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서울드래곤시티호텔 잇는 구름다리 신설 공사
홈리스 텐트촌 4개동 퇴거 위기
용산구 도시계획과 “일주일 기간 드릴 테니 텐트 옮겨 달라”
텐트촌 주민 “그건 주거지원 아니다” 항의
용산구 사회복지과, 지침 잘 모른 채 “주소지 있어야 된다”만 반복

아래쪽 파란색 지붕의 다리는 기존 공중보행교다. 전면에 보이는 큰 건물이 서울드래곤시티호텔. 공중보행교를 따라 이동하면 호텔 내부로 바로 들어간다. 사진 하민지
용산역 외벽에 운영사 ‘아이파크몰’ 이름이 적혀 있다. 신설 공중보행교 사업시행자 또한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몰이다. 용산역을 잇는 기존 공중보행교가 보인다. 그 아래 숲에 텐트촌이 있다. 숲 바깥에 높게 쳐진 울타리에 ‘공중보행교 신설공사에 따른 텐트촌 주민 퇴거위협, 용산구청이 직접 해결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용산역 운영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이 용산역에서 서울드래곤시티호텔까지 잇는 공중보행교, 일명 ‘구름다리’를 새로 짓느라 홈리스가 머무는 텐트 4개동이 퇴거 위기에 놓였다. 시공사는 당초 3개동으로 통보했으나 “여유 공간 확보 차원”에서 퇴거 대상 텐트를 1개동 늘렸다.

홈리스가 퇴거될 위기에 놓였는데도 용산구는 별다른 주거지원을 안 하고 있다. 이미 마련된 지침에 따르면 텐트촌 홈리스는 정부 정책에 따른 주거지원 대상이다. 그러나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지침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노숙인 시설, 쪽방, 고시원 등 비주택에 3개월 거주하셔야 지원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도시계획과는 텐트를 옮기라고만 할 뿐이었다.

이 같은 이야기는 15일 오후 2시, 용산역 인근 홈리스 텐트촌에서 진행됐다. 용산구 도시계획과와 사회복지과 직원이 텐트촌에 방문해 주민과 면담했다.

사회복지과는 연신 “주소지가 있어야 주거지원이 가능하다”며 시설 및 쪽방·고시원 입주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텐트촌 주민이 “사회복지과가 주거지원 지침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항의하며 관련 자료를 보여주기까지 했으나 사회복지과는 “타협은 없다”고만 반복했다. 주민 중 한 사람은 화를 내며 “그 얘기만 할 거면 여기 앉아있을 이유 없다”며 면담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퇴거 대상인 텐트 1동. 빨래를 너는 건조대, 식기도구 등 주거에 필요한 것들이 마련돼 있다. 사진 하민지

- 용산구, 지침 무시한 채 “임대주택 지원 어렵고 텐트 옮겨라”

용산역 3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직진한 뒤 청파로 고가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계단이 하나 나온다. 계단 아래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숲이 하나 있다. 그곳이 용산역 홈리스 텐트촌이다.

홈리스는 이곳에서 텐트, 비닐, 천막, 박스 등으로 주거공간을 구성해 살고 있다. 이 같은 텐트는 20여 동, 주민은 작은 마을을 형성해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오랜만에 옷 갈아 입으셨네” 인사하며 플라스틱 의자 10여 개를 갖다 놓고 용산구 공무원과의 면담을 준비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은 용산구 공무원이 아닌 시공사 ‘일주종합건설’ 관계자였다. 주민이 이미 12일 기자회견에서 “시공사 말고 용산구와 대화하겠다. 용산구가 해결하라”라고 요청했음에도 시공사 관계자 2명이 현장에 와 있었다. 그들은 주민을 향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나한테 다 하시고. 내가 맨날 내려 오잖아요”라며 웃으며 인사했다. 인사를 웃음으로 받는 주민은 없었다.

10분 뒤, 용산구 공무원 5명과 시행사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몰 직원 1명, 총 6명이 도착했다. 사회복지과 직원 중 1명은 플라스틱 의자 위를 손으로 탁탁 털며 먼지를 점검했다. 6명 중 누구도 의자에 앉지 않았다. 이들이 텐트촌 주민을 내려다 보고, 주민은 이들을 올려다 보는 상황에서 면담은 시작됐다.

당초 용산구에서 공사구간에 해당하는 텐트로 지목한 건 3개동이었으나 이날 면담에서 4개동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공사 관계자는 용산구 도시계획과 직원을 향해 “여유공간 확보 차원에서 텐트 4개동을 이전 대상으로 하려 한다”고 말했다.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철거 계획은 없으나 텐트 이전 협조를 부탁드리러 왔다”고 말했다. 주민이 “텐트 이사가 말이 되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하늘색 옷을 입은 주민 하순철 씨의 등이 보인다. 오른쪽에 흰색 체크남방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이 주민 ㄱ 씨다. 용산구 사회복지과 직원들과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몰 관계자들은 서 있다. 사진 하민지
하늘색 옷을 입은 주민 하순철 씨의 등이 보인다. 오른쪽에 흰색 체크남방을 입고 앉아 있는 사람이 주민 ㄱ 씨다. 용산구 사회복지과 직원들과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몰 관계자들은 서 있다. 사진 하민지

용산구 도시계획과: 보행교(구름다리) 설치하는 것 때문에 공사구간에 저촉되는 분들만 안쪽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구청에선 철거계획은 전혀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공사구간에 해당되는 분들만 텐트 이전에 협조 해주십사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주민 ㄱ 씨: 안쪽은 포화상태라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용산구 도시계획과: 그건 개별적으로 현장소장님(시공사 일주종합건설 관계자)과 소통해서…

시공사 일주종합건설: 야드(텐트를 이전할 공간)는 내가 만들어 볼게요. 불필요한 쓰레기 치우면 공간 나올 것 같아요.

용산구 도시계획과: 네. 구청에서 최대한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일주일 정도 기간을 드리는 것과 텐트 이전하실 때 저희가 사람을 보내서 도와드릴 수 있고…

주민 하순철 씨: 그 계획을 왜 우리한테 직접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왜 이제 와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시공사 일주종합건설: 똑같은 말을 왜 계속 하세요?

주민 ㄱ 씨: 아이파크(시행사 HDC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몰)랑 공사소장님(시공사 일주종합건설 관계자)하고는 상관이 없고요, 이 분들이랑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구청(용산구) 도시계획과, 사회복지과와 얘기하고 싶습니다. 텐트 하나 사 줄테니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해라’라는 게 말이 됩니까? 국토교통부훈령에 주거지원 지침이 다 나와 있는데, 지침대로 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국토부훈령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 제3조. 입주대상자의 자격이 나열돼 있다.
국토부훈령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 제3조. 입주대상자의 자격이 나열돼 있다.

주민 ㄱ 씨가 이야기한 지침은 국토교통부훈령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이다. 이 지침 3조 ‘입주대상자’에 따르면 쪽방, 고시원, 여인숙, 비닐하우스, 노숙인시설, 컨테이너, 움막, PC방, 만화방 등 집이라 볼 수 없는 곳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지침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텐트는 비닐하우스나 움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노숙인시설, 쪽방, 고시원에 입주해야만 한다며 “일정한 주소지가 있어야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텐트는 ‘3개월 이상 실거주’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PC방이나 만화방에 전입신고를 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지침에 ‘텐트’가 명시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지침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주민 ㄱ 씨가 지침을 언급하며 거세게 항의하자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신청한다고 다 되는 거 아니다”, “복지제도와 연관 지으며 항의하는 것은 얘기하기 싫다는 거다”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용산구 사회복지과 직원(가운데)과 시공사 일주종합건설 관계자(오른쪽). 사진 하민지
용산구 사회복지과 직원(가운데)과 시공사 일주종합건설 관계자(오른쪽). 사진 하민지

주민 ㄱ 씨: 여기에 쪽방, 고시원 안 살아 본 사람 있는 줄 아세요? 최소한 용산구에 있는 고시원은 한 번씩 다 살아 봤어요. 거기 사람이 살 만한 데 못 돼요. 석고보드 하나로 벽 세워놔서 소음이 다 들려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여기 계신 공무원분들, 고시원에 한 달만 살아보세요.

용산구 도시계획과: 임대주택 신청은 조건이 있어요.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주민 ㄱ 씨: 네, 복지제도 정말 문제 많아요.

용산구 도시계획과: 이거(텐트촌 홈리스 퇴거 문제)하고 복지제도하고 연관 짓지 마시고요. 저희는 현실 가능하고 협의 가능한 걸 얘기하러 왔어요.

주민 ㄱ 씨: 현실 가능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용산구 도시계획과: 복지제도 바꿔달라 얘기하는 건 저희랑 얘기하기 싫다는 거예요.

주민들은 지침대로만 시행해 주거지원을 신청할 수 있게 하라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버젓이 있는 지침을 ‘비현실적인 해결방안’이라는 듯 이야기했다. 용산구 입장에서는 주민이 텐트에서 텐트로 이사 가는 것이 공사를 시행하기까지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사회복지과 또한 계속 안 된다고만 해서 활동가, 주민과 설전을 벌였다.

용산구 사회복지과: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아래 다시서기)에서 계속 안내했을 거예요. 임시주거지원 사업 통해서 주소복원 하시고, 노숙인시설이나 쪽방, 고시원 입주 신청하시라고 얘기 드렸잖아요. 임대주택은 그냥 신청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시서기 도움 받으시고 고시원 같은 비주택에 3개월 사셔야 돼요.

주민 ㄱ 씨: 여기(텐트촌)가 비주택이잖아요.

용산구 사회복지과: 그런데 (3개월 살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요.

주민 ㄴ 씨: 여기 다시서기 이용 안 해 본 사람 없어요. 당장 오늘이라도 갈 수 있어요. 지금 대책 논의하러 오셔서 그런 말씀만 하시면 안 돼요. 우리가 주거지원대상이란 걸 아는데 안 하시는 것뿐이잖아요. 퇴거 위기에 놓였는데 다른 지원을 하셔야죠.

용산구 사회복지과: 다른 지원은 없어요. 다시서기 통해서 지원하는 게 저희가 하는 일이에요. 동 주민센터 가셔서 주소복원을 먼저 하시고요, 비주택에 3개월 사셔야 해요. 저희가 LH와 국토부에 전화해서 다 확인했어요. 주소지 없으면 임대주택 신청 못 하십니다. 텐트에서는 3개월 살았다는 거 확인이 안 되잖아요. 타협은 없어요. 유도리(융통성) 있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퇴거 대상인 텐트들. 사진 하민지
퇴거 대상인 텐트들. 사진 하민지

- 국토부, LH 다 된다고 하는데 용산구만 “안 된다”

그러나 용산구 사회복지과 담당자의 말은 사실과 다르다. 국토교통부훈령 제1361호 ‘임대주택 입주 신청서’에 따르면 주소이력이 기재된 주민등록등본이나 거주사실확인서 중 하나를 선택해서 제출하라고 적혀 있다.

등본과 거주사실확인서는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곳에서 살았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다. 쪽방이나 고시원 등 전입신고가 가능한 곳은 등본과 함께 임대차계약서, 월세를 지불한 영수증 등을 제출하면 된다.

비닐하우스나 움막 등 전입신고가 불가능한 곳에 살았을 때 제출하는 게 ‘거주사실확인서’다. 공적 기록으로 남아있진 않지만 이곳에 쭉 살았다는 것을 제 3자에게 확인받아 제출하는 서류다. 즉, 전입신고를 할 수 없는 곳에 산 사람을 위해 만든 규정이다. 따라서 주소지가 확인된 곳에서 반드시 3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용산구 사회복지과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국토부훈령 1361호 별지1 ‘임대주택 입주 신청서’ 구비서류 안내사항.
국토부훈령 1361호 별지1 ‘임대주택 입주 신청서’ 구비서류 안내사항.

국토부훈령 지침에 ‘텐트’가 적혀 있지 않은 게 문제인 걸까. 용산구 관할인 LH 서울중부권 지사 확인 결과, 그렇지 않았다. “원터치 텐트(빠르게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텐트)가 아니라 비닐하우스처럼 한 곳에서 오래 거주한 거라면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주민센터에서 텐트촌으로 조사를 나가 실거주 여부를 확인한다. 이게 확인되면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주민센터에서 먼저 상담받으시면 된다”며 국토부훈령 지침과 같은 말을 했다.

실거주 확인은 정말 불가능할까. 텐트촌 주민에 따르면 이들은 여기서 산 지 5년~40년으로 다양하다.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이들의 ‘3개월 이상 실거주’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의 말은 다르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텐트촌은 이미 서울시와 용산구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2018년, 서울시 자활지원과가 용산구청장, 용산소방서장,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에게 보낸 공문을 보면 ‘용산역 노숙인 텐트촌 화재예방을 위해 정기순찰 등 예방조치를 요청하니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 있다. 따로 첨부된 문서에는 2018년 10월 기준의 텐트촌 배치도까지 있다. 텐트 위치와 거주자명, 순번 등이 적혀 있다. 이번에 퇴거 대상인 하순철 씨의 이름도 있다.

결론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이들에게 임대주택을 지원하기 위한 ‘적극적 행정’을 선보인다면 3개월 이상 실거주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서울시가 만들고 용산구에 공문 보낸 텐트촌 배치도. 순번과 이름, 텐트 위치가 상세히 적혀 있다. 우측 하단에 퇴거 대상인 하순철 씨의 이름이 있다. 
2018년, 서울시가 용산구에 만들어서 보낸 텐트촌 배치도. 순번과 이름, 텐트 위치가 상세히 적혀 있다. 우측 하단에 퇴거 대상인 하순철 씨의 이름이 있다. 

모든 유관기관이 주소지가 없어도 실거주가 확인되면 임대주택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오직 용산구만 안 된다고 하는 상황이다. 신설 공중보행교 건설을 용산구가 승인했고 이로 인해 홈리스가 밀려나면서 그 지역의 상업구역이 더욱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홈리스 주거지원에 대한 용산구의 책임은 매우 크다.

김선미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공동대표는 18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은 구에서 승인을 해야만 LH가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그런데 보통 구에서 많이 걸러진다. 주무관 선에서 주거취약계층의 주거권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국토부가 좀더 포괄적으로 지침을 변경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많은 권한이 구에 있으므로 과장, 구청장 등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존 공중보행교에서 찍은 사진. 용산역 아래 텐트촌이 보인다. 왼쪽에는 청파로 고가도로가 있다. 사진 하민지
기존 공중보행교에서 찍은 사진. 용산역 아래 텐트촌이 보인다. 왼쪽에는 청파로 고가도로가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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