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 ④

[검증 대상]

지난달 24일과 25일, 한국 정부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에 출석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습니다. 정부는 위원회에 제출한 국가보고서에서 2019년 7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면서 활동지원 본인부담금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편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증 방법]

· 한국 정부가 위원회에 제출한 2·3차 병합 국가보고서(보완보고서 포함)를 참고했습니다.

· ‘유엔 웹 티브이’에 올라온 제27차 장애인권리위원회 598~599차 영상회의록을 참고했습니다.

· 위원회 일반논평을 참고했습니다.

·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2021년 장애통계연보’, ‘2022년 장애인활동지원사업안내’를 참고했습니다.

· 김성겸 보건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행정사무관을 전화로 인터뷰했습니다.

· 활동지원 본인부담금과 관련된 비마이너 기사를 참고했습니다.

[검증 내용]

-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 16.1% ‘매월 12만 원 이상’ 부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면 그 누구든 활동지원 본인부담금을 내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부담금 산정 방식이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이후 변경됐습니다.

그전에는 전국가구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이 책정됐는데요,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폐지 후 종합조사가 도입되면서 건강보험 부과액을 기준으로 가구원 수에 따라 산정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19년 본인부담금 상한액이 32만 2900원에서 15만 8900원까지 낮아졌다고 홍보했습니다.

2021년 장애통계연보의 장애인활동지원제도 본인부담금 현황.

2021년 장애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으로 활동지원제도 이용자 11만 3952명 중 3만 8863명(34.1%)이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 포함)로 본인부담금을 면제 받고 있으며, 본인부담금 1인 평균 부담액은 5만 6173원입니다. 이 중 본인부담금을 내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면 월 12만 원 이상 내야 하는 사람이 1만 8437명(16.1%)으로 가장 많습니다.

복지부의 본인부담금 개편은 지금 당장 매달 수십만 원을 내야 하는 장애인들의 부담을 분명 덜어줬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부담금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 매년 오르는 자부담… 복지부는 “정의의 원칙에 부합한다”

물가 인상으로 매년 최저임금이 오릅니다. 그에 비례해 장애인이 내야 할 본인부담금도 오릅니다. 2019년 15만 8900원이었던 본인부담금 상한액은 2020년에는 16만 4900원, 2021년에는 17만 700원, 올해는 17만 7700원까지 올랐습니다. 본인부담금은 소득 기준과 함께 활동지원 시간을 많이 이용할수록 오르니, 중증장애인일수록 많이 내게 됩니다.

당사자 소득과 상관없이 가구 기준으로 책정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소득이 없더라도 함께 사는 가족에게 소득이 있을 경우, 그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책정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이 부양의무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2019년 3월 13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장애인단체들이 활동지원 본인부담금 폐지를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을 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2019년 3월 13일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등 장애인단체들이 활동지원 본인부담금 폐지를 촉구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 진정을 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비마이너DB

무엇보다 본인부담금이 부담스러워 활동지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면 본인부담금을 내야 하는데, 부양의무자 기준과 까다로운 산정기준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계는 활동지원제도화를 요구할 당시부터 본인부담금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의 날치기로 본인부담금과 대상자 제한(장애 1급, 만 6세 이상~65세 미만)이 담긴 장애인활동지원법이 국회를 통과합니다. 그 족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당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한나라당은 장애인활동지원법을 날치기 처리하고 장애인에게 자부담 인상, 서비스 대상 제한, 중증장애인 생활시간 제한이라는 세 가지 독을 발라 놓은 떡을 줬다”라면서 “독을 바른 떡을 장애인한테 먹이고 국민한테 장애인에게 떡을 줬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정작 장애인은 그 떡을 먹으며 죽어가고 있다”라고 분노했습니다. (▷관련 기사 “날치기 장애인활동지원법은 독을 발라 놓은 떡”)

그러나 복지부의 입장은 다릅니다. 김성겸 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 행정사무관은 지난 7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본인부담금 책정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인부담금 폐지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활동지원을 신청할 때 소득 기준을 전혀 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부담금 부과는 정의와 형평의 원칙에 부합한다. 월 480시간을 이용하더라도 상한액은 17만 7700원으로 정해져 있다. 이미 활동지원 이용자의 상당수가 본인부담금을 납부하지 않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인데, 이런 상황에서 자부담을 폐지한다면 이것은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활동지원제도 도입 당시, 복지부는 일정 소득 이하의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도록 소득 기준을 내세웠습니다. 소득 기준을 넘는 장애인들이 이용하길 원한다면, 온전히 자기 돈을 내고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상자 기준은 장애계의 투쟁으로 다행히 사라졌지만, 정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소득이 있는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본인부담금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가구 기준으로 본인부담금을 책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김성겸 행정사무관은 “부양의무자의 (자부담 납부는) 당연한 의무”라고 밝혔습니다.

- 전체 가구보다 소득은 낮은데 지출은 더 많은 장애인 가구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9만 원으로 전체 월평균 가구 소득(411만 1000원)의 48.4%에 불과합니다. 반면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지출은 178만 5000원으로 전국 월평균 가구 지출(245만 7000원)의 72.6%입니다. 즉, 소득 대비 지출이 많은 구조입니다. 단지 수치의 문제는 아닙니다. 전체 장애인의 69.4%가 자신을 ‘경제적 하층’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중 장애로 인한 추가 소요비용.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중 장애로 인한 추가 소요비용. 

소득 대비 지출이 높은 데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엔 활동지원 본인부담금처럼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이 있습니다. 전체 장애인 중 61.6%가 ‘지난 1년간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답했습니다. 월평균 추가 비용은 15만 2600원입니다. 의료비가 58만 5000원으로 가장 높았고, 교통비가 25만 7000원, 보호·간병비가 21만 9000원입니다. 해당 조사를 수행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활동지원서비스 본인부담금을 줄여서 보호·간병비를 현재보다 더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 제언을 남겼습니다.

정부는 ‘장애로 인한 추가 비용’ 보전을 위해 장애인연금(부가급여)을 준다고 하지만 그 비용은 2~8만 원에 불과하며, 장애인연금을 받는 장애인도 전체 등록 장애인의 14%가량(37만 5759명, 2020년 12월 기준)밖에 안 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정부에 대한 장애인의 요구 사항은 소득보장이 48.9%로 가장 높습니다.

[검증 결과]

위원회는 협약의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에 관한 일반논평 5호에서 활동지원과 관련하여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예산이 줄어들거나 개인 부담금이 늘어나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후, 활동지원 본인부담금이 다소 줄었다는 복지부의 주장은 ‘일부 사실’이긴 하나 본인부담금이 존재하는 한 이는 협약 위반입니다.  

*이 기사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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