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 ①

[검증 대상]

지난달 24일과 25일, 한국 정부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출석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 정부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관련하여 “2019년 7월, 1~6등급으로 구분하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서비스지원종합조사(아래 종합조사)의 도입으로 개인별 필요도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는 위원회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서도 “사회적 모델을 반영한 항목으로 종합조사를 구성”하여 과거 장애등급으로 활동지원서비스를 비롯한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한 상황을 개선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한국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인의 환경과 특성, 욕구에 맞게 복지서비스를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었을까요? 비마이너가 확인해봤습니다.

[검증 방법]

· 2014년 10월에 발표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최종 견해를 참고했습니다.

· 한국 정부가 위원회에 제출한 2·3차 병합 국가보고서(보완보고서 포함)를 참고했습니다.

· ‘유엔 웹 티브이’에 올라온 제27차 장애인권리위원회 598~599차 영상회의록을 참고했습니다.  

· 한국장애포럼이 위원회에 제출한 시민사회보고서를 참고했습니다. 

· 2019년 6월 2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도자료 ‘장애인 정책이 31년 만에 바뀝니다’를 참고했습니다.

· 지난 8월 1일,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발표한 보도자료 ‘말뿐인 장애인 이동지원 서비스 확대’를 참고했습니다.

· 장애등급제 폐지에 관한 비마이너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행되던 2019년 7월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요구하며 전동행진을 벌였다. 기획재정부 서울사무소(서울지방조달청) 앞에 모인 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습. 사진 비마이너 DB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가 시행되던 2019년 7월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요구하며 전동행진을 벌였다. 기획재정부 서울사무소(서울지방조달청) 앞에 모인 장애인 활동가들의 모습. 사진 비마이너 DB 

[검증 내용]

기존의 장애인복지서비스는 1~6급으로 나뉜 장애등급제에 의해 칸막이가 처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1~3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고, 장애인연금은 1~중복 3급(두 가지 이상의 장애가 있으면서 3급 판정을 받은 사람)까지만 받을 수 있었으며, 장애인콜택시는 1~2급 중 보행상 장애가 있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장애등급에 의해 서비스가 제한된 것입니다. 2019년 7월 시행된 정부의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장애등급을 없애고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제공하라’는 장애계의 오랜 싸움의 성과였습니다.

그러나 1~6급으로 나뉜 장애등급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장애정도가 심한 장애인(1~3급)’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4~6급)’, 즉 장애정도에 따라 중·경증의 두 단계로 나눴습니다.

또한 장애등급제의 가장 큰 문제가 ‘등급에 의한 서비스 제약’임을 고려한다면, 제도 변화 후 주요하게 살펴야 하는 부분은 ‘복지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받을 수 있게 되었는가’일 것입니다. 유엔에 제출한 추가보고서에서 정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종합조사를 통해 “기존의 의학적 기준만으로 등급을 구분하던 방식에서 장애인의 특성에 따라 필요한 사회복지서비스 급여량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 장애등급 대신한 ‘종합조사’가 대체 뭐길래

활동지원서비스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2022년 기준 장애인정책국 예산(4조 873억 원)에서 42.8%(1조 7405억 원)를 차지할 만큼 가장 큰 예산입니다. 2019년 7월 전까지는 장애 3급까지만 신청할 수 있었으나, 장애등급제 폐지로 이제는 등급에 상관없이 등록장애인이면 모두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청한다고 다 주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지, 밥은 먹을 수 있는지, 대중교통 이용은 가능한지, 인지적 장애가 있는지 등에 대한 ‘종합조사’를 합니다. 각 항목별 점수를 합산하여 마치 학점을 받는 것처럼 1~15구간 중 하나를 받게 됩니다. 몇 구간에 속하는지에 따라 한 달간 이용할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이 정해집니다. 가장 높은 1구간은 월 480시간(하루 16시간)으로, 1구간 판정을 받더라도 하루 24시간 서비스를 받을 수 없습니다. 가장 낮은 15구간은 월 60시간(하루 2시간)의 이용 시간을 받습니다. 각 구간은 월 30시간씩 차이 납니다.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조사 조사항목 및 종합점수 산정방법을 위한 표  
장애인서비스지원종합조사 조사항목 및 종합점수 산정방법을 위한 표  

정부는 “사회적 모델을 반영하여 기능제한영역, 사회활동영역, 가구환경영역을 포함한다”고 하지만, 종합조사는 ‘신체적인 기능 제한을 보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종합조사표의 만점은 596점(성인 기준)입니다. 이중 기능제한영역이 532점(89%)을 차지합니다. 직장생활과 학교생활 여부를 확인하는 사회활동은 24점(4%), 누구와 함께 사는지, 집에 엘리베이터 등이 있는지 등을 살피는 가구환경은 40점(7%)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종합조사에서 장애인이 활동지원 시간이 얼마만큼 필요한지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한 질문 자체가 종합조사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체적인 기능제한이 크다고, 즉, 사지마비장애인이라고 1구간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 6월 30일 기준으로 전국에서 1구간을 받는 장애인은 11명에 불과합니다.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의 0.01%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이는 종합조사표가 다소 기이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능제한은 일상생활동작을 확인하는 항목과 인지행동특성에 관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지행동특성은 기존 활동지원 판정이 신체장애인 중심이라 정신적 장애인(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에겐 불리하다는 지적을 반영해 새로 추가된 항목입니다.

그런데 이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최고점을 받으려면 사지마비에 인지적 장애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 또한 아무리 중증이어도 신체장애가 없으면 1구간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시·청각장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섣부르게 종합조사표 내에 각 장애유형에 해당하는 배점을 크게 늘린다면 다른 장애유형이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풍선효과죠. 대상자가 늘어난 만큼 예산을 확대하지 않으니 장애유형 간 파이 싸움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장애포럼은 위원회에 제출한 시민사회보고서에서 “정부는 종합조사를 통해 서비스 비용을 절감하고 있으며, 장애인은 통제된 예산 범위 내에서만 서비스를 받게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장애계가 정부의 장애등급제 폐지를 ‘가짜 폐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시행 1년이 된 2020년 7월 1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를 규탄하기 위해 모였다. 민중가수 이혜규 씨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이동지원에서도 엉터리 판정하는 ‘종합조사’

이는 활동지원서비스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정부의 장애등급제에 ‘단계적 폐지’라는 단서가 붙은 이유는 총 4년에 걸쳐 영역별로 장애등급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종합조사를 도입한다는 계획 때문입니다. 2019년에는 일상생활영역(활동지원 등)에서, 2020년에는 이동지원영역(장애인콜택시 등)에서, 2022년에는 소득·고용영역(장애인연금 등)에서 장애등급 대신 종합조사로 서비스 적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 시행된 이동지원영역(장애인콜택시·장애인주차표지)에서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제도가 시행된 2020년 10월 30일부터 올해 5월까지 ‘이동지원 서비스 종합조사’를 신청한 사람은 전국에서 1038명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 서비스 이용 기준을 통과한 사람은 213명에 그쳤다고 합니다.

올해 시행하기로 한 소득·고용영역에서의 종합조사는 아직 시범사업 중입니다. 그러나 올해 3월 복지부가 ‘소득활동 종합조사 시범사업 참여자를 모집한다’며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노동능력 여부를 판가름하는 종합조사표를 만들어 기존에 있던 제도에 흡수시킬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검증 결과]

1~6급으로 구분되던 장애등급이 중·경증의 장애정도로 단순화되었고, 각 서비스 이용 자격은 장애등급에 의해 획일적으로 가로막히는 대신 종합조사에 따라 결정 납니다. 달리 말하면,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있어 여전히 ‘종합조사 점수’라는 기준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무리 해당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해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준 점수에 미달하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즉,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후 이뤄진 지원 체계는 여전히 장애인의 환경과 특성, 욕구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장애포럼은 시민사회보고서에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감면할인제도, 활동지원 및 특별교통수단이 주요 서비스의 전부일 뿐, 공적 서비스의 종류는 다양해지지 않았다”면서 “종합조사 과정에서도 장애인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장애를 사회적 모델로 바라본다는 것은 장애를 신체적 손상이 아닌, 문화적·물리적·제도적 장벽 등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상태로 파악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장애를 여전히 ‘신체적 손상’으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장애등급제 폐지 후 종합조사를 도입하여 개인별 필요도에 따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 이 기사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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