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이사진 꾸려지고 10년 넘게 투쟁했지만 인권침해는 현재진행형
노조는 탈시설 폄하하며 장애인 활동가 고소까지
장애계, 결의대회 열고 대구시·동구에 사태 해결 촉구

대구시청 앞 결의대회 현장. ‘끝나지 않는 청암재단 청구재활원, 천혜요양원 인권침해! 대구시와 동구청은 엄중히 처분하라! 모든 장애인에게 집과 안정된 지원을! 대구시청과 동구청은 탈시설을 보장하라!’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펼쳐져 있다.
대구시청 앞 결의대회 현장. ‘끝나지 않는 청암재단 청구재활원, 천혜요양원 인권침해! 대구시와 동구청은 엄중히 처분하라! 모든 장애인에게 집과 안정된 지원을! 대구시청과 동구청은 탈시설을 보장하라!’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펼쳐져 있다.

과거 법인 차원에서 탈시설을 선언했던 청암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탈시설은커녕 인권침해 사건만 잇따르고 있다. 올해 드러난 사건만 벌써 세 건이다.

장애계의 지속된 책임 촉구에도 대구시와 동구청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장애계가 결의대회를 열고 다시 한 번 강하게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탈시설장애인당(當)과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대구장차연) 활동가 80여 명은 오후 2시 대구시청 앞에서 청암재단 산하 시설의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후 이들은 1시간 반가량 행진하여 동구청에도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번 결의대회는 다음 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활동을 시작한 탈시설장애인당의 전국 선거유세 일정 중 하나로 치러졌다. 탈시설장애인당 대선 경선후보인 박명애 후보(대구장차연 대표), 이규식 후보(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 배영준 후보(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는 대구시와 동구가 장애인의 기본권인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활동가들이 ‘모든 장애인에게 안전한 집과 안정된 지원을!’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활동가들 뒤로 ‘대구광역시청’이라 적힌 현판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모든 장애인에게 안전한 집과 안정된 지원을!’이라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활동가들 뒤로 ‘대구광역시청’이라 적힌 현판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 대구시·동구 방관하는 사이 올해 ‘또’ 거주장애인 폭행 발생

청암재단은 1952년에 설립된 사회복지법인이다. 산하에 지적장애인거주시설 청구재활원(장애인 118명 거주, 종사자 68명),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천혜요양원(장애인 26명 거주, 종사자 22명)을 운영하고 있다.

청암재단 비리와 장애인 학대는 2005년, KBS 탐사보도 프로그램 ‘추적60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장애인 강제노역, 폭행 등 인권침해와 공금횡령, 친인척 운영 등의 비리가 종사자의 내부고발로 폭로됐다.

이후에도 거주장애인에 대한 상해, 강제추행, 시설의 책임방기로 인한 사망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2016년에 발표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7년부터 장애인 29명이 청암재단 산하 시설에서 사망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인권침해 건수는 12건에 이른다. 또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장애인 13명을 정신의료기관에 강제입원시키기도 했다.

활동가들이 결의대회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결의대회에서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에 2015년, 청암재단에 ‘민주 이사진’이 새로 꾸려졌다. 그해 4월 법인, 노조 등은 집단수용시설의 근본적 문제에 공감하며 청암재단 공공화와 법인 차원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선언했다.

하지만 2018년 또다시 거주인 사망 사건이 일어났고, 법인과 노조는 ‘시설 구조 그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재차 통감하며 자발적으로 거주시설 폐쇄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시설기능전환을 위해 장애인과 종사자의 전환 대책을 대구시에 요청했으나, 대구시로부터 ‘수용불가’라는 답변을 받았다. 민간법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시설이 유지되는 한 인권침해 문제는 반복됐다. 2019년 거주인 폭행 사건에 이어 올해에만 세 건의 인권침해 사건이 드러났다. 그 사이 시설폐쇄로 인한 종사자 고용승계 갈등은 심화되고, 올해 7월에는 노조비대위가 탈시설 왜곡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관리감독의 권한이 있는 대구시와 동구청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거나 방관해왔다. 다음 달 중 대구시와 동구청이 민관합동으로 청암재단 산하 시설을 전수조사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어떤 민간단체가 참여하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조민제 사무국장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조민제 사무국장이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 10년 넘게 투쟁에도 대구시·동구는 수수방관… 장애계 규탄

전근배 대구장차연 정책국장은 청암재단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이 분노스럽다고 했다. 전 정책국장은 “탈시설 선언을 한 법인 산하 거주시설에서조차 장애인권유린이 반복된다. 지난 십여 년을 한 명이라도 더 탈시설시키기 위해 투쟁했다. 또한 썩어빠진 청암재단의 운영실태를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시, 동구, 정부 모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근본적 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청암재단 이사이기도 한 조민제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도 강하게 분노했다. 조 사무국장은 “처음엔 희망이 있었다. 종사자도 탈시설에 협력하고, 탈시설 당사자도 지역사회에서 잘 살고,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곳으로 기능전환도 이뤄내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 사무국장은 “그러나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종사자가 시설폐지 선언을 부정하며 탈시설을 폄하했다.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박명애 대표와 노금호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사람센터) 소장은 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 대구시와 동구는 십수 년 인권유린과 탈시설 반대에 어떤 조치를 취했나.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박명애 후보는 결의대회에서 발언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진 하민지
박명애 후보는 결의대회에서 발언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진 하민지

박명애 후보는 청암재단 산하 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내 고소당한 걸로 감옥에 가도 좋습니다. 시설에 사는 모든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올 수만 있다면요. 재가장애인으로 47년을 살았습니다. ‘밖을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좋은 거 보고 겪고 누리면 안 된다’고 나에게 주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 주문은 47살에 끝났습니다. 야학에 다니면서 밖에 돌아다니게 됐습니다. 언제나 오늘이 제일 꿈 같은 날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게 맞나 싶고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나만 좋으면 되겠습니까? 같이 살아야 한단 말입니다. 장애인은 왜 시설에 갇혀서 차별받고 폭행당하다 죽고,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죽어야 한단 말입니까.

나 탈시설 대통령 후보 박명애입니다. 내가 ‘진짜’ 대통령 후보를 만나러 갈 것입니다. 시설 끝장내는 세상 만들어 달라고 얘기하면서 시설사회와 맞짱 뜰 것입니다.”

동구청으로 행진하는 활동가들. 탈시설장애인당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동구청으로 행진하는 활동가들. 탈시설장애인당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탈시설장애인당’이 한 글자씩 적힌 커다란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활동가들이 ‘탈시설장애인당’이 한 글자씩 적힌 커다란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탈시설장애인당과 대구장차연 활동가 80여 명은 오후 3시경 대구시청 앞 결의대회를 마친 후 동구청 앞까지 행진했다. 오후 4시, 동구청 앞 오거리에서는 30분간 도로를 점거해 선거유세를 진행하며 청암재단의 장애인권유린 문제를 알렸다. 교통에 혼잡이 생기자 운전자들은 연신 경음기(클랙슨)를 울려대며 분노를 표현했다. 몇 시민은 “뭐 하는 거야 씨발새끼들아”, “병신들, 귀신 붙을 놈들”이라며 욕설과 혐오표현을 퍼붓기도 했다.

동구청 앞 정리집회 현장. 탈시설장애인당 대선 경선후보들이 구청 정문 앞에 있다. 사진 하민지
동구청 앞 정리집회 현장. 탈시설장애인당 대선 경선후보들이 구청 정문 앞에 있다. 사진 하민지
노금호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노금호 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오후 4시 30분, 동구청 앞에 도착한 활동가들은 정리집회를 열었다. 청암재단 민주 이사로서 대구시와 정부를 상대로 시설 종사자의 고용승계 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 중인 노금호 사람센터 소장은 “지역사회에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장애인이 수용시설에 가둬지고 버려지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시설을 중증장애인이 보호받는 공간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고자 청암재단 이사로 합류했다”고 말했다.

노 소장은 “이런 시설문제를 만든 악당은 동구, 대구시, 보건복지부다. 이들이 장애인을 시설로 내몰았다. 이들에게 장애인이 살아있는 시민임을, 존중받아 마땅한 권리가 있는 국민임을 분명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투쟁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리집회 후 활동가들은 동구청 정문 앞에 ‘대구시와 동구청은 엄중히 처분하라’라고 적힌 피켓 수십 장을 붙였다. 사진 하민지
정리집회 후 활동가들은 동구청 정문 앞에 ‘대구시와 동구청은 엄중히 처분하라’라고 적힌 피켓 수십 장을 붙였다. 사진 하민지
피켓 수십 장이 붙은 동구청 정문. ‘새로운 도약, 멋진 동구’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탈시설장애인당 옷을 입은 활동가가 서 있다. 사진 하민지
피켓 수십 장이 붙은 동구청 정문. ‘새로운 도약, 멋진 동구’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탈시설장애인당 옷을 입은 활동가가 서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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