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호소해도 국힘만 장애인권리예산에 무응답
전장연 “국힘, 집권 여당으로서 책임져라”
39차 출근길 지하철 투쟁 “시민으로 살고 싶다”
오는 19일에도 투쟁 예고… 주호영 면담 약속하면 투쟁 보류
“시민 여러분,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이 문구가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17일 오전 7시 30분, 5호선 광화문역에서 39번째 출근길 지하철에 올랐다.
시민은 단순히 “시(市)에 사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의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표준국어대사전)으로 존재할 때 우리는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장애인은 시민에서 배제됐다. 헌법이 언급하는 그 어떤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권리는 선언만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권리는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지켜질 때 보장받을 수 있다. 일상에서 동료 시민과의 평등한 관계가 전제될 때 그제야 일상을 자유롭게 향유하며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비장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장애인-비장애인의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이 균형추를 맞추는 방법은 장애인의 일상을 마이너스 상태에서 제로(0) 상태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장애인도 대중교통을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교육받을 수 있게 하며, 노동 시장에서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한 요구가 바로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이다.
이제 곧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시작된다. 윤석열 정부는 끝내 2023년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거절했다. 정부가 편성한 장애인 관련 예산은 전장연 요구안보다 1조 5천억 원이 적다. 국회에서 장애인권리예산을 증액하지 않으면 장애인은 내년에도 지금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전장연은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 시민에게 “국회, 그중에서도 국민의힘이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도록 함께 요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내 정당 중 국민의힘을 콕 집은 건, 국민의힘만 장애인권리예산 요청에 아무 응답이 없기 때문이다.
박경석 대표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장애인권리예산을 증액하고 장애인권리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힘은 우리의 시위가 불법이라는 경고 말고는 특별히 한 말이 없다”며 “국민의힘은 여당으로서 이 사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장애인권리예산을 충실히 보장하라. 시민 여러분이 함께 요구해 달라”고 열차 내 시민에게 호소했다.
또한 “우리도 시민으로 살고 싶다. 시민으로 살아가게 해 달라. 지금 우리의 모습을 봐 달라. 우리가 지하철을 볼모로 잡은 것인가, 사회가 장애인을 볼모로 잡은 것인가”라고 물었다.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장애인권리예산에 관해 어떤 답변도 하지 않아서 이렇게 39번째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진행한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면담 일정을 잡고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약속하면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17일은 빈곤철폐의 날이기도 했다. 정다운 전장연 정책실장은 “오늘(17일)은 빈곤철폐의 날이다. 장애인은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출퇴근을 할 수 없고, 학교에도 갈 수 없다. 양질의 일자리 또한 없었다. 그 결과 가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다”며 “더는 ‘기생적 소비계층’으로 취급받을 수 없다.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누리며 존엄하게 살기 위해 오늘도 지하철을 탄다”고 외쳤다.
이날 투쟁에는 휠체어 이용자 19명과 비장애인 활동가 20여 명이 참석해 광화문역에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이동했다. 전장연은 10월에 세 차례, 11월에는 매일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전개할 거라고 예고했다. 강경한 투쟁을 선언해서 그런지,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는 만반의 준비를 한 듯했다. 활동가들이 쓰는 것보다 더 큰 앰프를 가져와 각 지하철역장, 관할 경찰서 경비과장 등의 이름으로 쉴 새 없이 경고 방송을 했다. 고의적 열차 운행 방해 행위는 불법이며, ‘정시 안전운행’에 협조하라는 내용이었다.
동료 시민에게 호소하고자 지하철을 탄 것인데, 경고 방송으로 인해 호소를 할 수 없게 되자 활동가들은 음악 소리를 크게 틀어 맞섰다. 여러 스피커에서 각기 다른 음악이 나오고, 경찰·공사 측 경고 방송과 역사 내 열차 지연 안내방송으로 인해 열차와 승강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언어장애가 있는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자신이 말을 해도 들리지 않자 마이크를 스피커 앞에 대서 소음을 일으키는 방법으로 의사를 표시했다.
그럼에도 경찰은 휠체어 이용자에게 “(열차에) 타실 거예요, 안 타실 거예요? (동료 경찰에게) 야, 그냥 다 (열차 안으로) 밀어 넣어”라고 말하며 불필요한 과잉 대응을 했다. 이 과정에서 공사는 열차 문을 강제로 닫아 휠체어 이용자들이 열차에 타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활동가들이 “사람이 덜 탔는데 왜 문을 닫나”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활동가들은 광화문역에서 여의도역까지 8개 역을 지나가며 역마다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경찰·공사의 과잉 대응으로 열차는 더욱 지연됐고, 매 역의 승차 대기인원은 계속 불어났다. 공덕역에서는 휠체어 이용자가 다 내리기도 전에 비장애 승객들이 밀고 들어와 휠체어 이용자가 인파에 갇히는 일이 벌어졌다. 공사가 휠체어 이용자 하차를 위해 자리를 내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날 투쟁은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10시께 마무리됐다. 광화문역에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2시간 30분이 소요됐다. 휠체어 이용자 19명이 환승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시간을 제외하면 5호선 지연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전장연은 오는 19일, 40차 출근길 지하철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단, 주호영 원내대표가 면담을 약속하면 전장연은 투쟁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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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 거기있는 시민들은 무슨 죄인가요?
음악 소리 크게 트는건 그렇다쳐도 마이크 스피커앞에 일부러 두고 하울링 만드는건 진짜 테러인데요