 짐을 강제로 수거해 폐기처분한 일이 있었다. 

김 간사는 “이런 과정에서 법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홈리스에 대한 형벌화 조치는 사회적 신분 등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을 무시하는 일이다”라며 “거리에서 사는 것 말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을, 단순히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조치하고 빈곤을 범죄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 열악한 주거환경 집단감염 위험성 높여… 주거대책 마련돼야

거리에서 사는 홈리스뿐 아니라 쪽방 주민도 코로나 방역에서 한참 밀려나 있다. 쪽방은 공동 화장실, 공동 부엌을 사용해야 한다. 또한 거리두기가 실현되지 않게 다닥다닥 붙어 있어 집단감염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홈리스 기억의 계단 앞에서 ‘2021년 홈리스 추모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홈리스 기억의 계단 앞에서 ‘2021년 홈리스 추모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는 안전한 위생설비가 존재하는 집에서 거리를 두면서 일상의 안전을 지키라고만 한다. 그러나 집이 아닌 공간, 집답지 않은 공간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민이나 대책은 전혀 없다”라며 “빈곤의 책임뿐 아니라 방역 책임도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홈리스의 존엄과 안전을 위해서는 주거대책이 시급하다. 지난 12월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공공주택사업 계획이 발표됐다. 그러나 공공주택지구 지정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동자동 쪽방 건물주들의 집단 반발로 시행 주체인 국토교통부가 미온적인 태도로 지정을 미루고 있는 탓이다.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허현덕

김정호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 이사장은 “쪽방 건물주들은 주민들에게 왜 주민행세를 하느냐고 하면서 민간개발을 주장하고 있다. 민간개발 절대 반대한다”라며 “(쪽방 주민도) 인간으로서 살 권리가, 살아갈 이유가 있다. 홈리스도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고, 마음껏 하늘이라도 볼 수 있는 주거지가 필요하다. 공공주택에서 살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 장사법 개정, 공영장례지원 체계 구축으로 존엄한 죽음 보장해야

홈리스가 존엄한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사법)’ 개정과 공영장례지원 체계 구축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현행 장사법은 혈연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족 외에 친족(며느리, 조카), 친구, 종교단체 등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내뜻대로 장례’, ‘가족대신 장례’를 지침으로 두고 있음에도 법적 구속력이 없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황성철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홈리스야학 학생들이 임종을 맞이해도 나는 학생의 장례를 지내줄 수 없다. 현행 장사법상의 연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라며 “다행히 내뜻대로 장례와 가족대신 장례가 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담당공무원에 따라 달리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혼 관계, 유대관계가 있음에도 지자체 공무원의 협조 없이는 무연고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고인의 생전 자기결정권이 보장되지 않고, 유대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의 추모와 애도가 법에 의해 막혀 있다”라며 장사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어 “무연고 사망은 빈곤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사람뿐 아니라 연고자가 있더라도 경제적인 상황으로 시신인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밀려 있는 병원비용, 시신안치비용, 장례비용을 지불할 수 없어서다”라며 “17개 시·도에서 공영장례조례가 있는 곳은 9곳에 불과하고, 조례 내용도 차이가 크다. 전국적으로 무연고자와 저소득층까지 아우르는 보편화된 공영장례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추모제기획단은 지난 2001년부터 매년 동짓날에 맞춰, 홈리스추모제를 열었다. 올해는 12월 15일부터 22일까지 추모주간으로 정하고, 마지막 날인 22일 오후 6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추모제를 연다.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홈리스 기억의 계단 앞에서 ‘2021년 홈리스 추모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은 홈리스 기억의 계단 앞에서 ‘2021년 홈리스 추모주간’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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