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 20명 이상 탈시설 지원
장애인거주시설 두 곳 중 한 곳 폐지키로
지도점검 결과 인권침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
장애계 “늦었지만 환영… 천막농성 정리는 탈시설 투쟁의 시작”

대구시가 청암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1개를 폐지하고 거주장애인의 탈시설을 올해 20명 이상 지원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는 대구시 동구청 앞에서 63일간(23일 기준) 이어오던 천막농성을 종료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23일, 동구청 앞에서 시설 폐쇄 및 탈시설-자립생활 보장을 요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대구장차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운동단체는 23일 오전 11시, 대구시 동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 발표를 환영한다. 앞으로도 탈시설 투쟁을 이어나갈 것”이라 밝혔다.

동구청 앞 기자회견 현장. 천막농성은 23일 기준 63일째였다. 사진 대구장차연
동구청 앞 기자회견 현장. 천막농성은 23일 기준 63일째였다. 사진 대구장차연

- 올해 20명 이상 탈시설 지원, 장애인거주시설 한 곳 폐지

대구시는 지난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청암재단 민관합동 지도점검 결과와 탈시설 지원계획, 거주시설 폐지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민관합동 지도점검 결과, 장애계 문제제기는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 6일부터 10일까지 닷새간 동구청, 대구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합동으로 청암재단 법인과 산하 거주시설인 청구재활원(장애인 118명 거주, 종사자 68명), 천혜요양원(장애인 26명 거주, 종사자 22명)에 대한 특별지도점검을 실시했다.

법인 후원금 용도 외 사용 의혹은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사용용도를 정하지 않은 비지정 후원금 중 업무추진비, 운영비 등 사무비 사용기준을 벗어난 사례가 확인됐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여입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권침해의 경우 여성장애인 외출제한, 이용인 폭행과 치료의무 소홀 등도 사실로 드러났다. 시설위생, 안전설비 등 전반적인 환경관리 또한 미흡했다. 대구시는 특히 주말과 공휴일에 종사자 1인이 거주장애인 10명 이상을 돌보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근무형태를 개선해 거주장애인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구시는 2차 탈시설 추진계획을 통해 2024년까지 200명의 탈시설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암재단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 지원은 이 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더불어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시범사업’ 공모에 참여해, 올해 안에 20명 이상 탈시설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구체적인 탈시설 지원은 ‘대구형 융복합돌봄체계’를 통해 진행된다. 이에 따라 2인 1실 자립생활주택 제공, 활동지원서비스 최대 24시간 제공, 낮 생활 돌봄센터 운영, 맞춤형 의료서비스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대구시는 “대구형 융복합돌봄체계를 통해 2015년부터 진행한 장애인 탈시설 추진계획을 적극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시는 이 같은 계획으로 청암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인거주시설 1개를 폐지할 방침이다. 거주장애인 탈시설을 먼저 지원한 후 청구재활원과 천혜요양원 두 곳 중 한 곳을 폐지하기로 했다.

종사자 고용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체도 구성한다. 대구시는 동구청, 법인, 시설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종사자들의 고용에 불이익이 없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구청 앞. 하얀 천막농성장이 보인다. 사진 대구장차연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구청 앞. 하얀 천막농성장이 보인다. 사진 대구장차연

- 10년 넘은 장기투쟁… “천막농성 정리는 대구 탈시설 투쟁의 시작”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대구시 발표에 대해 “늦었지만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청암재단 장애인거주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최초로 알려진 건 2005년이다. 이후 10년 넘게 거주장애인에 대한 상해, 강제추행, 시설의 책임방기로 인한 사망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2016년에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7년부터 장애인 29명이 청암재단 산하 시설에서 사망했다. 청암재단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장애인 13명을 정신의료기관에 강제입원시키기도 했다.

2015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암재단에 '민주 이사진'이 새로 꾸려졌지만 2018년에 또다시 거주인 사망사건이 일어났다. 2019년에도 폭행이 일어났고 지난해에는 3건의 인권침해 사건이 드러났다.

기자회견에서 김병관 다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우리가 원하는 100%의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도 관에서 시설을 폐지하고 거주장애인 20명 이상 자립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 점에서 우리 투쟁은 훌륭했다고 자평한다”면서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시설 안에 있는 장애인 모두가 지역사회에 나와 자립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자. 이를 위해 더욱 힘내서 같이 투쟁하자”고 말했다.

천막농성 투쟁은 순탄하지 않았다. 청암재단 사태에 책임이 있는 동구청은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기는커녕 농성장 전기를 끊는 등 강경대응했다. 전은애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는 “사건을 해결해야 할 기관장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인권의식을 볼 수 있다. 동구청처럼 시종일관 비인간적인 대처를 한 곳은 처음 본다”고 성토했다.

대구 활동가들은 지난달 14일, 처음으로 대구지하철에서 연착투쟁을 하며 선전전을 진행하기도 했다. 노금호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는 “많은 시민이 지하철 선전전 때 욕하고 비난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투쟁한 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여전히 박탈하는 한국사회 때문”이라며 “사회복지 전문가라는 사람들,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 장애인 위한다며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지금 장애인거주시설이 존재해야 하나? 비용의 논리로 장애인을 수용시설에 가두는 잘못된 복지체계를 함께 바꿔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박명애 대구장차연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구장차연
박명애 대구장차연 공동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대구장차연

박명애 대구장차연 공동대표는 천막농성 투쟁을 종료하는 게 탈시설 투쟁의 시작이라고 했다.

“저는 53세 때 삭발하고 23일간 단식하며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을 했습니다. 투쟁 끝에 활동지원서비스가 생겨 너무 좋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안 계셔도 나 혼자 이 세상에 살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됐다는 걸 생각하면 그때 23일 밥 굶은 거, 정말 잘했다 생각합니다.

(천막농성 투쟁을 정리하는) 오늘이 시작입니다. 시설 안에 있는 장애인들을 빨리 데리고 나옵시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눈 반짝반짝 할 때 데리고 나와서 재미난 세상을 보게 하도록 빨리 데리고 나옵시다.

우리는 동구청 앞에 많이 올 것입니다. 동구에 장애인거주시설이 많이 있거든요. (우리가 천막농성하는 동안) 배기철 동구청장은 동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돌아가라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동구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우리가 투쟁해서 알려줍시다.”

대구장차연은 앞으로 지방선거 대응 등 대구시 동구에서 탈시설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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