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불명의 화재로 텐트 2개 동 전소, 인명피해 無
공중보행교 공사로 텐트 강제철거 후 ‘새 텐트’ 지급
주민들, 용산구에 “포화상태라 텐트 못 짓는다” 말했지만 외면
결국 화재… 용산구 “주거지원 불가” 입장 고수
용산구가 ‘실거주 확인이 안 된다’는 이유로 용산역 텐트촌에 사는 홈리스에게 주거지원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텐트촌에 화재가 발생했다. 25일 오후 5시 30분경, 텐트촌에 불이 나 텐트 2개 동이 전소했고 인근 텐트 거주민들이 피해를 당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번 화재로 전소된 텐트 2곳 중 1곳은 신설 공중보행교 공사를 진행하는 시공사(일주종합건설) 측이 제공한 텐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구간 내 텐트가 철거당해야 하는 상황에, 용산구는 홈리스에게 주거지원을 하지 않고 ‘쪽방이나 다른 텐트로 이사 가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홈리스는 이에 반발하며 규정에 따라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게 하라고 요구했지만 용산구는 규정을 무시하며 신청조차 가로막고 있다. 그 사이 텐트 철거가 강행됐고, 이주에 관한 보상이나 협의는 ‘새 텐트 지급’ 말곤 없었다.
이에 화재피해 홈리스 당사자들과 홈리스행동 등 시민사회단체는 27일 오전 10시, 서울시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구의 복지부동 행정을 규탄하며, 인권위에 진정서와 긴급구제신청서를 제출했다.
- 텐트촌 이미 과포화인데 ‘새 텐트’ 주고 끝, 결국 화재발생
현재 텐트촌은 화재로 인해 아수라장이다. 타다 남은 잔해들이 뒤엉켜 있다.
ㄱ 씨는 화재발생 당시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다. ㄱ 씨가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불길이 치솟아 나갈 수 없었다. 결국 불길이 향하지 않은 쪽의 텐트 일부분을 찢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허겁지겁 대피해야 했다. ㄱ 씨가 머물던 텐트는 결국 전소됐다.
박 아무개 씨는 텐트촌에 20년간 거주했다. 박 씨가 거주하던 텐트는 공사구간 내 텐트여서 강제철거됐다. 박 씨는 시공사가 지급한 텐트에 머무르다 화를 당할 뻔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불이 나서 깜깜하고, 앞도 안 보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며 화재당시를 회상했다. 박 씨의 텐트 또한 전소된 상태다. 경찰은 방화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조사 중이다.
이 상황에도 용산구는 텐트촌 주민들에게 별다른 주거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공사구간 내 철거대상자뿐만 아니라 인근 텐트 주민들 모두 화재현장 근처 텐트에서 거주하거나 용산역 복도 등에 머물러야 한다.
용산구는 ‘텐트 이전’과 ‘주거지원 불가’ 등 두 가지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지난달 15일, 용산구 도시계획과와 사회복지과 직원들이 텐트촌에 방문했을 때,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주민들에게 “텐트 이전에 협조해 달라”고 요구했다. 주민들은 “포화상태라 새 텐트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분명히 전달했으나 용산구 도시계획과는 “텐트를 이전할 공간은 시공사 측 현장소장과 소통해라”라며 “일주일을 줄 테니 텐트를 이전해라”라고만 말했다.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용산구 대처에 강하게 분노했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그간 주민들은 텐트에서 텐트로 이사 가라고 하는 건 주거대책이 아니라고 용산구에 수없이 말했다. 텐트 이전이 되면서 텐트촌 밀도가 높아졌고, 화재 위험성도 높아졌다. 이번 화재는 위험을 방치한 용산구 행정이 초래한 결과다”라고 분노했다.
- 국토부 ‘용산구에 전화해서 된다고 말했다’는데도 용산구는 요지부동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버젓이 있는 규정을 무시한 채 텐트촌 주민에 대한 주거지원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훈령 제1361호 ‘임대주택 입주 신청서’에 따르면,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움막 등 비주택에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은 주소이력이 기재된 주민등록등본이나 거주사실확인서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쪽방, 고시원 등 전입신고를 할 수 있는 곳에 3개월을 살아야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침을 직접 보여주며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여러 차례 이야기해도 “텐트촌에 3개월 살았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다. 타협은 없다”고 잘라 말하며 “국토부에 문의해 놨으니 답변이 오면 알려주겠다”고만 하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텐트 강제철거를 방치했다.
요지부동인 용산구 대신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활동가가 지난 16일, 국토부 주거복지정책과와 직접 통화했다. 이원호 활동가에 따르면, 국토부 주거복지정책과는 이미 용산구에 몇 차례 전화를 걸어 텐트촌 홈리스에 대한 주거지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실거주 확인이 불가능한 비주택의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현장답사하고 시민단체 등 지원기관을 통해 거주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면 임대주택을 신청할 수 있다’고 용산구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용산구 사회복지과는 ‘국토부 답변을 공문으로 받은 건 없다’고 답하며, 여전히 국토부로부터 아무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사이, 화재가 발생했다.
이 아무개 씨는 공사구간 내 텐트 거주자로, 텐트촌에 1년 정도 살았다. 이번 공사 때문에 텐트가 강제철거됐다. 화재 당시 텐트 일부가 불에 타는 피해를 당했다. 이 씨는 “어느 날 건설소장(시공사 측)이 와서 내 텐트를 말도 없이 뽑아갔다. 용산구청, 용산구의원에게 임대주택 조치해 달라고 항의했고 한 달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안 해줬다. 불이 났는데도 구청에선 아무 소식이 없다. ‘노숙자’라고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성토했다.
텐트촌 홈리스들은 강제철거로 인해 ‘철거민’이 됐고, 화재 때문에 ‘이재민’이 됐다. 이재민 2명을 포함해 화재피해를 입은 홈리스 3명 등 총 5명은 성장현 용산구청장과 원희룡 국토부 장관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서와 긴급구제신청서를 제출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성장현 구청장은 긴급복지지원법 2조의 5와 공공주택특별법 시행규칙 23조의 3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긴급 주거지원을 해야 한다. 원희룡 장관은 주거기본법 3조에 따라 국민의 안전하고 편리한 주거생활을 지원해야 한다”며, 성 구청장과 원 장관을 향해 “용산역 텐트촌 홈리스를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대상자로 조속히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