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나온 2·3차 최종 견해가 1차 견해와 비슷
장애계 “정부는 8년간 1차 견해 권고도 안 지켜” 규탄
선택의정서 가입 동의안도 1년째 계류 중
“국회는 동의안 의결하고, 정부는 위원회 권고 이행하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2·3차 심의에 대한 최종 견해를 지난 9일 공개했다. 위원회는 73항에 걸쳐 정부의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이행에 대한 권고 사항을 제시했다.

2·3차 최종 견해는 2014년 1차 최종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정부가 지난 8년간 유엔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위원회는 특히 “모든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전략이 미약하게 이행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지난해 8월 정부가 공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아래 탈시설로드맵)’을 “장애인단체와 협의해 검토하고, 지역사회와의 분리에 반대하는 원칙을 포함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한국장애포럼 등 장애인운동단체와 김예지 국민의힘 국회의원,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21일 오전 10시,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위원회의 최종 견해를 모두 수용하고, 탈시설로드맵을 다시 수립해 시설 신규 입소 금지, 시설폐쇄를 명시하라”고 요구했다.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유엔장애인권리협약 2·3차 한국 심의 최종 견해 이행 촉구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 정부는 8년간 무얼 했나

위원회의 정부 2·3차 심의는 지난달 24~25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열렸다. 1차 최종 견해가 나온 지 8년 만에 열린 이번 심의에서, 정부는 장애인권을 잘 보장하고 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놔 장애계의 공분을 샀다. 이에 5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협약 한국 정부 심의 대응 장애계 연대’는 한국 심의가 끝난 직후인 지난달 25일 오후 2시(현지 시각), 유엔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 바 있다.

지난 9일 공개된 2·3차 심의의 최종 견해는 정부가 받은 장애인권 보장의 두 번째 성적표다. 8년 전 나온 1차 최종 견해의 ‘주요 우려 사항 및 권고’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의학적 모델의 장애등급제, 미약한 탈시설 정책,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장애인편의시설 의무 설치 제외 대상을 정하는 것, 이동권 문제 등 많은 부분이 1차 최종 견해 내용과 비슷하다.

윤종술 한국장애포럼 상임대표는 “이번 2·3차 최종 견해를 통해 정부가 1차 최종 견해의 권고를 지키지 않았단 걸 확인했다. 정부가 위원회에 참석해 한 말이 자화자찬이었단 게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도 “위원회는 1차 최종 견해에서 협약에 위배되는 장애등급제와 시설화를 폐지하라고 권고했지만 정부는 이행하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윤종술 한국장애포럼 상임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윤종술 한국장애포럼 상임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장애포럼

- 위원회 “장애인단체와 탈시설로드맵 검토하라”

위원회는 2·3차 최종 견해에서, 정부가 지난해 탈시설로드맵을 발표한 것 자체는 “긍정적 측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4개 항에 걸쳐 우려되는 점을 지적하고 대책을 권고했다.

우선 코로나19 기간에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집단감염으로 사망한 사건을 지적하며 “위독한 상황에서 장애인의 생명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긴급탈시설 계획을 세워라”라고 권고했다. 또한 “비상시에 장애인 탈시설 방안을 채택하고, 지역사회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했다.

또한 위원회는 탈시설로드맵을 수립한 것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모든 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전략 이행이 미약하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장애인단체와 협의해 탈시설로드맵을 검토해 협약에 준하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더불어 “충분한 예산을 확보하고, 장애인을 지역사회와 분리하는 것에 반대하는 원칙을 (탈시설로드맵에) 포함하라”고 했다.

진은선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 소장은 “장애계는 심의 당시 스위스 현지에 가서 탈시설로드맵이 시설폐쇄가 아니라 시설 소규모화 정책이며, 이는 장애인권을 배제하는 문제란 걸 알렸다”며 “한국 정부는 장애인권을 침해하는 탈시설 정책을 중단하라. 지금 당장 위원회 권고에 따라 시설폐쇄를 전제하는 탈시설 정책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탈시설지원법을 대표발의한 최혜영 의원은 “위원회의 지적은 장애인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자 이웃으로서 함께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라는 요구다. 정부는 이를 상기하라”며 권고 이행을 촉구했다.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 현장. 사진 한국장애포럼

- 선택의정서 비준 언제 되나… 국회 계류 중

정부는 협약에는 비준했지만 선택의정서는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선택의정서에 비준하면 한국에서 차별을 겪은 장애인이 위원회에 피해 상황을 진정할 수 있고, 위원회는 진정인의 권리침해에 대해 한국 정부를 직권조사할 수 있게 된다.

협약 선택의정서 비준 촉구 결의안(아래 결의안)은 지난해 6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관계 부처와 협의해 조약 국문본을 마련하고 대통령 재가까지 마쳤다. 국회 비준만 남았지만 지난해 12월 발의된 협약 선택의정서 가입 동의안(아래 동의안)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아래 외통위)에 상정되지 못하고 계류돼 있다.

결의안을 대표발의한 김예지 의원은 “위원회는 2·3차 최종 견해에서 정부가 선택의정서를 비준할 것을 권고했다. 동의안이 외통위에서 한없이 미뤄져 안타깝다”며 “선택의정서가 빠르게 비준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장애포럼 등 장애인운동단체는 요구안을 발표하며 국회를 향해 “국회는 동의안을 즉시 의결하라”고 촉구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위원회의 최종 견해를 모두 수용하고 조치계획 수립 △조치계획 수립 과정에 장애인단체 포함 △탈시설로드맵 재수립해 시설 신규 입소 금지, 시설폐쇄 명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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