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이튿날
지하철 오체투지와 17번째 삭발
21일 아침 7시 24분, 3호선 경복궁역(독립문역 방향).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가 지하철 바닥에 배를 대고 납작하게 누웠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스티커들을 하나씩 바닥에 붙였다. 스티커에는 “장애인평생교육시설 국비 지원하라”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예산 보장하라” “탈시설 권리보장 예산 6224억원으로 보장하라” 등의 글자가 쓰여 있었다. 번쩍이는 플래시와 함께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연이어 터졌다. 네댓장의 스티커를 바닥에 붙이던 그가 마이크를 붙잡고 이야기했다. 덩어리진 말을 뱃속에서부터 끄집어내는 듯, 말과 말 사이엔 자꾸 숨이 차서 쉼표가 찍혔다.
“저희가 21년을 이렇게 외쳤는데, 되지 않는 이유는요, 기재부가 법에 명시된, 이동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지역사회에서 노동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권리,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예산을, 보장하지 않아서 생긴 일입니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해) 검토해서 답하겠다고 하시면, 내일이라도 저희는 지하철 출근길 막아가면서, 시민들께 이렇게 불편 끼치면서 이야기하는 것,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기재부 인사청문회 참여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님들, 반드시 질문해 주십시오. 답을 받아 주십시오. 기재부 장관 인사청문회가 5월 2일에 있다고 합니다. 제발 꼭, 답을 받아주십시오. 검토하겠다는 답이 아니라, 법에 명시된 예산을 반영하겠다는 답을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은, 비장애인들 권리와 장애인의 권리가 너무나 불평등하다는 겁니다. 왜 권리가 불평등해야 합니까. 헌법엔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탈시설 권리가 명시되어 있는데, 장애인단체 간 이견이 있다고, 또 장애인단체 간에 갈라치기 합니다.”
오늘도 그는 20년 전, 이동권 투쟁 때 만든 점퍼를 입고 나왔다. 검은 점퍼 등판에 쓰인 “버스 타고 싶다! 장애인이동권연대”라고 쓰인 하얀 글자는 그의 머리카락처럼 희끗해졌다.
그는 지하철 바닥에 스티커를 지문처럼 남기고는 아주 느리게, 앞으로 기었다. 바닥에 댄 팔꿈치에 힘을 주어 상체를 앞으로 당기면 마비된 그의 다리도 같이 끌려 왔다. 취재진도 그를 따라 아주 느리게, 이동했다. 기어가는 그의 뒤에서 비장애인 활동가가 텅 빈 그의 수동휠체어를 밀면서 따랐다.
박 대표의 뒤에 있던 장애인 활동가들도 하나둘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한 장애인 활동가가 왼손을 들어 올려 “투쟁”을 외쳤다.
21일 목요일 아침 출근길, 3호선 지하철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전날까지 전장연은 인수위로부터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답이 오길 기다렸으나 끝내 받지 못했고, 결국 다시 출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에 오른 장애인들은 그들의 속도대로 움직였다. 어떤 이는 무릎으로 움직였고, 또 누군가는 두 손과 두 발로 기었다. 비장애인의 무릎 아래 납작 엎드린 채 1시간 20분이 흘렀다. 지하철 연착이 길어지자 시민들의 욕설이 우박처럼 쏟아졌고, 경찰은 지하철을 타려는 활동가들의 목을 조르고, 팔을 밟고, 몸뚱이를 내동댕이쳤다.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지하철 시위를 마친 후엔 머리카락을 깎았다. 열일곱 번째 삭발이다. 무참해진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반듯하게 머리를 깎은 다섯 명의 활동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빛이 하염없이 빛났다. 사람들은 “끝까지 싸워서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평범한 그 말들이 단단한 미래를 조직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이튿날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