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심의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소 현장. 장애계연대 활동가 여러 명이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이 있는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기획재정부는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멈추라. 예산 문제로 장애인을 가두지 마십시오. 죽이지 마십시오. 기획재정부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발달·중증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이라 적혀 있다. 사진 협약한국정부심의대응장애계연대
한국 심의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소 현장. 장애계연대 활동가 여러 명이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이 있는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기획재정부는 한국판 T4 프로그램을 멈추라. 예산 문제로 장애인을 가두지 마십시오. 죽이지 마십시오. 기획재정부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발달·중증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이라 적혀 있다. 사진 협약한국정부심의대응장애계연대

“한국 정부는 유엔까지 와서도 사기를 칩니까?”

8월 25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외친 말입니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의 한국 정부 심의가 끝난 직후였습니다. 위원회는 8월 24일부터 이틀간, 한국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심의했습니다.

정부가 협약에 비준한 건 2008년입니다.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정부는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 이동권, 노동권 등을 명시한 협약을 국내법과 동일하게 이행해야 합니다.

협약에 비준한 국가는 4년에 한 번씩 협약 이행 사항에 대한 국가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합니다. 국가보고서는 보건복지부나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누리집에 올라와 있어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협약 이행을 감독하는 모니터링 기구인 인권위와 시민사회단체는 독립보고서를 별도로 작성해 위원회에 제출합니다. 위원회는 국가보고서와 여러 단체에서 제출한 독립보고서를 검토하고, 위원회에 출석한 한국 정부를 대면 심의합니다.

심의가 끝나면 위원회는 ‘최종 견해’를 작성해 정부에 전달합니다. 일종의 성적표입니다. 2014년, 정부가 받은 첫 번째 성적표 내용은 심각했습니다. 위원회는 총 66개 항에 걸쳐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장애인복지서비스, 장애인이 거주시설에 수용된 현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버스와 택시 수가 적은 것, 건물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장애인편의시설 의무 설치 대상을 규정한 것, 성년후견제,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등의 문제를 상세히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최종 견해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중심으로 2019년에 2·3차 병합 국가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1차 최종 견해가 늦게 나와서 2·3차를 한꺼번에 심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9년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는 코로나19 상황 등 최근 상황이 반영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최근 상황이 포함된 추가보고서가 필요했습니다. 정부는 심의 이틀 전인 8월 22일에야 부랴부랴 제출했고, 이를 민간에도 제대로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정부 태도는 유엔 심의에서도 지적받았습니다.

한 활동가가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이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한 활동가가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권리이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위원회는 지난 9일, 2·3차 병합 심의에 대한 최종 견해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첫 번째 성적표를 받았을 때부터 8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크게 없습니다. 1차 최종 견해의 내용 대부분이 그대로 담겼습니다. 정부가 1차 최종 견해의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8년간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정부는 위원회에 출석해 자화자찬을 늘어놨습니다. 국가보고서에도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것만 설명했습니다. 장애인콜택시 4074대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실은 법정대수보다 모자란다는 건 말하지 않는 식입니다.

인권위도 올해 7월 유엔에 제출한 독립보고서에서 “국가보고서는 협약 이행을 지체시키는 법률 집행이나 관행의 문제를 명확히 기술하지 못하고, 임의규정이거나 선언적 의미만 있는 법률 조항을 협약 이행에 부합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등 한국의 장애인 인권 상황을 정확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 중심의 전체 공급 현황이나 규모만 단순 제시하여, 장애인 인권 현황이나 협약 이행 상황 전반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산은 정부의 정책의지를 보여주는 근거인데 국가보고서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도 꼬집었습니다.

비마이너는 정부가 위원회 대면심의와 국가보고서를 통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한 것,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을 팩트체크했습니다. 정부가 제출한 국가보고서는 이제까지 정부의 정책 홍보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를 팩트체크함으로써 정부발 보도자료에서 의도적으로 선택된 사실이 어떻게 진실을 가리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다뤄야 할 내용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활동지원서비스 △탈시설로드맵 △시외이동권 △발달장애인 지원 예산 등의 주제를 선정해 검증했습니다.

* 이 기사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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