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국밥 사 먹으세요’ 5만 원 쥐여주고 텐트 철거 강행
용산구, 텐트촌 홈리스들 주거지원 요구에도 강제철거 방치
도리어 ‘왜 자꾸 우리한테 따지냐’며 책임 회피까지

아래쪽 파란색 지붕의 다리는 기존 공중보행교다. 이는 곧 철거된다. 이후 직선으로 뻗은 새로운 공중보행교가 건설될 예정이다. 전면에 보이는 큰 건물이 서울드래곤시티호텔. 공중보행교를 따라 이동하면 호텔 내부로 바로 들어간다. 사진 하민지
아래쪽 파란색 지붕의 다리는 기존 공중보행교다. 이는 곧 철거된다. 이후 직선으로 뻗은 새로운 공중보행교가 건설될 예정이다. 전면에 보이는 큰 건물이 서울드래곤시티호텔. 공중보행교를 따라 이동하면 호텔 내부로 바로 들어간다. 사진 하민지

용산역과 서울드래곤시티호텔을 잇는 신설 공중보행교 공사 때문에 홈리스 텐트촌 4개 동 주민들이 강제퇴거 통보를 받았다. 주민과 홈리스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는 용산구 사회복지과에 ‘규정대로 주거지원을 하라’고 요구했지만 용산구는 규정을 무시한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일 오전, 포클레인이 텐트 1개 동을 철거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에 따르면 시공사 관계자가 3일 저녁, 텐트촌에 들러 퇴거 대상인 주민에게 ‘국밥 사 먹으시라’며 5만 원을 쥐여주고 이를 ‘텐트철거에 대한 협의’라 여기며 철거를 강행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텐트촌 주민과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6일 오전 10시, 용산구청 앞에서 용산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구는 대책 없는 공사강행 중단하고 이주대책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퇴거대상인 텐트 1동. 빨래를 너는 건조대, 식기도구 등 주거에 필요한 것들이 마련돼 있다. 사진 하민지
퇴거대상인 텐트 1동. 빨래를 너는 건조대, 식기도구 등 주거에 필요한 것들이 마련돼 있다. 사진 하민지
4일 오전, 포클레인이 텐트 1개 동을 강제철거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4일 오전, 포클레인이 텐트 1개 동을 강제철거했다. 사진 빈곤사회연대
퇴거대상 텐트 1개동이 철거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진 홈리스행동
퇴거대상 텐트 1개동이 철거되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사진 홈리스행동

- 5만 원에 ‘퉁쳐진’ 홈리스 주거권

철거는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4일 오전 11시경, 갑자기 들어온 포클레인 1대가 텐트를 부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다급하게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에게 전화했다. 활동가들이 현장으로 달려와 항의하자 철거는 텐트 1개 동만 부수고 중단됐다.

어떤 협의도, 이주대책도 없이 현금 5만 원으로 주거권이 퉁쳐졌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철거가 있기 전날 시공사(일주종합건설) 측 관계자가 퇴거대상인 주민 두 분에게 국밥 사 먹으라면서 5만 원씩 줬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에 철거할 거란 얘기는 없었다. 그래 놓고 주민이 5만 원 받은 걸 마치 (철거에) 협의했다는 듯 여기며 기습적으로 철거를 강행했다”며 “5만 원은 바로 시공사 측에 돌려주면서 ‘철거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이 돈 받은 거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용산구청 앞에 선 하순철 씨. 용산구의 무책임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용산구청 앞에 선 하순철 씨. 용산구의 무책임을 규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자신이 10년 넘게 머물던 텐트의 강제철거를 겨우 막은 주민 하순철 씨는 울분을 토했다.

“개고 고양이고 코너에 몰리면 물라고 배웁니다.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요? 계획(이주대책)을 내놓고 (공사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우리는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내 땅 아니고 나라 땅(소유자 국가철도공단)이니까, 다 알겠어요. 그런데 (텐트에) 사는 사람들 이름과 번호가 다 적혀 있어요. 서울시가 붙여 놨어요.

그래 놓고 (용산구는) 우리한테 기다리라고만 해놓고, 아무 설명도 없이 이러면(강제철거하면) 어떡해요? 그래, 우리는 ‘거지새끼’라 쫓아내면 나가야 되겠지만, 갈 길을 만들어 놓고 (텐트를) 부숴야 될 거 아니에요? 나도 용산구민이에요. 용산에 있는 형네 집에 주소(전입신고) 해놨어요. 나도 용산구민인데, 왜 나한테 함부로 합니까?”

용산구청 앞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들이 ‘투쟁’을 외치며 용산구를 규탄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용산역 텐트촌 주민 이주대책 협의 중 강제철거 강행한 용산구청 규탄 기자회견, 용산구청은 대책 없는 강제철거 중단하고 이주대책 마련하라!’라고 적혀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상현 녹색당 서울비례의원 후보자와 설혜영 정의당 용산구의원도 참여했다. 사진 하민지
용산구청 앞 기자회견 현장. 참가자들이 ‘투쟁’을 외치며 용산구를 규탄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용산역 텐트촌 주민 이주대책 협의 중 강제철거 강행한 용산구청 규탄 기자회견, 용산구청은 대책 없는 강제철거 중단하고 이주대책 마련하라!’라고 적혀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상현 녹색당 서울비례의원 후보자와 설혜영 정의당 용산구의원도 참여했다. 사진 하민지

- 용산구, 공공성 높다고 공사허가 해놓고 ‘민간의 일’이라며 나 몰라라

텐트촌 주민은 주거지원에 대한 용산구 사회복지과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거지원에 관해 아직 용산구와 대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철거가 강행됐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용산구 도시계획과에 전화해 이 같은 사실을 설명하고 철거중지를 요청하니,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왜 자꾸 우리에게 따지나’라고 반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형진 활동가는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자신들이 발주한 공사도 아니고, 시행사도 민간기업(HDC현대산업개발)이라 민간개발인데 왜 자꾸 용산구를 걸고넘어지나’라며 ‘철거중지를 요청할 권한이 구청에 없다’고 했다”고 성토했다.

용산구 계획안 8쪽. ‘우리구(용산구) 의견. 증축에 따른 공공기여 부분이 역사를 이용하는 고객편의와 주변 개발계획과 연계하여 적정하게 계획되었음’이라 적혀 있다.
용산구 계획안 8쪽. ‘우리구(용산구) 의견. 증축에 따른 공공기여 부분이 역사를 이용하는 고객편의와 주변 개발계획과 연계하여 적정하게 계획되었음’이라 적혀 있다.
용산구 계획안 17쪽. 공공기여 계획 중 하나로 신규 공중보행교가 언급돼 있다. ‘보행브릿지’, ‘보행견결통로’ 등으로 언급된 신규 공중보행교는 용산구가 허가한 개발계획에서 공공성을 높이는 설치물 중 하나로 인정됐다.
용산구 계획안 17쪽. 공공기여 계획 중 하나로 신규 공중보행교가 언급돼 있다. ‘보행브릿지’, ‘보행견결통로’ 등으로 언급된 신규 공중보행교는 용산구가 허가한 개발계획에서 공공성을 높이는 설치물 중 하나로 인정됐다.

그러나 ‘민간이 시행하는 공사이므로 용산구에는 아무 권한이 없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2016년, 용산구 도시계획과가 결재한 문서 ‘용산지구단위계획 (변경)결정(안) 및 용산역사지구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 결정(안) 입안(아래 계획안)’에 따르면, 신설 공중보행교 설치 계획이 포함된 개발계획의 ‘공공기여 부분’이 ‘적정하게 계획되었’다고 적혀 있다.

또한 계획안에는 개발계획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신설 공중보행교 설치가 언급돼 있다. 즉, 신설 공중보행교 설치 사업시행은 HDC현대산업개발이라는 민간기업이 하지만, 용산구 도시계획과가 이 사업의 공공성이 높다고 판단해 허가를 내준 것이므로 마냥 민간의 영역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안형진 활동가는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며 “신설 공중보행교 설치공사는 공공의 땅 위에서 진행되며, 이를 공공기여에 관한 사항으로 확정한 곳은 용산구다. 공공성을 검토해 공사허가를 내준 곳도 용산구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공사에 관한 전반을 구청과 협의해야 한다. 그런데 용산구에 무슨 권한이 없고 책임이 없나?”라고 따져 물었다.

또한 안 활동가는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처음에 ‘공사구간에 사람이 사는 줄 몰랐다’고 했다. 사람 사는 줄 모르고 함부로 개발계획 세웠고 공사허가 내준 점과 무책임한 행정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점에 대해 용산구는 분명히 사과하고, 이주대책과 주거지원 없이 철거를 방치한 것을 책임져야 한다”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용산구청은 주거권 침해 상황에 지금 당장 개입하라’라고 적힌 피켓. 사진 하민지
‘용산구청은 주거권 침해 상황에 지금 당장 개입하라’라고 적힌 피켓. 사진 하민지

- 용산구, 서울시가 실거주 확인 가능한 서류를 줘도 못 본 척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규정을 무시한 채 ‘국토교통부 답변 오면 알려주겠다’고만 말하고 버티고 있다.

용산구 도시계획과와 사회복지과는 지난달 15일, 텐트촌에 방문해 퇴거대상인 주민과 면담했다. 사회복지과 직원들이 그 자리에서 한 말은 “텐트는 실거주 확인이 안 된다. 쪽방이나 고시원 등 비주택으로 이사 가서 3개월 사셔야 임대주택 신청이 가능하다”였다.

주민과 활동가가 국토부훈령을 보여주며 “텐트도 비주택에 포함되고, 거주사실확인서를 제출하면 된다”고 거듭 설명했지만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끝까지 “타협은 없다. 유도리(융통성) 있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만 반복했다. 이후 “국토부에 물어보고 알려주겠다”고 대답했다.

물어보고 알려주겠다고 한 지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아무 말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안형진 활동가는 “적극적 개발행정과 그에 반비례한 제한적 복지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국토부훈령 1361호 별지1 ‘임대주택 입주 신청서’ 구비서류 안내사항. 임대주택 신청 시 주민등록등본과 거주사실확인서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텐트촌 주민이 실거주가 확인되지 않아 주거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용산구 사회복지과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국토부훈령 1361호 별지1 ‘임대주택 입주 신청서’ 구비서류 안내사항. 임대주택 신청 시 주민등록등본과 거주사실확인서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텐트촌 주민이 실거주가 확인되지 않아 주거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용산구 사회복지과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안 활동가는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에게 ‘용산구 텐트촌 상담이력을 용산구에 전해달라. 그걸로 실거주가 확인될 수 있다’고 요청했다. 서울시는 용산구에 전했지만 용산구는 여전히 ‘국토부 답변 오면 알려주겠다’고 한다. 용산구의 부실한 사회안전망에서 퉁겨져 나와 국공유지에 터 잡고 지금까지 목숨 부지한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라고 분노했다.

안형진 활동가는 “용산구는 개발계획으로 지난 20년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건 용산역 뒤편 텐트촌 홈리스의 삶뿐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지난해 말에 신설 공중보행교 착공식에 참여했다. 용산구민이 현재 대책 없이 철거당하는 곳에도 꼭 참여하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가라. 용산구가 허가한 공중보행교가 누구의 삶을 짓밟으며 만들어지고 있는지 봐라”라고 성토했다.

김소연 전국철거민연합 조직국장은 “용산구청 앞 마당이 참 넓다. 용산구가 주거지원 하지 않고 강제철거 방관하면 여기에 이주대책 부지 삼아 텐트 치고 살자. 이곳에 눌러앉아서 주거권을 요구하자”고 말하며 용산구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퇴거대상 텐트촌 주민들은 활동가들과 함께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가서 직접 임대주택을 신청할 예정이다. 국토부훈령에 따르면 임대주택은 기본적으로 관할 주민센터에 신청해야 하지만, 15조의2 ‘입주대상자 선정 등의 특례’에 따라 조사기관인 LH가 입주대상자를 직접 선정할 수 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텐트촌 주민 향한 철거 위협, 구청이 직접 해결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뒤에는 외부가 전면 유리로 된 용산구청 건물이 있다. 사진 하민지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텐트촌 주민 향한 철거 위협, 구청이 직접 해결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뒤에는 외부가 전면 유리로 된 용산구청 건물이 있다. 사진 하민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