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 ⑥
[검증 대상]
지난달 24일과 25일, 한국 정부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출석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습니다. 위원회 한국 담당관들은 한국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증진을 위해 한국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8일 발표한 ‘2021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 최종 보고서(아래 보고서)’를 기반으로 답변하며, “대한민국 정부는 장애인의 차별 없는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도시 간 이동에 제약이 없도록 다양한 지원을 추진 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지난달 22일, 정부가 위원회에 제출한 국가보고서(보완보고서) 내용과 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한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한국 정부는 정말 장애인의 차별 없는 시외이동권을 보장하고 있을까요? 비마이너가 확인했습니다.
[검증 방법]
· 국토교통부가 8월 8일에 발표한 보고서를 참고했습니다.
· 한국 정부가 위원회에 제출한 2·3차 병합 국가보고서(보완보고서)를 참고했습니다.
· ‘유엔 웹 티브이’에 올라온 제27차 장애인권리위원회 598~599차 영상회의록을 참고했습니다.
· 제392회 국회(임시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록을 참고했습니다.
·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에 확인한 사실을 참고했습니다.
· 시외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차별을 겪은 장애인 당사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 시외이동권에 관해 보도한 비마이너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검증 내용]
이번 심의에서 로사 이달리아 알다나 살게로 위원은 “도시 간 순회버스에 대한 접근성을 어떻게 개선하고 있는지, 예산과 계획, 일정이 궁금하다”고 질의했습니다.
이에 최정민 국토교통부 생활교통복지과 과장은 “대한민국 정부는 장애인의 차별 없는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도시 간 이동에 제약이 없도록 다양한 지원을 추진 중”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시외버스, 광역버스, 철도 등 총 네 가지 대중교통의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 특별교통수단 4074대 운행 중이다?
최정민 과장은 “2021년을 기준으로 전국 4074대의 특별교통수단이 장애인의 도시 간 이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가보고서(보완보고서)에는 “2022년 1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아래 교통약자법)을 개정해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국가가 지방자치단체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도 적었습니다.
4074대는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하는 법정기준대수의 85.9%밖에 안 되는 수치입니다. 법에서는 특별교통수단이 ‘보행상의 장애인으로서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 150명당 1대’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이 계산대로라면 특별교통수단은 4738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국가가 지자체로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개정된 교통약자법 16조 7항에 따르면, 국가가 운영비를 지원하는 건 의무가 아니라 선택사항입니다. 법 개정 당시 기재부가 반대하면서 의무사항이 임의사항으로 통과됐습니다. 제392회 국회(임시회) 법제사법위원회(아래 법사위) 회의록에 따르면 박장호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기획재정부는 이동지원센터의 운영사업과 그 재원이 2005년 국가에서 지자체로 이양되었고, 이를 반영하여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아래 보조금법) 시행령에서도 장애인특별운송사업(운영비)을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으므로 수용이 곤란하다는 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기획재정부의 의견을 감안하여 국토교통위원회는 국가의 이동지원센터 등에 대한 운영비 지원을 의무사항이 아닌 임의사항으로 의결하면서…”
이는 장애인의 출근길 지하철 투쟁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하여야 한다’와 ‘할 수 있다’는 다르다”라고 이야기하며,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지 않는 기재부를 강하게 비판해 왔습니다. 투쟁 끝에, 추경호 기재부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보조금법 시행령을 개정해 장애인특별운송사업을 보조금 지급대상으로 규정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추 장관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은 하지 않고, 특별교통수단 운영비의 절반만을 국고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국토부는 내년 예산안을 편성하며 ‘특별교통수단 도입보조 운영비’를 신설했습니다. 차량 1대당 1년간의 운영비를 1900만 원으로 책정했는데요, 총 5천 대 운영비의 절반만 국고로, 그것도 6개월만 지원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렇게 해서 책정된 내년 특별교통수단 예산은 총 237억 원입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국토부 생활안전교통과와 기재부 국토교통예산과를 통해 확인해 보니, 1900만 원에는 차량 유지비, 콜센터 시스템 운영비만 포함돼 있었습니다. 여기서 제외된 운전자와 콜센터 노동자의 인건비는 고스란히 지자체의 몫이 됩니다.
이에 장혜영 의원은 지난 15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1900만 원은 국토부가 2012년에 발표한 특별교통수단 1대당 평균 운용비용 4600만 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앞에선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국가가 보장하겠다고 하면서 뒤에선 인건비를 빼는 편법은 곤란하다”고 질타했습니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은 “국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상의드리도록 할 것”이라며 원론적으로만 답변했습니다.
이렇듯 정부가 특별교통수단 운영비를 지원하지 않고 지자체로 떠넘기는 바람에, 현재 특별교통수단은 지자체마다 천차만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즉시콜, 24시간 운행, 관외 운행 등 지역마다 방침이 다릅니다. 서울시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다른 지역은 매우 열악합니다. 충청북도 영동군의 경우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만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임경미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영동군과 면담한 적이 있는데, 영동군은 ‘예산이 없는데 어떡할 거냐’라는 태도였다. 특별교통수단 국비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 휠체어 탑승설비 장착한 시외버스 도입 추진 중이다?
최정민 과장은 “대한민국 정부는 장애인의 장거리 이동 지원을 위해 휠체어 탑승설비를 장착한 고속버스 도입을 추진 중이다. 예산 30억 원을 투입해 차량 개조, 터미널 정비, 예매 시스템 개선을 추진했다. 휠체어 탑승설비를 장착한 버스를 확대하고, 철도가 운행하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외버스는 보통 고속버스터미널을 이용해 먼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버스를 가리킵니다. 정부는 앞으로의 계획을 대략 말했지만 현재 상황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시외버스는 장애인의 끈질긴 투쟁 끝에 2019년 처음으로 도입됐습니다. 서울~부산, 서울~전주, 서울~강릉, 서울~당진 등 4개 노선에서 시범사업이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수요가 줄었다는 이유로 4개 노선이 1개 노선으로 축소됐습니다. 고속버스 예매 사이트인 ‘코버스’에서 확인해 봤습니다. 9월 26일을 기준으로 조회되는 휠체어 좌석 노선은 서울~당진 1개뿐입니다. 충남고속과 한양고속 버스 두 대가 하루에 두 번씩, 총 네 번 운행합니다. 좌석 수도 전체 33개 좌석 중 휠체어 이용자 좌석은 단 2개뿐입니다.
현실이 이렇지만, 한국 사법부는 국가와 지자체, 버스회사 모두 장애인의 시외이동권을 보장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지난 2월 17일, 대법원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 등 교통약자 세 명이 대한민국과 서울시, 경기도, 금호고속, 명성운수를 상대로 제기한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소송’에서 ‘정부 책임은 없으며 버스 회사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마련하라는 2심 판결도 잘못됐다’며 파기환송했습니다. 장애인들이 버스회사가 운행하는 모든 노선의 버스에 탑승할 개연성이 없으며, 버스회사가 휠체어 탑승설비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에 장애계는 “장애인 이동권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인정할 것을 포기한 판단”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습니다.
- 광역 저상버스 20여 대를 운영하고 있다?
최정민 과장은 “광역버스 노선의 경우 저상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한민국 자체 기술로 개발한 2층 전기 저상버스가 올해 말까지 20여 대가 운영될 예정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또한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도 주행 가능한 친환경 저상 좌석버스를 개발하고 있다. 2026년에 시범운행을 하고 2027년부터 도입 의무화해 전면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광역버스는 서울시와 경기도, 서울시와 인천시 등 2개 이상의 시·도를 통과하는 버스를 가리킵니다. 서울시를 기준으로, 흔히들 ‘빨간 버스’라고 부르는 버스나 ‘M0000’처럼 네 자리 숫자 앞에 알파벳 M이 붙은 버스가 광역버스입니다. 9401번 빨간 버스의 경우 경기도 성남시와 서울시를 오가고, M6724번 버스는 송도국제도시와 서울역을 오가는 광역버스입니다.
보고서에는 시내버스(일반형)와 농어촌버스, 마을버스의 저상버스 보급률 통계만 있고 광역버스는 없었습니다. 이재민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사무국장에게 확인한 결과 정부의 말 자체는 사실이었습니다. “2층형 전기 저상버스 20여 대가 소수 노선에서 운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1층 광역버스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정명호 고양아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현재 운행 중인 2층 전기 저상버스를 타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노선 수와 운행대수가 너무나 적기 때문입니다. 정 소장은 “일단 노선이 다양하지 않아서 탈 일이 별로 없다. 고양시에는 1개 노선만 운행되고 있다. 거의 보기가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경기도지만, 고양시에서 수원시로 가는 길은 까마득합니다. 저상버스나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면 1시간~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지만 둘 다 이용하기 어려워서 지하철로만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 소장은 고양시 주엽역에서 수원시 한대앞역까지 지하철로 가며 애를 먹었습니다. 비장애인은 2시간이면 가는데, 휠체어를 이용하는 정 소장은 엘리베이터 대기시간까지 포함해 총 3시간이 걸렸습니다.
정명호 소장은 “2027년에 광역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하겠다”는 정부의 말에도 분노했습니다. 정 소장은 “2027년이면 정권이 바뀐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장애인 시외이동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지 않겠다는 말 아닌가. 시범사업으로 그냥 몇 대 운행하다가 차기 정부에 떠넘기겠다는 말로 들린다. 위원회에 출석해 장애인 이동권을 차별 없이 보장하고 있다고 말한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건가”라고 비판했습니다.
- 철도 이동편의시설 기준적합 설치율이 99%다?
최정민 과장은 “철도의 경우 장애인편의시설 및 장애인용 화장실뿐만 아니라 역사 내 엘리베이터, 휠체어 이용자 탑승설비 등을 구비하고 있어 2021년 기준 장애인 이동편의시설 기준적합 설치율(아래 기준적합률)이 99% 수준에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기준적합률이란 장애인 전용 화장실, 휠체어 승강설비, 점자블록 등 교통약자가 이용하는 이동편의시설이 교통약자법 상 세부 기준에 적합하게 설치된 정도를 뜻합니다.
정부의 말 자체는 사실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철도차량의 기준적합률은 98.9%입니다. 그러나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만든 수치일 뿐이다. 휠체어 이용자에겐 기준적합률 0%”라고 비판했습니다.
KTX의 경우, 한 열차에 휠체어 이용자가 최대 두 명밖에 타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휠체어 이용자 세 명이서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해 KTX에 탄다면, 세 명 중 한 명은 다른 시간대의 열차를 예매해 따로 탑승해야 합니다.
휠체어 이용자는 출발 시각 15분 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탑승이 불가하다는 방침도 문제입니다. 비장애인은 출발 1초 전에 와도 탈 수만 있으면 탑승을 저지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휠체어 이용자는 출발 10분 전이나 5분 전에 오면 열차표를 정당하게 구매했는데도 탈 수 없습니다. 휠체어 탑승설비를 작동하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박경석 대표는 “지난번에 시간을 재어보니 1분이면 탑승이 가능했다”면서 행정편의적인 방침을 규탄했습니다.
[검증 결과]
정부는 위원회에서 수치만을 나열하며 장애인의 차별 없는 시외이동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철도·광역버스·시외버스 좌석 수와 노선 수, 특별교통수단 운행 대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건 말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특별교통수단 국비 지원을 반대했다는 사실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불리한 것은 숨기고 표면상의 수치만 나열했으므로, 위원회에 출석해 정부가 답변한 내용과 보완보고서의 이동권 관련 내용은 ‘절반의 사실’로 판정합니다.
* 이 기사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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