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 “해당 조항, 장애인 행복추구권 침해로 위헌적” 판결했지만
복지부, 90평→15평으로 ‘살짝’ 줄인 개정안 그대로 추진
‘기준 폐지’ 요구하는 장애계 목소리 무시한 채 소상공인 이익만 대변
- ‘15평 미만 가게엔 장애인 출입금지’ 담은 시행령, 복지부 4월 추진 예정
최근 가게 규모를 기준으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에 제한을 둔 장애인등편의법 조항은 위헌이라는 법원 1심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가 규모를 ‘살짝’ 줄인 시행령 개정안을 밀어붙일 것으로 확인됐다. 비마이너 취재에 따르면, 복지부는 올해 4월 개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 300제곱미터(약 90평) 미만의 공중이용시설에는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공중이용시설에는 식당, 편의점, 제과점, 이·미용실 등 일상적인 생활공간이 포함된다. 휠체어 이용자가 접근할 수 있는 경사로 대신 계단만 있어도 어떠한 법적 제지를 받지 않는다.
이에 대해 장애계가 지속해서 문제제기를 하자 지난해 6월, 복지부는 장애인편의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바닥면적 기준을 현행 300제곱미터(약 90평) 이상에서 50제곱미터(약 15평) 이상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바닥면적이 15평이 되지 않는 공중이용시설은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장애계에 따르면, 대부분 편의점은 소규모여서 개정안 적용 대상이 아니다. 또한 개정안은 공포 후 시행일 기준으로 신축·개축·증축되는 건물에만 해당하여 장애인 입장에선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는 “과거 300제곱미터라는 면적 기준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던 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에 50제곱미터 기준이 적용될 뿐”이라면서 바닥면적을 기준으로 한 편의시설 설치 기준 자체를 없애라고 요구해왔다.
이러한 목소리를 모아 100여 개의 장애인단체와 공익법률단체는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에 우편으로 복지부에 반대의견서를 제출하고,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통해서도 1000여 건의 입법반대의견서를 넣었다. 또한 1802명의 시민이 반대의견에 서명하기도 했다.
- 복지부 “소상공인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된다”며 장애인 접근권은 뒷전
그러나 복지부는 소상공인의 이익만을 대변하며 줄곧 장애계의 목소리는 듣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장애계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면적 기준 삭제를 담은 장애인등편의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순임 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보면, 관계 기관 의견으로 보건복지부, 중소벤처기업부, 한국장애인개발원, 대한의사협회, 소상공인연합회만 있을 뿐 장애인단체 의견은 누락되어 있다. 검토보고서는 “점차 대상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복지부의 시행령 개정안을 옹호하고 최혜영 의원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
검토보고서에서 복지부는 “용도와 면적에 관계없이 모든 건축물에 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은 영세 자영업자 등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이 예상되는 새로운 규제인 만큼 이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등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또한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신규 개설되는 소규모 의료기관은 해당 시설을 갖추지 못한 건물에는 임차할 수 없게 되는 역차별적 요소가 존재하므로 개정안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이 담긴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 제3조는 최근 법원에서 위법·위헌적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지난 10일, 법원은 1심 판결에서 해당 조항이 “장애인의 행복추구권과 자유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며, 헌법상의 평등원칙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장애계가 소를 제기한 지 3년 10개월 만의 결과였다.
- 장애계 “면적 기준으로 장애인 접근권 제한하는 나라, 한국이 유일”
이에 장애계는 15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재판부의 판결을 근거로 복지부 시행령 개정안 입법 추진에 대한 즉각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에 면담을 요구했다.
이번 소송의 대리인으로 함께한 이주언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올해 8월,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심의를 받아야 한다. 현재처럼 면적 기준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면서 “바닥면적 기준으로 장애인 접근권을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이러한 기준 자체가 자유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법원의 결정을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소상공인의 부담을 근거로 시행령 개정안 철회를 거부하는 복지부에 대해 “현 기준은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기준이 아닌 소상공인의 고객을 빼앗는 행위”라면서 “정부는 소상공인이 장애인도 고객으로 유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필요하면 경제적·기술적으로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김영희 장추련 대표 또한 “이 추운 날 청와대 앞에 온 이유는 우리의 요구 때문이다. 우리는 물 한 모금 마실 물병을 하나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갈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이 문턱 앞에서 돌아서는 법이 있는 세상이 아닌, 그런 법이 ‘없는’ 세상을 위해 여기에 왔다”면서 “우리의 요구에 대해 ‘그것은 복지부 일이지 청와대 일이 아니’라고 방기하는 청와대의 태도 또한 용납할 수 없다”며 청와대에 면담을 요구했다.
- 복지부, ‘기준 폐지’ 요구하는 장애계 목소리 무시한 채 소상공인 이익만 대변
하지만 법원 판결과 장애계의 목소리에도 복지부는 시행령 개정안을 아랑곳없이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용수 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 서기관은 15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규제심사 통과 후 현재 국무조정실 본심사를 받고 있다. 이번 주 금요일 심사가 끝난 후엔 법제처 심사가 2주가량 진행되며, 이후 정부 차관회의·국무회의 의결만 된다면 시행 가능하다. 4월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정 서기관은 기준 폐기를 요구하는 장애계의 목소리에 대해 “이제 막바지에 왔는데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거냐”면서 “50제곱미터로 낮춰도 효과는 크다. 웬만한 건물이 의무설치 대상으로 들어온다. 개정안을 우선 시행한 후에 삭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준 삭제를 위한 구체적 계획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명확히 답변하지 못했다. 다만 장애계와 소상공인 양측을 모두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정 서기관은 “이는 새롭게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니만큼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규제심사에만 6개월이 걸렸다. 장애인만 사는 세상 아니지 않느냐. 다른 측면(소상공인)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답했다.
이러한 복지부 입장에 대해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많은 나라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등 국제적 기준으로 권리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여전히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다”면서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을 모두 무시한 시행령 강행은 복지부가 여전히 장애인을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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