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노숙인 지정병원 이용 못 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
임시주거지원 예산 증액했지만… ‘장애인 홈리스’는 지원 불가
“확진된 홈리스, 서울역에 방치되기도… 홈리스 예산 확대해야”
“서울역에 있는 왕언니는 돌파감염이 되었는데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잔뜩 웅크리고 주무십니다. 다시서기(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서 제일 가깝게 계시는 김 씨는 양성인 채 재택격리도 자가격리도 아닌 상태로 지내고 계십니다. 여성 홈리스를 위한 보호 공간은 코로나19 격리장소로 내주게 되어, 여성 홈리스들은 여벌 옷처럼 취급당했습니다.” -로즈마리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학생회장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는 가운데 서울시가 홈리스 의료지원 예산을 올리기는커녕 10% 대폭 삭감했다. 복지공백을 방치한 서울시의 행정에 홈리스 활동가들이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예산 책정을 촉구하고 있다.
7일, 2021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아래 추모제기획단)은 오전 10시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2022년도 서울시 홈리스 예산안 분석 내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추모제기획단은 복지공백·감염위협에 있는 홈리스의 현실을 반영한 예산 책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코로나19 시기, 홈리스가 병원에 가는 방법
코로나19 상황에 홈리스가 병원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시 도봉구에서 생활하는 홈리스 ㄱ 씨가 몸이 아프다고 가정해보자. ㄱ 씨가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려면 먼저 코로나19 PCR 검사부터 진행해야 한다. 하루 이틀 뒤 음성 확인서를 받고 난 뒤에는 도봉구에서 서대문구까지 이동해 관할 브릿지 노숙인 종합지원센터로 방문해야 한다. 이후 종합지원센터로부터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은 뒤, 서울에 있는 9개의 노숙인 진료시설 중 정해진 병원에 방문해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교통비는 일절 지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도, 수많은 홈리스들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노숙인 지정 병원이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전환되어 홈리스에 대한 진료, 입원 및 수술 절차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기준, 서울 시내 병원급 이상 노숙인 진료시설 운영 현황에 따르면, 9개의 노숙인진료시설 중 7곳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다. 남은 두 곳은 정신질환 특화병원이거나, 일부 과목만 진료 중이어서 실제로 홈리스가 이용 가능할 확률은 극히 드물다. 이로 인해 홈리스가 몸이 아파 지정 병원에 방문해도 진료는커녕 접수도 못 하고 쫓겨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최규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권위원장은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와 함께 거리홈리스 조사를 하던 중 직접 서울역 광장에서 동상으로 다리가 썩어가는 홈리스를 발견했다. 최 인권위원장은 “빨리 치료를 받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응급차를 불러 입원시키자고 했더니, 경찰도 119 구급대원도 노숙인분들을 입원시킬 곳이 없다고 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결국 입원시킬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 ‘노숙인 등 의료지원’ 지침에 따르면 ‘천재지변, 재난, 기타 불가피한 상황 등’에 해당할 경우 민간의료기관같이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병원 외의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20년 기준, 이 지침에 근거해 민간의료기관을 이용한 노숙인은 단 10명뿐이다. 최 인권위원장은 “최근 몸이 아픈 홈리스 중 민간병원에 갔더니 ‘연대보증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서 돌아서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현실에선 진료를 받지 못하게 하고선, 진료 실적이 적다는 이유로 책상머리에 앉아 예산을 깎겠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 서울시, 내년도 홈리스 의료지원 예산 10% 삭감
이처럼 홈리스에 대한 의료공백이 심각한 가운데, 서울시는 내년도 예산을 올리기는커녕 의료지원 예산을 10% 삭감했다. 서울시의 ‘노숙인 보호 및 자활지원’ 예산안을 살펴보면 ‘노숙인 등 의료지원’ 예산은 2021년 대비 10%(약 5억 4천만 원)가 감액됐다. 이 중 주요한 감액요인은 ‘노숙인 진료비(약 4억 8천만 원)’다.
서울시는 노숙인 진료비가 감액된 이유로 ‘최근 4개년 평균 집행액’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 말부터 노숙인진료시설 지정병원 대다수는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이로 인해 홈리스들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한 점을 고려한다면 이번 서울시의 예산안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즉, 서울시는 실제 의료지원 수요가 없었던 것이 아닌, 의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간과한 셈이다.
인권위도 지난 3월, 홈리스가 적정한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홈리스가 지정병원 이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의료시설 접근성을 높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의 예산안은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당사자가 의료지원을 받고 싶어도 못 받는 현실을 반영했어야 했다. 홈리스의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사업 예산을 마련하는 대신, 과거 운영실적만으로 감액한 건 부당한 결정이다”라고 비판했다.
- 반복되는 코로나19 검사에 홈리스 급식 이용 크게 줄어
코로나로 거리홈리스 보호를 위한 운영 지원 실적이 낮아졌으나, 이를 높이기 위한 예산기획은 부재하다는 점도 확인됐다. 2021년 서울시 ‘거리노숙인 보호 예산 주요 추진실적’을 작년과 비교해보면 시설입소, 취침, 무료급식, 위기대응 접수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지원 실적이 낮아졌다.
추모제기획단이 분석한 이유에 따르면 △1월 서울역 노숙인시설발 집단감염에 따른 지원기관 운영 공백 △코로나19 음성확인제(7일 이내의 PCR 음성확인서 요구) 조기 시행 △거리홈리스의 낮은 백신접종률 등이 작용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특히 반복되는 코로나19 검사로 인해, 홈리스의 급식 이용이 대폭 줄었다. 서울역 실내급식장(서울시립 따스한채움터)의 1식 평균 이용인원은 지난 2019년에는 303.3명, 2020년에는 302.8명이었다. 그러나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1식 평균 이용인원은 192명으로 크게 낮아졌다(빵·음료수와 같은 대체급식 이용인원 제외). 또한 음성확인제 시행 전 1월 1일부터 29일까지 1식 평균 이용인원은 326.4명이었지만, 1월 30일부터 5월 31일까지 평균 이용인원은 152.3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안형진 상임활동가는 “이는 무엇보다 올해 1월 30일부터 시행된 음성확인제의 여파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복지부는 코로나19 지침으로 이용시설 내 공동식사를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서울시의 ‘노숙인 등’ 대상 급식 서비스는 모두 단체급식 방식의 집합 서비스다. 서비스 분산을 위한 사업계획과 예산을 별도로 편성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거리상담반 예산 확대? 내실 있는 운영 계획 필요
서울시는 지난 4월, ‘서초구 방배동 모자사건’ 후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며, 발굴·지원을 벗어나 ‘거리노숙인 상담원’을 통해 그 외의 지역을 돌며 산재한 노숙인을 찾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내년도 예산안에 자치구 거리상담반을 18개 자치구로 확대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약 1억 8천만 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이에 대해 안형진 상임활동가는 “자치구의 역할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판단되나, 내실 있게 운영되기 위한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4월 서울시 한 자치구의 ‘거리노숙인 상담반’ 채용공고에 따르면, 계약기간은 고작 6개월에 불과하다. 게다가 주요 업무에는 임시주거지원으로의 연계가 아닌 노숙인복지시설로의 입소를 유도하도록 안내되어 있어 시설중심의 홈리스 정책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 임시주거지원 예산 증액했지만… 장애인 홈리스는 ‘지원 불가’
내년도 서울시 ‘노숙인 주거안정 지원’ 예산은 올해 대비 16%(약 5억 1천만 원) 증가했다. 물론 기존 ‘임시주거지원’ 항목에 있던 응급쪽방 사업이 ‘거리노숙인 보호 사업’으로 이관 편성되면서 예산이 증가한 점도 있지만, 월 임대료 기준액이 올해 27만 원에서 내년에는 32만 7천 원으로 증가하고, 지원주택 지원호수가 애초 계획과 수요 대비 여전히 부족하나 258호로 증가한 점도 크게 작용했다.
안형진 상임활동가는 “임시주거지원 월 임대료 기준액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주거급여액에 맞춰 증액된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꼽으면서도 “국가인권위와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코로나19 종식 전까지 임시주거지원사업의 확대를 권고했지만, 실제 지원대상 인원은 900명으로 여전히 동일하다. 2018년 이후부터 지원 대상인원과 보장기간에 변화가 없다”고 꼬집었다.
현재 서울시 임시주거지원의 장소는 쪽방과 고시원 등 비적정 주거로 제한되어 있다. 이로 인해 휠체어 등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임시주거지원을 받기로 결정된 뒤 접근이 불가능해 지원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대신, 임시주거지원사업의 지원불가 대상에 ‘거동 불편자’ 및 ‘의료지원이 우선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대상자’ 등을 포함했다. 홈리스 중에서도 더욱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원천 배제한 셈이다.
따라서 추모제기획단은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에 따르면, 코로나19로 발생한 홈리스에 대한 복지공백은 내년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추모제기획단은 “국가인권위와 서울시 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이뤄지지 않을 예정”이라고 우려하며 “노숙인 시설을 중심으로 집단감염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시설입소를 홈리스 지원책으로 보고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 감염병 위협과 복지공백의 위협 모두를 감소시킬 수 있도록 주거, 의료, 급식 등 기본적인 생존권 예산의 확대 편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